<9> 유특한 (유유산업 사장/제10회/1970년)
유유, 비타민 전문메이커 육성 원료의약품산업에 도전
입력 2016.05.11 11:10 수정 2016.06.0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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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특한 사장
인호(仁湖) 유특한 유유산업 사장은 1918낸 9월 평양에서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의 셋째 동생으로 출생했다.


유 사장은 1942년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평탄한 관료의 길을 마다하고 1941년 일제 치하에서 헐벗고 신음하는 이 나라 동포들의 질병퇴치와 건강증진을 위해 제약기업 유유산업을 설립하고 제약업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오로지 제약보국(製藥報國)의 일념으로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으며, 피난지 부산에서 대한약품공업협회 제 4대 회장을 맡아 전쟁으로 인해 물자와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도 제약업계 관계자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북돋았고, 전쟁을 수행하는 데 가장 긴요한 필수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환도 후 유유산업에 복귀해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으며 1955년에 결핵 치료제 ‘유파스짓’과 ‘아이나’ 등을 생산하면서 현대적인 제약기업의 입지를 정립하는 데 앞장섰다.

특히 약제가 위장에서 녹지 않고 장에서만 흡수되도록 함으로써 위장장애 없이 약효를 신속하게 전달하는 보위당의(保胃糖衣) 기술로 ‘유파스짓’을 개발한 것이나, 1957년에 국내 최초로 7층 당의정 종합비타민제 ‘비타엠정’을 개발해 국내 제제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린것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혁신이었다.

1965년에는 국내 최초로 연질캅셀 제제를 개발하고 종합영양제 ‘비나폴로’를 선보임으로써 유유산업이 비타민 전문 메이커로 확고한 지위를 확고히 굳히는 계기를 마련했다. 

1960년대까지 거의 100% 수입에 의존하던 원료의약품의 국내생산에 과감하게 도전해 국산화의 중요성을 정부와 업계에 일깨운 선구적 행보 또한 눈길을 끈다. 이 같은 열정은 1966년 대한원료약품공업협회 초대회장을 맡아 고군분투하는 행보로 이어졌다.

1970년 미국 업죤과 합작투자로 한국업죤을 설립한 데 이어 1975년 독일 슈바베와 기술제휴를 시발로 일본 메이지세이카 및 다이쇼, 프랑스 사노피와 기술제휴를 속속 성사시켰고, 1984년 일본 후마킬라와 유유후마킬라, 영국 칼믹과 유유칼릭 등의 합작기업을 잇따라 설립해 국제화시대에 대비한 다각경영을 선도했다.

1973년 유유문화재단을 설립해 문화‧장학사업에도 남다른 정성을 쏟은 것이나 1975년 11월 기업공개를 단행한 것 등은 유특한 사장의 선구적 행보를 방증하는 하나의 사례들이다.

그 같은 공로로 대통령 산업포장, 보건사회부장관 표창, 새마을훈장 등을 수여받은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현재 유유제약(유유산업에서 회사명 변경)의 경영을 이끌고 있는 유승필 회장이 유특한사장의 장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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