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등으로 점점 발생연령이 낮아지는 당뇨병. 최근 젋은 당뇨병 환자를 지원하는 내용의 ‘소아‧청소년‧청년 당뇨병 환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를 받았지만 ‘계속심사(보류)’로 일단락됐다. 이유는 정부의 강한 반대.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 등은 ‘심뇌혈관질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대상에 당뇨병이 이미 포함돼 있어, 당뇨병 예방관리에 대한 사항이 중복될 소지가 있다며 법안이 발의된 당시부터 사실상 반대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학계는 이를 전면 반박한다. 심뇌혈관질환 예방법은 대부분 중년과 노년 환자가 대상인 만큼 젊은 환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오히려 이 때문에 재택의료 시범사업 등 관리 대상인 1형당뇨를 제외한 2형 당뇨병이나 임신당뇨병 환자가 배제되고 있다며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활동이 줄어든 소아청소년의 비만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이에 따른 젊은 2형 당뇨병 환자 수가 크게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에 대한 지원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지는 이유다.
◇소아청년 당뇨병 환자 지원법, 왜 필요할까
국민의힘 이명수 의원이 2021년 10월 대표발의한 ‘소아‧청소년‧청년 당뇨병 환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안’은 2020년 기준 14만명에 이르는 소아청년 당뇨병 환자에 대해 차별방지 및 배제금지 지원 근거를 마련하고, 복지부장관이 5년마다 소아청년당뇨병 등 관리종합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또 ‘소아청년당뇨병환자 등 지원정책심의위원회’를 둬 종합계획 수립 등 주요 지원에 대한 중요사항을 심의하고, 복지부장관은 소아청년당뇨병 등에 대한 연구‧개발사업을 시행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른바 ‘젊은 당뇨병 환자’에 대한 차별방지 지원 근거와 종합계획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이들 환자가 학교, 직장, 사회 등에서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국가와 사회가 지원해야 하는 일종의 취약계층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춘희 연세대 원주의대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소아 청년 당뇨병 환자들은 학교생활에서 친구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이성교제‧결혼‧임신 및 출산을 꺼리며, 직장에서는 차별과 불이익의 대상이 된다. 응급상황에서는 신속한 조치가 어려워 불안한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며 가족과 학교, 일반인들의 배려와 포용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학교에서는 소아 청년 당뇨병환자의 조기 발견을 위한 조기 검사를 시행하고, 혈당측정기 및 저혈당 응급치료 키트를 구비해야 한다. 학생과 가족, 교사를 대상으로 당뇨병 교육 시행도 필요하다”며 “산업 현장에서는 취직과 승진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학교와 마찬가지로 혈당측정기‧키트 구비, 직장인 당뇨병 교육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정부 반대, 서류만 검토했기 때문…우리나라만 지원책 없어”
대한내분비학회 보험이사인 김대중 아주의대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지난달 초 국회에서 열린 ‘대한당뇨병연합 제5차 토론회’에서 소아‧청소년‧청년 당뇨병 환자 지원법안을 반대하는 정부를 작심 비판했다.
김대중 교수는 “법안이 발의된 후 복지부‧기재부가 보인 첫 번째 반응은 기존 심뇌혈관질환 예방법과 중복된다는 것인데, 그 안에 당뇨병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면서도 “반대하는 이유는 서류만 검토했기 때문이다. 심뇌혈관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당뇨병을 관리하자는 개념으로 들어가 있고, 거의 법률안만 그럴듯하게 만들어져 있을 뿐인데도 정부는 이를 근거로 체계적인 사업을 하고 있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그는 “최근에 해당 법률과 관련해 종합계획을 만들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도 당뇨병은 심뇌혈관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하나의 위험인자 또는 질환으로 언급돼 있다”며 “소아‧청소년‧청년의 당뇨병은 마치 취약계층과 같은 느낌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들은 당장 심뇌혈관질환과는 크게 관련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심뇌혈관질환 법에 포함되다보니 젊은 당뇨병 환자에 대해 어떤 체계적이고 촘촘한 정부사업이나, 건강보험에서 이들을 지원해줄 수 있는 사업‧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단지 법안 내용만 보면 그 안에 당뇨병이 있으니까 중복된다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한 “소아‧청소년‧청년 당뇨병 환자 법안이 왜 발의됐고 상정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를 한 번 더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잘 짜여져 있어서 실제로 젊은 당뇨병 환자라고 차별을 두진 않는다. 그러나 젊은 당뇨병 환자는 훨씬 더 세심한 배려와 교육, 관리와 정성이 필요한 반면, 건강보험 시스템은 그렇게 돼 있진 않다. 약 처방과 진찰 등에 그칠 뿐, 이들을 세심하게 배려할 수 있는 교육상담이나 관리가 상당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를 제외한 호주, 유럽, 캐나다 등은 관련 법과 지원책이 체계적으로 마련돼 목표와 실행계획을 잘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호주 정부는 ‘Australian National Diabetes Strategy’ 문서에 젊은 당뇨병 환자를 ‘우선순위에서 밀려 소홀해지기 쉬운 집단’으로 정의하며 국가가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EU(유럽연합)는 ‘National Diabetes Plans in Europe’이라는 국가적 당뇨병 계획을 세웠으며, 캐나다는 ‘당뇨병 예방‧관리‧연구 등을 활성화하기 위한 법률(Bill C-237)을 제정했다.
이에 대해 그는 “다른 나라들이 도대체 왜 이런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나”라며 “우리 역시 당뇨병이 심각하고 당뇨병에 대해 국가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 정부 사업이나 예산 배정은 상당히 취약하고 허점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젊은 당뇨병 환자 지원법과 심뇌혈관질환 예방법의 조문들이 상당 부분 중복돼 있으나, 이는 당뇨병 지원법을 만들 때 심뇌혈관질환 예방법의 조문을 많이 차용했기 때문이라며, 법안을 발의한 취지는 전혀 다른 만큼 한 번 더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알아서 해주면 이렇게 법률안을 만드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라며 “오죽했으면 법을 만들어서라도 정부와 지자체 책임을 요구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못박았다.
실제로 한 청년 당뇨병 환자는 당시 토론회에서 “보건소에 갔을 때 받을 수 있는 혜택 프로그램이 없었다. 담당자에게 아무것도 도울 수 없다는 답변을 듣고 왔다”고 밝히면서 지원법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꾸준히 증가하는 소아청년 당뇨병 환자 ‘성인보다 위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는 2016년부터 꾸준히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2020년 기준 약 333만4000명이다. 특히 만 18세 이하 어린이의 당뇨병 환자 수는 2010년 5034명에서 2020년 7033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고, 1형 당뇨 증가율이 2010년 대비 2020년 7%, 2형 당뇨의 경우 105% 증가했다.
1형 당뇨의 경우 2020년 기준 남아가 999명, 여야가 1190명으로 여야가 다소 많았으며, 연령별로는 16~18세 693명, 13~15세 600명, 10~12세 415명 등 10~18세 사이 환자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현재 당뇨병 또는 소아당뇨병을 특정해 관리 및 지원을 위한 법률은 마련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다만 ‘심뇌혈관질환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심뇌혈관질환의 일종으로 당뇨병을 규정하고 있다.
이외에 ‘영유아보육법’에 따른 제1형 당뇨를 가진 영유아의 어린이집 우선 이용과 ‘학교보건법’에 따른 제1형 당뇨로 생명이 위급한 학생에 대한 보건교사의 응급처지 규정이 있다.
한편 당뇨병은 일반적으로 만성질환의 일종으로, ‘보건의료기본법’, ‘지역보건법’ 및 ‘건강검진기본법’ 등에 따라 만성질환 관리 차원에서 복지부, 질병관리청,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서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7일 대한당뇨병연합과 대한비만학회가 공동주최한 ‘소아청소년 비만문제 법제화 추진을 위한 공동 심포지엄’에서 경일대 간호학과 박혜련 교수는 ‘우리나라 소아‧청소년‧청년 당뇨병 실태’를 주제로 발표하면서 국가 차원의 예방과 치료‧관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박 교수는 “최근 서구화된 식생활로 소아청소년 연령에서 비만으로 인한 2형당뇨병이 많이 진단되고 있어, 더 이상 소아당뇨를 1형 당뇨병이라고 한정 지을 수 없다”며 “무엇보다 소아청소년기에 2형 당뇨병이 발병하면 성인보다 혈당조절이 어려워 질병이 빠르게 진행돼 합병증 발생위험이 증가하고 기대수명도 15년 정도 단축되는 것으로 보고됐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