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제약 100년 세계로 미래로!<글 싣는 차례>
1)글로벌전략 어떻게 수립해야 하나
2)한국제약기술수준 어디까지 왔나
3)제약 선진국가 현황과 시사점
4)해외진출 현지화 전략으로 극복
4-3 기회는 있다 / 동남아시아시장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미얀마,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라오스, 캄보디아, 브루나이 등 동남아 10개국으로 구성된 아세안은 상호간의 지리적 근접성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인종과 민족, 종교 등이 어우러진 문화적 다양성을 특징으로 한다. 종교만 해도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매우 다양하며 경제적으로도 선진국(싱가포르)과 신흥 부상국(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이 공존하여 다양한 스펙트럼을 나타낸다.
지리적으로도 동북아시아와 인도, 태평양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중심부에 위치하여 주요 성장시장과 경제교류가 활발하다. 국가별로 경제개발 정도 및 소득수준에 차이는 있으나 대외개방형 경제체제를 바탕으로 경제성장 및 산업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동남아시아는 총인구 약 6억명, 총 GDP 1조 7천억 달러의 거대시장과 한국과의 지리적 근접성, 상호보완적인 산업구조, 한류에 호의적인 현지문화 등에 힘입어 2011년 미국, 일본, EU 등을 제치고 우리나라의 2번째 교역상대가 되었고, 2013년에는 한국과의 총 무역규모가 1,311억 달러에 도달하였다.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완제의약품 수출액 상위 10개국 중 아세안이 3자리(1위:베트남, 7위:태국, 10위:필리핀)를 차지할 정도로 우리나라와는 전체무역뿐만 아니라 제약산업에서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의약품 분야에서 동남아시아 시장은 더 이상 호락호락하지 않다. 인도와 중국의약품의 저가 공세, ACTD(Asean Common Technical Dossier)에 입각한 까다로운 의약품 등록, 자국산업보호를 위한 각국별 비관세 장벽 등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고 앞으로도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의 경험을 토대로 동남아 시장에서 가장 효과적인 해외진출 방안의 하나인 현지화 전략을 설명하고자 한다
본 론
아세안 의약품시장도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의 다국적기업과는 품질경쟁력이 있어야 하고 중국, 인도 등의 저가의약품과는 가격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유나이티드제약은 초기에 품질에서는 선진국의 제품에 크게 밀리지 않지만 월등한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수출전선에 뛰어들어 나름 입지를 개척하였다. 하지만 현지에 대한 정보와 경험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직접적인 마케팅 보다는 현지 무역 Agency를 통하여 시장에 진입할 수밖에 없었다. 수출규모가 작을 때에는 특별한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일정한 규모에 도달하자 현지 Agency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기도 하였고, 제네릭 의약품으로서 브랜드 마케팅이 되지 않아 지속적인 매출성장은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것이 현지화 전략이었다. 각국별로 상황과 조건이 달라 일률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워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이 지사를 설립하고 현지화 전략을 추진중인 3개국인 베트남, 필리핀, 미얀마를 나누어 설명하도록 하겠다.
1) 베트남시장
한국 유나이티드제약은 초기에 해외시장 진출방법으로 무역협회, KOTRA, 충남도청,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제공되는 각종 지원제도를 십분 활용하였다. 특히 KOTRA가 실시하는 수출기업화사업 대상업체로 선정되면서 충남무역관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 지원내용으로는 해외상품 시장정보뿐만 아니라 무역실무 교육지원, 카달로그 제작지원, 해외전시회와 지방시장 개척단 참가지원까지 광범위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1994년 베트남에 결핵치료제 피라진아미드정 1만9,332불을 처음으로 수출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1996년까지 P&C라는 현지에이전시를 통해 홈타민진생 외 15품목을 등록하며 수출을 늘려나갔다. 하지만 국내제약회사들이 연이어 베트남에 진출하여 과당경쟁이 벌어졌고, P&C또한 더 이상의 품목확장을 원하지 않아 1997년 말 매출규모 200억원 이상이 되어야 내어주는 설립인가 허가를 받아 1998년 6월 18일에 호치민시에 베트남 지사를 설립하였고 1996년부터는 외국인 산업연수생제도를 활용하여 베트남 연수생들을 전동공장에서 근무하게 하였다.
당시 외국인 노동자들을 채용하면서 다른 사업장보다 많은 돈을 모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내국인 노동자와 똑같이 대접한다는 두 가지 원칙을 세우고 실천했다. 연말이나 공휴일에는 이들을 대표이사 자택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제공하거나 서울시내 관광을 시켜 주기도 했다. 이러한 내용이 전문지, 일간지에 실려 아리랑TV로 위성방송 되었고 이를 본 베트남 국영일간지 노동신문 기자가 베트남으로 귀국한 현지노동자를 인터뷰하고 특집기사로 다루었다.
특히 이 신문은 “베트남 노동자에게 유나이티드제약이 보여준 세심한 대우와 보살핌은 다른 회사에 모범이 될만하다” 면서 칭찬하였고, 당시 해외 근로자들이 한국의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며 겪는 어려움과 몇몇 한국기업들의 횡포가 국내외적으로 문제가 야기되었던 상황에서 노동신문의 기사가 베트남에 대서특필되면서 유나이티드제약의 기업이미지는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유나이티드제약의 베트남 진출에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한류의 탄생과 활용이다. 초기 한류스타중의 한명인 장동건씨가 출연한 드라마 ‘의가형제’가 베트남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었고, 드라마에서의 의사이미지와 홈타민을 접목해 6개월간 대대적인 TV광고를 실시했고 결국 홈타민은 베트남 의약품 시장에서 자양강장제부문 브랜드 인지도 1위를 차지하였다.
베트남으로의 수출이 지속적으로 늘어 5백만달러를 돌파하자 유나이티드제약은 베트남 시장뿐만 아니라 아세안 시장을 겨냥하여 총 6백만달러를 투자하여 대지 3,700평, 건평2,000평 규모의 현지공장을 2001년 건설하였다. 수출품에 대한 까다로운 규제를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지 판매에서도 자국 내에서 생산된 제품이라는 신뢰까지 높임으로써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된 것이다.
2) 필리핀 시장
1993년 첫 수출 당시 에이전시인 RONYT라는 업체에게 필리핀 전체에 대한 판매권을 주고 수출을 시작했지만 93년 3만8,400달러, 94년 5만6,000달러, 95년 2만달러, 96년 5만6,000달러를 수출하는데 그쳐 기대 이하의 실적을 올렸다. 베트남의 경우 수출 첫해인 94년 1만9,332달러에서 96년에 200만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한데 비하면 실적이 매우 미미한 수준이었다. 따라서 베트남과 같이 바이어를 다변화하고 직접 시장을 개발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98년 로니트와 결별을 선언하고 마닐라에 사무실을 개설하고 1년간 60여개의 제품을 등록했다. 거래선도 4개로 늘어나자 본격적으로 수출실적이 올라갔고 지사설립 1년만에 30만달러를 돌파했다. 당시에 필리핀에 의약품을 수출하는 한국제약회사가 거의 없어 한국제품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먼저 바이어들을 한국으로 초청해서 유나이티드제약 공장을 둘러보게 했다.
최신공장시설과 엄격한 품질관리기준 등을 직접보고 나서 이들은 자연스럽게 주문을 늘려 나갔다. 품목으로는 특히 항암제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필리핀 제약산업이 80년대를 지나서 거의 붕괴되었고 유럽이나 미국의 항암제는 아주 고가였으므로 유나이티드제약의 항암제는 아주 인기가 좋았다. 필리핀 수출 400만달러 돌파가 유력한 2013년 현재의 시점에서도 수출의 절반가량은 항암제이다.
중국이나 인도의 제품에 비하면 같은 제네릭이어도 2배이상의 가격으로 판매되는 유나이티드 제품은 현지 바이어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일 수 있다. 이들을 만나 고가의 가격에도 유나이티드 제품을 선호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이구동성으로 유나이티드제약은 현지 지사가 개설되어 있어 제품등록부터 선적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빠르고 특히 긴급한 제품의 선적도 납기를 정확히 맞춰주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다는 부분과 매년 바이어와 고객들을 한국으로 초청하여 공장견학, 문화행사(고객만을 위한 특화된 음악회 등)를 개최하여 항상 친근감이 있어 거래처 변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3) 미얀마 시장
미얀마 지사는 우연한 기회에 설립되었다. 한국의 수출전문 모에이전시가 미얀마에 설립해 놓은 지사가 경영난과 조직내분으로 해체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미래에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2001년에 인수한 것이다. 하지만 미얀마는 특유의 폐쇄적 경제구조로 말미암아 시장정보가 부족하고, 외환거래도 자유롭지 못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매출정체에 늘어나는 경비로 지사철수를 고려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언젠가는 풍부한 지하자원, 넓은 국토와 5천만명이 넘는 인구 등으로 볼 때 경제가 충분히 활성화 될 것으로 믿고 당장의 매출보다는 기존 바이어들과 유대를 굳건히 하는 것에 주력하기로 하였다. 2011년을 기점으로 미얀마 정부가 개혁, 개방을 추진하면서 의약품 거래도 활성화 되고 한류의 영향도 커지면서 수출규모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매년 50만 달러를 넘기기 어려웠다가 2012년에는 약140만을 수출하면서 오랜 인고의 시간에 대한 보답을 받고 있다.
결 론
국내제약시장은 좁다. 굳이 통계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전세계 제약시장의 1.5%정도의 국내시장에 안주해서는 효율적인 성장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은 세계시장 진출만이 정답일 뿐이다. 하지만 방향을 알고 있다고 해서 당장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전세계 어디서나 제약산업은 본질적으로 규제산업이기 때문에 까다로운 GMP실사, 제품에 관한 품질관리, 원료의약품에 대한 DMF자료, 제조공정에 관한 Validation자료 등의 자료를 모두 구비해야만 수출전선에 나설 수 있다.
그래서 선진국에 비해 덜 까다로운 동남아시아를 1순위 진출국으로 접근한다. 적지 않은 수의 기업이 성과를 내고 있지만 아마도 그보다 더 많은 수의 기업이 예상치 못한 변수로 실패의 쓴맛을 보고 있을 것이다. 혹 어렵게 시장에 진입했다 하더라도 각 국가의 상황에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성과를 지속적으로 내기는 어렵다.
유나이티드제약은 동남아 시장에서 성공적인 시장진입을 위해 적극적으로 현지화 전략을 구사했다. 흔히 현지화라고 하면 지사를 설립하고 현지인을 고용하는 수준 정도로만 이해하지만 사실 현지화의 핵심은 그들과의 적극적 교류와 소통으로 현지실정에 가장 적합한 영업/마케팅 전략과 관계망을 수립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저가전략으로 시장진입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지? 혹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품과 회사의 브랜드파워를 꾸준히 높여 현지 고객들의 신뢰에 기반하여 안정적으로 시장을 확대해 나갈 것인지? 하는 것이다.
현지화에는 순서가 있다.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나열해보면 충분한 시장조사가 가능한 Network구축, 경쟁력 있는 제품의 선별등록이 가능한 현지 보건당국과의 충분한 의사소통능력 및 관계, 현지 마케팅전문가 영입을 통한 지사설립, 제품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 유대와 교류가 가능한 안정적인 프로그램구축 등이다.
두 번째로는 다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글로벌 마인드가 중요하다. 현지인의 문화는 한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이해 하기 힘든 부분도 적지 않다. 문화의 상대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상호간의 이해 증진을 돕고 불필요한 마찰을 줄일 수 있다. 특히 해외지사에 인력을 파견할 때 제품지식, 해외무역실무, 충분한 어학능력 등에만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지문화를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과 개방적 태도이다. 그래야만 현지인의 적극적 고용과 소통, 현지인 관리자에 대한 폭넓은 권한과 책임의 부여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현지화 전략의 핵심은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이다. 한국에서도 더 이상 기업은 이윤만 창출하는 곳이 아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진출국가가 어디든 지속적인 봉사, 기부 등의 사회공헌활동 없이 기업과 매출의 성장을 논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뿐이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이 동남아 국가에서 사회적 공헌활동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는 언론기사를 조금만 검색해 보아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제약 100년 세계로 미래로!<글 싣는 차례>
1)글로벌전략 어떻게 수립해야 하나
2)한국제약기술수준 어디까지 왔나
3)제약 선진국가 현황과 시사점
4)해외진출 현지화 전략으로 극복
4-3 기회는 있다 / 동남아시아시장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미얀마,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라오스, 캄보디아, 브루나이 등 동남아 10개국으로 구성된 아세안은 상호간의 지리적 근접성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인종과 민족, 종교 등이 어우러진 문화적 다양성을 특징으로 한다. 종교만 해도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매우 다양하며 경제적으로도 선진국(싱가포르)과 신흥 부상국(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이 공존하여 다양한 스펙트럼을 나타낸다.
지리적으로도 동북아시아와 인도, 태평양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중심부에 위치하여 주요 성장시장과 경제교류가 활발하다. 국가별로 경제개발 정도 및 소득수준에 차이는 있으나 대외개방형 경제체제를 바탕으로 경제성장 및 산업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동남아시아는 총인구 약 6억명, 총 GDP 1조 7천억 달러의 거대시장과 한국과의 지리적 근접성, 상호보완적인 산업구조, 한류에 호의적인 현지문화 등에 힘입어 2011년 미국, 일본, EU 등을 제치고 우리나라의 2번째 교역상대가 되었고, 2013년에는 한국과의 총 무역규모가 1,311억 달러에 도달하였다.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완제의약품 수출액 상위 10개국 중 아세안이 3자리(1위:베트남, 7위:태국, 10위:필리핀)를 차지할 정도로 우리나라와는 전체무역뿐만 아니라 제약산업에서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의약품 분야에서 동남아시아 시장은 더 이상 호락호락하지 않다. 인도와 중국의약품의 저가 공세, ACTD(Asean Common Technical Dossier)에 입각한 까다로운 의약품 등록, 자국산업보호를 위한 각국별 비관세 장벽 등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고 앞으로도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의 경험을 토대로 동남아 시장에서 가장 효과적인 해외진출 방안의 하나인 현지화 전략을 설명하고자 한다
본 론
아세안 의약품시장도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의 다국적기업과는 품질경쟁력이 있어야 하고 중국, 인도 등의 저가의약품과는 가격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유나이티드제약은 초기에 품질에서는 선진국의 제품에 크게 밀리지 않지만 월등한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수출전선에 뛰어들어 나름 입지를 개척하였다. 하지만 현지에 대한 정보와 경험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직접적인 마케팅 보다는 현지 무역 Agency를 통하여 시장에 진입할 수밖에 없었다. 수출규모가 작을 때에는 특별한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일정한 규모에 도달하자 현지 Agency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기도 하였고, 제네릭 의약품으로서 브랜드 마케팅이 되지 않아 지속적인 매출성장은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것이 현지화 전략이었다. 각국별로 상황과 조건이 달라 일률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워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이 지사를 설립하고 현지화 전략을 추진중인 3개국인 베트남, 필리핀, 미얀마를 나누어 설명하도록 하겠다.
1) 베트남시장
한국 유나이티드제약은 초기에 해외시장 진출방법으로 무역협회, KOTRA, 충남도청,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제공되는 각종 지원제도를 십분 활용하였다. 특히 KOTRA가 실시하는 수출기업화사업 대상업체로 선정되면서 충남무역관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 지원내용으로는 해외상품 시장정보뿐만 아니라 무역실무 교육지원, 카달로그 제작지원, 해외전시회와 지방시장 개척단 참가지원까지 광범위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1994년 베트남에 결핵치료제 피라진아미드정 1만9,332불을 처음으로 수출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1996년까지 P&C라는 현지에이전시를 통해 홈타민진생 외 15품목을 등록하며 수출을 늘려나갔다. 하지만 국내제약회사들이 연이어 베트남에 진출하여 과당경쟁이 벌어졌고, P&C또한 더 이상의 품목확장을 원하지 않아 1997년 말 매출규모 200억원 이상이 되어야 내어주는 설립인가 허가를 받아 1998년 6월 18일에 호치민시에 베트남 지사를 설립하였고 1996년부터는 외국인 산업연수생제도를 활용하여 베트남 연수생들을 전동공장에서 근무하게 하였다.
당시 외국인 노동자들을 채용하면서 다른 사업장보다 많은 돈을 모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내국인 노동자와 똑같이 대접한다는 두 가지 원칙을 세우고 실천했다. 연말이나 공휴일에는 이들을 대표이사 자택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제공하거나 서울시내 관광을 시켜 주기도 했다. 이러한 내용이 전문지, 일간지에 실려 아리랑TV로 위성방송 되었고 이를 본 베트남 국영일간지 노동신문 기자가 베트남으로 귀국한 현지노동자를 인터뷰하고 특집기사로 다루었다.
특히 이 신문은 “베트남 노동자에게 유나이티드제약이 보여준 세심한 대우와 보살핌은 다른 회사에 모범이 될만하다” 면서 칭찬하였고, 당시 해외 근로자들이 한국의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며 겪는 어려움과 몇몇 한국기업들의 횡포가 국내외적으로 문제가 야기되었던 상황에서 노동신문의 기사가 베트남에 대서특필되면서 유나이티드제약의 기업이미지는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유나이티드제약의 베트남 진출에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한류의 탄생과 활용이다. 초기 한류스타중의 한명인 장동건씨가 출연한 드라마 ‘의가형제’가 베트남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었고, 드라마에서의 의사이미지와 홈타민을 접목해 6개월간 대대적인 TV광고를 실시했고 결국 홈타민은 베트남 의약품 시장에서 자양강장제부문 브랜드 인지도 1위를 차지하였다.
베트남으로의 수출이 지속적으로 늘어 5백만달러를 돌파하자 유나이티드제약은 베트남 시장뿐만 아니라 아세안 시장을 겨냥하여 총 6백만달러를 투자하여 대지 3,700평, 건평2,000평 규모의 현지공장을 2001년 건설하였다. 수출품에 대한 까다로운 규제를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지 판매에서도 자국 내에서 생산된 제품이라는 신뢰까지 높임으로써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된 것이다.
2) 필리핀 시장
1993년 첫 수출 당시 에이전시인 RONYT라는 업체에게 필리핀 전체에 대한 판매권을 주고 수출을 시작했지만 93년 3만8,400달러, 94년 5만6,000달러, 95년 2만달러, 96년 5만6,000달러를 수출하는데 그쳐 기대 이하의 실적을 올렸다. 베트남의 경우 수출 첫해인 94년 1만9,332달러에서 96년에 200만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한데 비하면 실적이 매우 미미한 수준이었다. 따라서 베트남과 같이 바이어를 다변화하고 직접 시장을 개발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98년 로니트와 결별을 선언하고 마닐라에 사무실을 개설하고 1년간 60여개의 제품을 등록했다. 거래선도 4개로 늘어나자 본격적으로 수출실적이 올라갔고 지사설립 1년만에 30만달러를 돌파했다. 당시에 필리핀에 의약품을 수출하는 한국제약회사가 거의 없어 한국제품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먼저 바이어들을 한국으로 초청해서 유나이티드제약 공장을 둘러보게 했다.
최신공장시설과 엄격한 품질관리기준 등을 직접보고 나서 이들은 자연스럽게 주문을 늘려 나갔다. 품목으로는 특히 항암제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필리핀 제약산업이 80년대를 지나서 거의 붕괴되었고 유럽이나 미국의 항암제는 아주 고가였으므로 유나이티드제약의 항암제는 아주 인기가 좋았다. 필리핀 수출 400만달러 돌파가 유력한 2013년 현재의 시점에서도 수출의 절반가량은 항암제이다.
중국이나 인도의 제품에 비하면 같은 제네릭이어도 2배이상의 가격으로 판매되는 유나이티드 제품은 현지 바이어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일 수 있다. 이들을 만나 고가의 가격에도 유나이티드 제품을 선호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이구동성으로 유나이티드제약은 현지 지사가 개설되어 있어 제품등록부터 선적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빠르고 특히 긴급한 제품의 선적도 납기를 정확히 맞춰주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다는 부분과 매년 바이어와 고객들을 한국으로 초청하여 공장견학, 문화행사(고객만을 위한 특화된 음악회 등)를 개최하여 항상 친근감이 있어 거래처 변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3) 미얀마 시장
미얀마 지사는 우연한 기회에 설립되었다. 한국의 수출전문 모에이전시가 미얀마에 설립해 놓은 지사가 경영난과 조직내분으로 해체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미래에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2001년에 인수한 것이다. 하지만 미얀마는 특유의 폐쇄적 경제구조로 말미암아 시장정보가 부족하고, 외환거래도 자유롭지 못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매출정체에 늘어나는 경비로 지사철수를 고려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언젠가는 풍부한 지하자원, 넓은 국토와 5천만명이 넘는 인구 등으로 볼 때 경제가 충분히 활성화 될 것으로 믿고 당장의 매출보다는 기존 바이어들과 유대를 굳건히 하는 것에 주력하기로 하였다. 2011년을 기점으로 미얀마 정부가 개혁, 개방을 추진하면서 의약품 거래도 활성화 되고 한류의 영향도 커지면서 수출규모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매년 50만 달러를 넘기기 어려웠다가 2012년에는 약140만을 수출하면서 오랜 인고의 시간에 대한 보답을 받고 있다.
결 론
국내제약시장은 좁다. 굳이 통계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전세계 제약시장의 1.5%정도의 국내시장에 안주해서는 효율적인 성장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은 세계시장 진출만이 정답일 뿐이다. 하지만 방향을 알고 있다고 해서 당장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전세계 어디서나 제약산업은 본질적으로 규제산업이기 때문에 까다로운 GMP실사, 제품에 관한 품질관리, 원료의약품에 대한 DMF자료, 제조공정에 관한 Validation자료 등의 자료를 모두 구비해야만 수출전선에 나설 수 있다.
그래서 선진국에 비해 덜 까다로운 동남아시아를 1순위 진출국으로 접근한다. 적지 않은 수의 기업이 성과를 내고 있지만 아마도 그보다 더 많은 수의 기업이 예상치 못한 변수로 실패의 쓴맛을 보고 있을 것이다. 혹 어렵게 시장에 진입했다 하더라도 각 국가의 상황에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성과를 지속적으로 내기는 어렵다.
유나이티드제약은 동남아 시장에서 성공적인 시장진입을 위해 적극적으로 현지화 전략을 구사했다. 흔히 현지화라고 하면 지사를 설립하고 현지인을 고용하는 수준 정도로만 이해하지만 사실 현지화의 핵심은 그들과의 적극적 교류와 소통으로 현지실정에 가장 적합한 영업/마케팅 전략과 관계망을 수립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저가전략으로 시장진입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지? 혹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품과 회사의 브랜드파워를 꾸준히 높여 현지 고객들의 신뢰에 기반하여 안정적으로 시장을 확대해 나갈 것인지? 하는 것이다.
현지화에는 순서가 있다.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나열해보면 충분한 시장조사가 가능한 Network구축, 경쟁력 있는 제품의 선별등록이 가능한 현지 보건당국과의 충분한 의사소통능력 및 관계, 현지 마케팅전문가 영입을 통한 지사설립, 제품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 유대와 교류가 가능한 안정적인 프로그램구축 등이다.
두 번째로는 다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글로벌 마인드가 중요하다. 현지인의 문화는 한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이해 하기 힘든 부분도 적지 않다. 문화의 상대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상호간의 이해 증진을 돕고 불필요한 마찰을 줄일 수 있다. 특히 해외지사에 인력을 파견할 때 제품지식, 해외무역실무, 충분한 어학능력 등에만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지문화를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과 개방적 태도이다. 그래야만 현지인의 적극적 고용과 소통, 현지인 관리자에 대한 폭넓은 권한과 책임의 부여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현지화 전략의 핵심은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이다. 한국에서도 더 이상 기업은 이윤만 창출하는 곳이 아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진출국가가 어디든 지속적인 봉사, 기부 등의 사회공헌활동 없이 기업과 매출의 성장을 논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뿐이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이 동남아 국가에서 사회적 공헌활동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는 언론기사를 조금만 검색해 보아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