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비임상 전문 출연 연구기관인 안전성평가연구소(소장 이상준. KIT)가 국내의 비임상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FDA의 적격(VAI) 승인을 받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간 우리 제약 산업계 등에서는 미국 FDA가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한 첫 번째 관문이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국산 신약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FDA의 임상시험 실시(IND)와 판매(NDA)허가가 필수적이었다. KIT의 이번 성과는 국산 비임상시험기술로도 미국 FDA 신약 승인이 얼마든지 가능함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국산 신약의 미국 등으로의 신약 허가가 줄을 이을 것으로 기대된다. 말하자면 국산 신약의 글로벌 시장 진출에 청신호가 켜진 셈으로, 카톨릭대학교 GLP 센터 박영철 센터장이 이번 성과가 우리 제약산업계 등에 미칠 의미와 앞으로의 전망 등을 짚어봤다. 다음은 박 센터장의 기고문 전문이다.
약물의 독성 및 안전성에 대해 인류의 관심을 세계적으로 유발한 약물은 독일의 제약회사에서 개발된 탈리도마이드이다.
탈리도마이드는 1953년부터 전세계 50여 개국에서 입덧, 두통, 감기, 불면증 등의 완화제로 판매되었다. 그러나 탈리도마이드는 임신한 여성이 복용할 경우에 태아의 팔다리에 기형을 초래하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확인되어 1961년 시판이 금지되었다. 탈리도마이드의 복용으로 불행히도 유럽에서만 8천명, 전세계 46개국에서 1만명 이상의 기형아가 탄생하는 비극이 초래되었다. 이와 같이 대부분의 서양 국가에서 탈리도마이드에 의한 피해가 발생하였지만 미국은 탈리도마이드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은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미국이 탈리도마이드에 의한 비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미국 식품의약국(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DA)이 탈리도마이드에 대한 독성시험의 제출된 자료 부족, 그리고 제출된 자료로부터 문제점 파악을 통해 탈리도마이드의 자국내 판매허가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이후 미국 FDA는 독성시험의 신뢰성에 대해 심각성을 확인하고 1970년대부터 독성시험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GLP(good laboratory practice, 비임상시험관리규정)라는 제도를 최초로 도입하였다. 이는 신뢰할 수 있는 독성시험 자료를 생산하는 세계적 흐름을 유도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경우에는 1981년부터 GLP제도를 도입하여 화학물질 및 약물에 대한 독성시험에 대한 신뢰성을 회원국 간의 상호인정을 통해 무역장벽을 낮추는 계기로 삼았다. 그러나 미국 FDA는 이러한 국가 간의 상호인정을 무시하고 외국에서 생산된 그 어떤 독성시험도 수행한 기관에 대해 직접적인 실태조사(inspection)없이는 신뢰성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미국 FDA는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고 배타적 기준을 통해 독성시험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 FDA의 신약에 대한 안전성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제약회사들은 수 십 억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독성시험을 미국 내의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독성시험기관에 의뢰할 수 밖에 없다.
지난 2월 27일에 지식경제부산하 정부출연연구소인 안전성평가연구소(Korea Institute of Toxicology, KIT)가 미국 FDA의 실태조사 결과, 국내 비임상 및 독성시험기관 중 최초로 적격승인(VAI, voluntary action indicated)을 받았다는 기쁜 소식이 언론을 통해 확인되었다.
이는 독성시험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로 인하여 신약의 개발 과정 및 인허가에 어떠한 장애도 없다는 것으로 KIT가 독성시험의 수행기관으로서 세계적 수준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내외적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KIT가 이러한 세계적 위상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은 축적된 기술과 조직개편과 더불어 최근 들어 하고자하는 새로운 의지가 가장 큰 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지난 10 여년 동안 우리나라 GLP 제도 안착을 위하여 법적 토대와 GLP 기관에 대한 지원을 아낌없이 베푼 식품의약품안전청 임상제도과와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 FDA 실태조사를 통해 KIT의 독성시험에 대한 신뢰성 확보는 KIT 자체의 위상뿐 아니라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먼저 국내 제약회사가 미국 FDA에 의한 실태조사 결과에 대한 염려로 그 동안 외면했던 독성시험을 국내 기관에 의뢰를 통해 국부 유출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독성시험에 대한 시장 규모는 2011년 기준 991억원 정도이며 이중 600 억원 정도의 규모가 해외 독성시험기관에 의뢰되었다. 그러나 국부 해외유출보다도 이번 KIT의 업적을 통해 해외의 독성시험 수주에 의한 경제적 효과가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매년 미국 FDA에 심사되는 200 여건과 일본과 유럽연합 등에서 심사되는 100 여건의 독성시험을 고려할 때 독성시험 시장규모는 약 3-5 조원으로 추정된다. 이번 KIT의 실태조사에 대한 긍정적인 결과를 통해 해외의 국내 독성시험 기관에 대한 관심의 증가와 더불어 비교우위에 있는 가격 경쟁력을 고려할 때 해외로부터 독성시험 수주가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KIT를 비롯한 중소기업 수준의 국내 18개 독성시험 시험기관의 활성화를 의미하며 이제 막 출발한 새 정부의 경제정책기조인 중소기업활성화에도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KIT 이상준 소장은 이번에 심사 실태조사의 대상이 되었던 동아팜텍의 발기부전치료제 자이데나는 미국과 유럽 등 전세계적으로 약 3억 달러에 달하는 매출과 500명 이상의 고용창출 유발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한다. 결국 이는 국내 바이오산업이 활성화와 더불어 국가의 성장동력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같이 이번 KIT의 업적은 다양한 긍정적인 효과를 유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작용하겠지만 시너지 효과를 위해서는 독성시험 분야와 관련된 다양한 논의를 통해 철저한 준비도 필요하다. 먼저 KIT는 미국 FDA 실태조사 과정에서 얻은 모든 노하우를 민간기업에게 상세히 설명하고 바람직한 독성시험 수행의 개선에 적극 협조하여야 한다. 즉 KIT는 정부출원기관으로의 역할을 통해 독성시험을 수행하는 민간기업의 성장을 견인하여야 한다. 또한 독성시험의 질적 향상을 위해 법적 정비도 고려하여야 한다.
특히 식품의약품안전청은 국내에서 생산된 독성시험자료가 미국 FDA 제출에 제한을 줄 수 있는 법적인 요소는 없는지에 대한 확인과 미국과의 FTA 협정에서 KIT 실태조사 결과가 어떻게 반영 및 작용할 것인지에 대해 숙고할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KIT의 업적은 우리나라의 독성시험 신뢰성에 대해 기념비적인 GLP 역사의 한 장을 마련하였으며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중요한 전환점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KIT가 독성시험과 관련된 관산학의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어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장을 마련해 줄 것을 제안한다. 새롭게 출범한 국민행복 정부는 KIT를 중심으로 한 국내 비임상 안전성시험 평가부분에 대한 국제적 위상에 맞는 관심과 지원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