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처음으로 중국 시장에 발을 내딛은 것은 2011년이다. 이니스프리의 중국 재진출을 위해 중국 여성들을 대상으로 조사하기 위해 상하이를 방문했다. 그 이후 2013년 중국의 2,3,4선 도시들을 방문하여 시장 조사를 겸해 현지 소비자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프로야(珀莱雅, Proya)의 자회사인 한야(韩雅, ANYA)라는 브랜드를 컨설팅하기 위해서였다.
이니스프리의 원브랜드숍 모델이 중국에서 성공을 거두자 이를 벤치마킹하고자 했던 여러 중국 기업들이 컨셉추얼을 찾아 왔다. 이러한 현지 기업과의 다양한 프로젝트는 컨셉추얼의 중국 시장에 대한 이해와 소비자들에 대한 인사이트를 쌓는 좋은 기회가 됐다. 2010년대 초반은 전국에 16만개가 넘게 있었던 화장품 전문점을 중심으로 로컬 브랜드들이 막 성장하고 있을 무렵이다. 2,3선 도시의 외곽이나 심지어 시장통에 있는 화장품 매장들은 한국의 90년대 매장들을 떠올리게 했었다. 화장품 소비가 온라인 중심으로 이동함에 따라 이러한 오프라인 매장들의 생존을 위한 변화 과정도 매년 지켜볼 수 있었다.
바이췌링(百雀羚, Pechoin)이라는 중국의 NO.1 브랜드가 컨셉추얼을 찾아온 것은 2016년이었다. 8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상하이에 기반을 둔 브랜드로 2010년대에 와서야 본격적인 성장을 하게 된 중국의 대표 브랜드였다. 약 2년 정도 뒤늦게 찾아온 기업은 프로야. 바이췌링에서 흔쾌히 ‘도와 줘도 된다’고 허용해줄 만큼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항저우의 후발 기업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채 되지 않은 지금 두 기업의 운명은 정확히 뒤바뀌고 말았다. 바이췌링은 정체되어 있는 반면에 프로야는 중국 화장품의 최정점에 있는 No.1 회사로 성장했다. 분명 컨셉추얼은 3~4년 동안 두 기업 모두에게 트렌드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컨설팅과 마케팅 자문을 제공했다. 왜 이런 상반된 결과를 맞게 되었을까? 답은 중국 시장의 트렌드 변화에 어떻게 대응했는가에 있다.
이미 오프라인의 최강자였던 바이췌링의 비전은 한국의 설화수, 프랑스의 로레알, 일본의 시세이도처럼 중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었다. 컨셉추얼은 그 당시 초본화장품이었던 바이췌링의 콘셉트를 ‘동방초본, 동방문화, 동방미학’ 세 축으로 잡고 중국의 문화적인 상징성을 갖기 위한 브랜딩 활동을 제안했다. 이 전략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자금성과의 컬래버레이션, 중국의 미학을 담은 스페셜 상품 기획과 커뮤니케이션은 중국 소비자들에게 큰 관심과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오프라인에 강력한 기반을 가지고 있던 바이췌링은 온라인 전환 시점을 놓치게 되었고, 이는 급성장하는 온라인 시장에서 소외되는 결과를 낳았다. “중국은 큰 나라라 트렌드가 그렇게 빠르게 바뀌지 않아요.” 이렇게 말하며 온라인 시대에 맞춰 제안한 혁신 방안들의 실행을 뒤로 미룬 탓이다. 궈차오(国潮)의 가장 큰 수혜자이자 그 흐름을 이끌었던 바이췌링은 이제 온라인 전환에 기업의 사활을 걸고 있다.
반면, 프로야의 경우 2018년 컨설팅 최종보고가 이뤄진 다음달 바로 전격적인 변화에 돌입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나뉘어 있던 조직을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하고 히트상품 개발과 육성, 콘셉트 성분 연구, 해외 연구소와의 협력, 패키지 디자인의 혁신 등 전방위적인 변화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이뤄졌다. 2020년대에는 자오씨완에이(早C晚A)라는 스킨케어 루틴을 제안하면서 뷰티 트렌드를 선도하는 회사로 진화했다. 그 결과 프로야는 매년 30%의 성장을 거듭하며 2017년 3000억 규모에서 2024년 2조원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빠르고 과감한 디지털 전환과 소비자 인사이트 중심의 브랜딩을 도입한 결과였다.
한 때 이니스프리와 설화수를 부러워했던 중국 기업들은 이제 더 이상 한국 브랜드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중국 소비자들도 다양한 성공과 실패의 경험, 그리고 넘치는 뷰티 정보로 무장한 똑똑한 소비자가 됐다. 더 이상 ‘국산애호(国潮)’를 외치거나 수입 화장품이면 다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 피부 타입에 잘 맞는지, 내 피부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지를 꼼꼼하게 따진다. 그런 그들에게 K-뷰티는 더 이상 프리미엄도 아니고 선망의 대상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니 ‘한국 올리브영 No.1’이면 중국에서도 먹힐 거라는 생각은 이제 접는 게 좋다.
한국화장품이 저가격으로 무장한 중국의 로컬 브랜드들에 밀렸다는 것도 옛말에 불과하다.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국 소비자들은 로컬 브랜드에 대해 100 위안 이상을 지불하려 하지 않았다. 한국화장품이 프리미엄 이미지를 누릴 수 있었던 시기는 그 때까지다. 지금은 100 위안을 넘어 300, 500 위안이 넘는 중국 화장품들도 히트상품의 반열에 이름을 올린다. 심지어 한국 브랜드의 제품들이 로컬 브랜드보다 저가인 경우도 흔한 일이 됐다. 중국 시장에서 여전히 가격만이 경쟁력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큰 오판이다.
한한령으로부터 팬데믹 시기까지 거치면서 중국 시장은 마치 블랙박스에 담긴 미지의 시장이 됐다. ‘탈중국’ 분위기 속에서 미국, 일본 등 새로운 해외 시장으로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중국 시장에 대한 정보의 공백 상태가 심화된 때문이다.
중국의 소비 트렌드와 한국 기업들 간의 간극은 더 벌어졌다. 최근 중국 출장을 가서 오프라인 매장에서 찾은 한국 제품들은 함께 진열되어 있는 중국의 로컬 제품들과 비교해볼 때 낡아 보였다. 중국을 왕래한 지 1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처음 느껴보는 위기감이었다.
중국 로컬 제품들 중에서는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새롭고 혁신적인 제품들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요즘 중국은 온라인에서 어떤 트렌드가 시작되면 실시간으로 오프라인에도 적용된다. 오프라인 매장들의 생존 본능이다. 소비자의 눈높이에 해당하는 매대의 골든존은 대부분 중국의 로컬 브랜드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것은 궈차오라고 불리우는 중국의 애국소비 때문이 아니다. 중국 로컬 브랜드들의 제품이 한국 제품들을 앞서 있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만큼 격차가 나 있었다. 새로운 제형, 새로운 포장, 그리고 디자인 감각에서도 그러했다. 현재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소비 트렌드와도 딱 붙어 있는 제품들이었다.
중국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까운 최대 시장이다. 하지만 이제 중국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따이공, 총판, 왕홍에 의지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똑똑해진 콧대 높은 중국 여성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그들의 아침 저녁 스킨케어 루틴과 메이크업 방법,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고 있는 라이프스타일까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브랜딩은 소비자들과 썸을 타고, 연애를 하는 과정이다. 중국의 그녀들을 이해할 수 없다면 썸을 타는 것조차도 어렵다. 이제 요행수는 없다. 진짜 브랜딩만이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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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처음으로 중국 시장에 발을 내딛은 것은 2011년이다. 이니스프리의 중국 재진출을 위해 중국 여성들을 대상으로 조사하기 위해 상하이를 방문했다. 그 이후 2013년 중국의 2,3,4선 도시들을 방문하여 시장 조사를 겸해 현지 소비자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프로야(珀莱雅, Proya)의 자회사인 한야(韩雅, ANYA)라는 브랜드를 컨설팅하기 위해서였다.
이니스프리의 원브랜드숍 모델이 중국에서 성공을 거두자 이를 벤치마킹하고자 했던 여러 중국 기업들이 컨셉추얼을 찾아 왔다. 이러한 현지 기업과의 다양한 프로젝트는 컨셉추얼의 중국 시장에 대한 이해와 소비자들에 대한 인사이트를 쌓는 좋은 기회가 됐다. 2010년대 초반은 전국에 16만개가 넘게 있었던 화장품 전문점을 중심으로 로컬 브랜드들이 막 성장하고 있을 무렵이다. 2,3선 도시의 외곽이나 심지어 시장통에 있는 화장품 매장들은 한국의 90년대 매장들을 떠올리게 했었다. 화장품 소비가 온라인 중심으로 이동함에 따라 이러한 오프라인 매장들의 생존을 위한 변화 과정도 매년 지켜볼 수 있었다.
바이췌링(百雀羚, Pechoin)이라는 중국의 NO.1 브랜드가 컨셉추얼을 찾아온 것은 2016년이었다. 8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상하이에 기반을 둔 브랜드로 2010년대에 와서야 본격적인 성장을 하게 된 중국의 대표 브랜드였다. 약 2년 정도 뒤늦게 찾아온 기업은 프로야. 바이췌링에서 흔쾌히 ‘도와 줘도 된다’고 허용해줄 만큼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항저우의 후발 기업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채 되지 않은 지금 두 기업의 운명은 정확히 뒤바뀌고 말았다. 바이췌링은 정체되어 있는 반면에 프로야는 중국 화장품의 최정점에 있는 No.1 회사로 성장했다. 분명 컨셉추얼은 3~4년 동안 두 기업 모두에게 트렌드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컨설팅과 마케팅 자문을 제공했다. 왜 이런 상반된 결과를 맞게 되었을까? 답은 중국 시장의 트렌드 변화에 어떻게 대응했는가에 있다.
이미 오프라인의 최강자였던 바이췌링의 비전은 한국의 설화수, 프랑스의 로레알, 일본의 시세이도처럼 중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었다. 컨셉추얼은 그 당시 초본화장품이었던 바이췌링의 콘셉트를 ‘동방초본, 동방문화, 동방미학’ 세 축으로 잡고 중국의 문화적인 상징성을 갖기 위한 브랜딩 활동을 제안했다. 이 전략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자금성과의 컬래버레이션, 중국의 미학을 담은 스페셜 상품 기획과 커뮤니케이션은 중국 소비자들에게 큰 관심과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오프라인에 강력한 기반을 가지고 있던 바이췌링은 온라인 전환 시점을 놓치게 되었고, 이는 급성장하는 온라인 시장에서 소외되는 결과를 낳았다. “중국은 큰 나라라 트렌드가 그렇게 빠르게 바뀌지 않아요.” 이렇게 말하며 온라인 시대에 맞춰 제안한 혁신 방안들의 실행을 뒤로 미룬 탓이다. 궈차오(国潮)의 가장 큰 수혜자이자 그 흐름을 이끌었던 바이췌링은 이제 온라인 전환에 기업의 사활을 걸고 있다.
반면, 프로야의 경우 2018년 컨설팅 최종보고가 이뤄진 다음달 바로 전격적인 변화에 돌입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나뉘어 있던 조직을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하고 히트상품 개발과 육성, 콘셉트 성분 연구, 해외 연구소와의 협력, 패키지 디자인의 혁신 등 전방위적인 변화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이뤄졌다. 2020년대에는 자오씨완에이(早C晚A)라는 스킨케어 루틴을 제안하면서 뷰티 트렌드를 선도하는 회사로 진화했다. 그 결과 프로야는 매년 30%의 성장을 거듭하며 2017년 3000억 규모에서 2024년 2조원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빠르고 과감한 디지털 전환과 소비자 인사이트 중심의 브랜딩을 도입한 결과였다.
한 때 이니스프리와 설화수를 부러워했던 중국 기업들은 이제 더 이상 한국 브랜드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중국 소비자들도 다양한 성공과 실패의 경험, 그리고 넘치는 뷰티 정보로 무장한 똑똑한 소비자가 됐다. 더 이상 ‘국산애호(国潮)’를 외치거나 수입 화장품이면 다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 피부 타입에 잘 맞는지, 내 피부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지를 꼼꼼하게 따진다. 그런 그들에게 K-뷰티는 더 이상 프리미엄도 아니고 선망의 대상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니 ‘한국 올리브영 No.1’이면 중국에서도 먹힐 거라는 생각은 이제 접는 게 좋다.
한국화장품이 저가격으로 무장한 중국의 로컬 브랜드들에 밀렸다는 것도 옛말에 불과하다.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국 소비자들은 로컬 브랜드에 대해 100 위안 이상을 지불하려 하지 않았다. 한국화장품이 프리미엄 이미지를 누릴 수 있었던 시기는 그 때까지다. 지금은 100 위안을 넘어 300, 500 위안이 넘는 중국 화장품들도 히트상품의 반열에 이름을 올린다. 심지어 한국 브랜드의 제품들이 로컬 브랜드보다 저가인 경우도 흔한 일이 됐다. 중국 시장에서 여전히 가격만이 경쟁력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큰 오판이다.
한한령으로부터 팬데믹 시기까지 거치면서 중국 시장은 마치 블랙박스에 담긴 미지의 시장이 됐다. ‘탈중국’ 분위기 속에서 미국, 일본 등 새로운 해외 시장으로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중국 시장에 대한 정보의 공백 상태가 심화된 때문이다.
중국의 소비 트렌드와 한국 기업들 간의 간극은 더 벌어졌다. 최근 중국 출장을 가서 오프라인 매장에서 찾은 한국 제품들은 함께 진열되어 있는 중국의 로컬 제품들과 비교해볼 때 낡아 보였다. 중국을 왕래한 지 1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처음 느껴보는 위기감이었다.
중국 로컬 제품들 중에서는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새롭고 혁신적인 제품들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요즘 중국은 온라인에서 어떤 트렌드가 시작되면 실시간으로 오프라인에도 적용된다. 오프라인 매장들의 생존 본능이다. 소비자의 눈높이에 해당하는 매대의 골든존은 대부분 중국의 로컬 브랜드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것은 궈차오라고 불리우는 중국의 애국소비 때문이 아니다. 중국 로컬 브랜드들의 제품이 한국 제품들을 앞서 있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만큼 격차가 나 있었다. 새로운 제형, 새로운 포장, 그리고 디자인 감각에서도 그러했다. 현재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소비 트렌드와도 딱 붙어 있는 제품들이었다.
중국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까운 최대 시장이다. 하지만 이제 중국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따이공, 총판, 왕홍에 의지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똑똑해진 콧대 높은 중국 여성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그들의 아침 저녁 스킨케어 루틴과 메이크업 방법,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고 있는 라이프스타일까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브랜딩은 소비자들과 썸을 타고, 연애를 하는 과정이다. 중국의 그녀들을 이해할 수 없다면 썸을 타는 것조차도 어렵다. 이제 요행수는 없다. 진짜 브랜딩만이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