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과 K-방역, 그 다음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글로벌 제약의 주소는 어디일까?
KHIDI(한국보건산업진흥원) 미국지사가 개최한 메디컬 코리아 재외공간 온오프라인 세미나에서 “위드코로나 시대, 보스톤 바이오 생태계 진출전략‘을 주제로 행사가 진행됐다. 이날 혁신신약살롱의 이승주 박사(오름테라퓨틱스 대표)는 한국에서 글로벌 제약사가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진단하고 제약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승주 박사는 라이센싱 아웃 사태를 두고 몇 가지 오해를 지적하며, “신약 개발이 장기적인 투자로 이어질 수 있도록 바이오벤처가 독자적인 파이프라인을 가지고 유상증자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박사는 “일반적으로 신약 1개를 만드는 데에 약 12년의 시간과 1.2조원의 비용이 든다고 본다. 그런데 한국의 유력 바이오벤처 42개를 모두 합쳐야 1조 2000억원이 넘는다. 그러다 보니 세계 제약 시장의 1.2%를 차지하는 시장에서 신약 개발을 위한 자본을 창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뒤이어 “제약 산업은 특히 자본시장 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자사의 신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펀딩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 시장과 자본의 규모가 작다보니 계속해서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라이센싱 아웃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의 빅파마들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만들어진 제약회사이다. 전 세계 제약시장과 자본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는데다 신약개발에 능숙한 숙련된 인재들이 포진하고 있기 때문에 놀라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승주 박사는 유럽의 글로벌 제약사의 상황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몇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프랑스, 독일과 달리 덴마크나 스위스에서 글로벌제약사가 있다는 것은 국내 시장보다 작은 규모로도 글로벌 제약사로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이승주 박사는 덴마크와 스위스의 글로벌 제약사들의 상장 전략이 신약개발의 중심을 이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들의 유럽 글로벌 제약은 미국으로 가서 끊임없이 유상증자를 통해 R&D 비용을 생산해낸다. 소위 ‘주식 예탁 증서’로 미국 은행과 계약을 맺고 달러를 투자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에 따르면 덴마크의 노보 노디스크나 젠맵의 노보자임과 같이 시총이 180조 넘어가는 큰 회사들은 모두 뉴욕 증시에 상장을 하거나 장외로 거래하는 OTC에서 자본을 끌어온다. 이승주 박사는 끊임없이 유상증자를 할 수 있는 점을 미국 자본의 장점으로 꼽는다.
중국의 다국적 제약사도 마찬가지다. 자이랩(Zai Lab)의 경우 매년 유상증자를 하여 홍콩, 상해, 뉴욕에 걸쳐 3중으로 투자금이 걸쳐 있다. 베이진(Beigene)은 시총 40조원에 이르러 아시아 범위 내에 가장 글로벌 제약사에 근접한 규모를 가지고 있다. 베이진은 2016년 처음 나스닥에 IPO(기업 공개)를 시작해 이후로 유상증자를 통해 공모자금을 끌어들여 왔다. 현재 베이진은 1만 2천 명 정도 환자의 임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보유한 현금은 5.6조원에 이르러 신약 세 개는 만들 수 있는 규모를 갖췄다. 내년에는 상해에서 3중 교차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유상증자가 아닌 계속해서 사채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유치한다. 소위 ‘전환 사채’라고 하는데 회사채를 발행하는 것은 신약 개발에 부담을 준다. 이승주 박사는 이러한 자금 유동 방식이 ‘글로벌 스탠다드’와 멀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한국의 유상상장의 규제에 묶여 유동적인 자금 형성이 가로막힌다는 것.
이승주 박사는 “신약개발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생각하면 정부에서 지원정책을 펼치고 펀드를 만드는 수준에서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왜 쿠팡이 미국에 법인을 내고 옮겨 갔는지 생각해보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승주 박사는 “국내 바이오벤처가 부족한 자금을 메우기 위해 라이센싱을 일찍이 포기하고, 연구를 주도할 인재들을 키우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는 반드시 끊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