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도 못 쓰는 말 뿐인 국가필수의약품 '항생제'
지난 해 이어 올해도 지적된 '항생제 접근성'…"경평면제 제도 개선 시급"
입력 2022.11.25 06:00 수정 2022.11.2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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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급여 제도의 한계로 인해 임상적 가치를 적절히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발생해, 항생제 내성균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작년에 이어 올해 국정감사를 통해 항생제 신약의 낮은 접근성이 지적된 것. 정부는 항생제 내성균으로부터 국민 건강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지난 2016년부터 ‘국가 항생제 내성관리 대책’을 수립해 운영하고 있다. 다만, 해당 대책은 항생제 사용량의 통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20년 제도 개선을 통해 항생제가 경제성평가 면제 대상 약제에 포함됐으나, 항생제 전체가 아닌 세균을 치료하는 약제인 ‘항균제’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돼 항진균제, 항바이러스제 등은 여전히 급여권 진입에 난항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건보공단ㆍ심평원 국정감사에서 최재형 국민의 힘 의원은 “우리나라 약가 책정이 다른 국가와 비교해 낮기 때문에 아직도 항생제 내성균에 대해 수 십 년 전에 개발된 항생제로 돌려 막기를 하고 있다”며 “다제내성세균에 효과적인 항생제 접근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항생제 내성의 위험성에 관해서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남의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6년 영국에서 발표한 항생제 내성관련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에는 항생제 내성으로 3초마다 1명이 다제내성세균으로 인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 바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항생제 내성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항생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급여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새롭게 개발된 항생제는 ‘저박사’ 외에는 없는 실정이다. 그나마 저박사도 허가 5년만인 올 10월부터 급여권에 진입했다.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2014년 이후 FDA는 15개, EMA는 9개의 항생제 신약을 도입했으나, 국내 허가는 단 3개에 불과하다. 그 마저도 비급여 혹은 국내 출시 포기를 선택했다.
 
아울러 미국에서는 허가를 받은 15개의 항생제 중 9개는 국내에서 3상 임상까지 진행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임상이 이루어졌음에도 슈퍼 항생제의 국내 도입 환경은 매우 척박하다는 의견까지 제시됐다. 즉 우리나라 국민들은 항생제 내성균에 무방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항생제 내성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는 ‘치료제 도입’이라고 할 수 있다. 항생제 내성은 항생제 오남용 이외에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데, 적합한 치료제 도입이 중요하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이에 발맞춰 최근 다제내성 또는 치료가 어려운 세균ㆍ진균ㆍ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잇는 새로운 항생제가 개발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바로 ‘접근성’이다. 새롭게 개발된 항생제가 국내 급여권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대체약제와 비교해 비용효과적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체 약제가 오래 전 출시된 약제로, 분명하게는 이 오래된 약제와 경쟁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적으로 저렴한 약가로 국내에 급여신청을 해야만 심사가 이루어진다.
 
물론 항생제처럼 대체제가 없어 상대적으로 근거 생성이 어려운 치료제의 급여 등재 지연을 보완하기 위해 ‘경제성 평가 면제’ 제도가 존재한다. 경제성 평가 면제 제도는 경제성 평가 자료 작성이 곤란해 보험적용이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로 2020년 제도의 일부가 개선됐다.
 
다만 개선 관정에서 경평면제 대상 범위가 ‘항생제’에서 ‘항균제’로 좁혀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항생제를 좁은 의미에서만 해석하다 보니 항진균제, 항바이러스제는 경평면제 대상에서 제외된 것.
 
이에 올해 국정감사에서 김선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은 “새로운 항생제 도입이 더딘 이유는 약가 문제보다는 경제성 평가 문제”라며 “기존에는 항생제가 경제성 평가 때문에 급여에 부담을 느꼈는데, 현재는 경평면제를 도입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김 원장의 발언은 옳은 답변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람에게 감염을 일으키는 다제내성 혹은 치료가 어려운 세균, 진균, 바이러스 등 많은 원인 미생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세균’만을 인정하고 항균제에 대해서만 치료제 접근성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
 
제한적인 경평면제 제도로 급여를 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항생제로 화이자의 ‘크레셈바’가 주로 언급된다.
 
크레셈바는 지난 2020년 1월, ‘만 18세 이상 성인에서 침습성 아스페르길루스증 및 암포테리신 B투여가 적합하지 않은 침습성 털곰팡이증 치료에서 사용’하도록 허가 받았다. 침습성 아스페르길루스증과 털곰팡이증은 감염 시 매우 치명적인 결과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크레셈바는 허가를 획득한 이듬해에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크레셈바가 ‘항진균제’라는 카테고리에 속하다 보니 경평면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국가필수의약품에 지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성 평가를 통해 급여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비용효과성을 입증해야만 급여 심사를 진행할 수 있다.
 
서정숙 국민의 힘 의원은 국정감사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지적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경평면제 대상 확대에 대해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보완할 예정이라고 답했지만, 전문가들는 “이는 단순히 당시 순간을 모면하려는 궁여지책”이라며,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학계에서도 항균제인 저박사와 항진균제인 크레셈바 모두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되어 접근성 개선의 필요성이 인정된 약제라며, 경평면제 대상에서 또 다시 항생제 중 항균제만으로 한정하는 것은 과도하고 중복적인 규정이라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근거 생성이 어려워 보험 등재가 지연되고 있는 치료제의 접근성을 제고하겠다는 경평면제 제도의 원래 취지처럼, 비용효과성 입증의 어려움으로 급여가 지연되고 있는 항진균제, 항바이러스제 또한 경평면제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최재형 의원 또한 국정감사를 통해 “약가 협상을 통한 건보재정 절약도 중요하나, 국민에게 심각한 위협을 초래하는 다제내성 혹은 치료가 어려운 미생물을 치료할 항생제 있음에도 건보재정을 이유로 이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재고해 봐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약계 한 관계자는 “필요한 약제를 빠르게 처방받을 수 있고, 대한민국이 의료선진국으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경제성 평가 제도 개선을 통해 항생제 신약 접근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동건 카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혈액암, 조혈모세포이식 등으로 면역력이 저하된 환자들에서 진균감염 유병률이 높고,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한 합병증으로의 진균감염도 문제가 되고 있다”며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가 개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해외 국가와는 다르게, 치료제를 빠르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국가필수의약품의 경우 환자의 생사를 가를 수 있는 중요한 의약품이라는 의미인데, 국내환자 접근성이 낮다 보니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라며 “국내 진균감염의 위험은 앞으로도 커질 전망이기 때문에 효과적인 치료 대안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경평면제와 같은 제도 개선을 통해 환자가 필요한 약제를 제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미리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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