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후 매일 이어진 브리핑을 통해 국민들 기억 속에 각인된 인물이 있다면 한 명은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 또 한 명은 보건복지부 손영래 의료보장심의관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2년 넘게 복지부 대변인을 맡으며 ‘복지부의 입’으로 통했던 그는 지난 9월 30일자로 의료보장심의관으로 발탁된 데 이어, 이달 말께 미국 캘리포니아 단기 파견을 앞두면서 국내에서 한동안 자취를 감출 준비를 하고 있다. 전문기자협의회는 전세계 전무후무했던 바이러스와의 사투 속에서 국민들에게 실시간 상황을 알리기 위해 쉼없이 달려온 그의 지난 28개월의 소회를 들어봤다.
“지지난주 금요일(10월 28일)부터 브리핑은 그만했습니다. 코로나 브리핑은 처음에 문안 만드는 것부터 참여했어요. 김강립 전 복지부 1차관님 때부터 제 업무였습니다. 2020년 1월에 합류해 사회적 거리두기와 브리핑을 맡았죠. 28개월정도 했습니다.”
손영래 심의관은 코로나 브리핑으로 마음의 여유가 없던 탓에 당시 대변인 신분임에도 2년간 보도설명자료를 한 건도 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보도가 어떻게 났는지 확인조차 어려웠다는 그는 너무 많은 업무에 일하기도 바빴다고 덧붙였다. 브리핑 대응만으로도 쉽지 않았고, 비대면 시기 브리핑 시스템을 새롭게 만들어 처음에는 매일 브리핑을 진행하기도 한 그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위기 상황에 1년 반을 바짝 긴장한 채 보냈다.
“다른 걸 신경쓸 틈이 별로 없었습니다. 2020년 1월에 처음 코로나19가 등장했을 때 어리둥절했고, 대구시에 코로나가 확산됐을 때는 혼비백산했어요. 다들 힘들어 했죠. 대구 확산을 진정시킨 후 마음이 놓였을 때는 외국의 확산 상황이 너무 심각해 놀랐습니다. 처음 1년간은 바짝 긴장했던 시기였고 놀라운 사건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시기 국내에서는 코로나19뿐만 아니라 의대생과 전공의 총파업이 맞물려 벌어졌다. 손 심의관은 당시 괴로웠던 심경도 회상했다.
“보건의료정책국에서 의대 정원 증원 얘기가 먼저 나왔고, 중수본에서 개입했던 것은 응급실 문제 등 파업에 대응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확진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대응 자원이 빠져나가는 부분이니까 대응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의사 출신의 전문성을 살려 문재인 케어를 무리없이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선 의료보장심의관으로 임명되면서 자신이 이룬 성과를 재검토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보장성 강화는 박근혜 정부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당시 선별급여라는 부분이 있었는데, 제 입장에선 10년 정도의 프로젝트였고 크게 일단락되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남아있는 비급여는 논란거리죠. 우리나라는 특이한 비급여 시술이 많은데, 수술요법이나 비수술요법 중 급여 항목에 수가가 낮으니까 의학적 타당성이 떨어져도 실시되는 경우가 있는데 급여화할 것이냐가 골치아픈 부분이죠.”
하지만 손 심의관은 전체적인 보장성 강화가 10년 정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올라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예전처럼 의료빈곤 문제로 인한 가계파탄은 억제되지 않았느냐는 그는 건강보험 보장성도 대폭 강화됐고 본인부담 상한제를 통해 한도 이상은 지원, 거기서도 탈락하면 재난적 의료비 지원체계 등 3종 체계가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제 의료비 가계파탄은 없어졌다고 평가했다.
“이번 정부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보장성 강화를 공격적으로 하기 보다는 빠르게 확대해왔으니 앞으로는 누수되는 부분을 잡는 것도 필요합니다. 지금 단단히 다져와야 문제되는 부분을 확장시킬 수 있습니다.”
다만 손 심의관은 문케어의 보장률에 대해서는 따로 따져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보장률은 반이 비급여, 반이 본인부담금인데, 본인부담금은 상한제라는 기전이 있어 이를 낮추는 것은 국민적 논의가 필요합니다. 비급여는 반 정도 되는데, 7~8할이 아직 비필수적 비급여에요. 이를 없애고 급여로 끌어들일 것이냐도 문제에요. 보장률 지표를 분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의학적 효과는 있는데 비용효과성 문제로 경제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비급여가 되는 경우와, 의학적 필요성이 떨어지는 비급여를 분리해야 하지 않느냐가 학계 내 논쟁거리입니다. 하지만 보장률은 우리나라만 생산하는 지표로, 국제비교가 안 되다 보니 이 지표의 적정 수준을 정확히 모른다는 게 문제에요.”
그러면서도 문케어 때문에 재정이 고갈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박했다.
“고령화 얘기를 항상 재정 문제와 연결시키는데, 문케어 때문에 재정이 고갈된다면 문케어를 중단할 경우 재정이 남게 될까요? 후폭풍으로 2~3년 뒤에 돌아올 일입니다. 중단한다고 흑자가 쌓인다고 보진 않습니다. 재정은 적게 쓰면 문제가 되지 않아요. 당시에 2~3년만 지나면 재정수지가 괜찮을 것이라는 얘기를 계속했는데, 지금 재정이 거의 비슷하게 가고 있습니다. ”
그는 복지부 보험급여과장부터 지금까지 의료계와 다양한 업무를 해 온 만큼 의료계를 향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같이 변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현상유지만 해선 안 될 것 같아요. 필수의료 문제도 그렇습니다. 서로 이해관계가 얽히다 보니 주어진 체계로만 가고 있는데 5~10년 뒤에도 이럴 수 있을지 걱정스럽습니다. 문케어를 하면서도 신경썼던 것이 건강보험 저수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보장성 강화를 활용하자는 방안이 있었습니다. 수가도 그렇고 인력구조도 마찬가지고 과감하게 잘 되는 쪽으로 뚫어야 합니다. 이대로 가면 악화될 수 있어요. 필수의료도 갈수록 전공의가 안 몰리는 곳은 그대로 두면 점점 나빠질 겁니다. 큰 틀에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으로 구조개혁에 맞춰야 할 겁니다. 고령화로 인해 여유 기간은 많지 않아요. 5~6년 정도 지나면 의료비 상승 속도가 가파를 겁니다. 전체적으로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지금이 적기 같아요. 건강보험 재정이 압박을 받아 상황이 악화되면 큰 구조개혁 논의는 쉽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