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유익
얼마 전 교회의 한 집사님으로부터 부탁을 하나 받았다. 처음으로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려는 초신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면 무슨 유익이 있는가?’에 대해 한 말씀 해 달라는 것이었다. 부담을 느끼던 중, 신앙생활의 앞면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뒷면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설명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 하나님을 믿는 믿음
믿음이란 우주를 포함한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창조와 존재, 그리고 운행의 질서를 주관하시는 무변광대(無邊廣大)한 절대자, 곧 창조주가 계심을 믿는 것이 아닐까 한다.
무변광대하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나는 우주가 끝없이 무한(無限)하다는 개념 자체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우주가 유한(有限)하다고 가정하면, 그 끝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무한한 우주와 자연의 질서정연함, 그리고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의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신비를 잠시만 생각해 보아도, 이 모든 일에서 창조주의 개입을 배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시계의 모든 부속을 모자 안에 넣고 아무리 오래 흔들어도 저절로 시계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는 말이 있다. 삼라만상의 창조와 질서는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창조주가 개입하신 필연의 결과라는 뜻이다. 우리는 그 창조주를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창조주 하나님이 얼마나 무변광대하신 분인지는 사람이 짐작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서는 일인 것 같다. 개미들이 평화롭게 사는 마을에 어느 날 코끼리가 지나가다 소변을 보아 대홍수가 났다고 상상해 보자. 온 마을의 지혜로운 개미들이 몇 달을 연구하고 토론해도 끝내 홍수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할 것이다. 코끼리와 그 소변은 개미가 이해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서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역시 인간의 헤아림 속에 갇히실 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크심뿐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의도(意圖) 또한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고(故) 하용조 목사께서 "당신이 하나님을 이해한다면 당신이 하나님이지."라고 하신 말씀에 공감한다.
믿음이란 결국 무변광대한 능력을 지니신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경배하며 찬양하는 일일 것이다.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자랑할 만한 능력이 티끌만큼이라도 있겠는가?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믿는 사람은 감히 하나님 앞에서 교만할 수 없다. 자연스럽게 범사에 겸손해지고, 티끌 같은 나에게 인생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된다. '멸망의 지름길'이라 불리는 교만에서 벗어나 범사에 감사하며 살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유익은 참으로 크지 않은가?
2. 이웃에 대한 사랑
다음으로 믿음의 뒷면인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자. 기독교는 예수님을 믿는 종교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사람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이제 우리는 사람이신 예수님의 삶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더욱 분명하게 배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마지막 카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몸소 사랑을 보여주셨고,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사람의 아기는 개나 소, 말과 달리 자립할 때까지 매우 오랜 세월 부모의 돌봄을 필요로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긴 돌봄의 시간을 감당할 수 있도록 부모의 마음에 깊고도 큰 자식 사랑을 심어 주신 것 같다. 애초에 사랑이 없으면 인생을 시작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틈만 나면 가족과 이웃 사이에서, 나아가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질투하고 증오하며 전쟁을 벌인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사랑’이 여러 가르침 중에 제일 중요하다고까지 말씀하셨다. 믿는 사람들이 먼저 사랑의 본을 보이라고 하신 것이다. 모두가 서로 서로 사랑하는 사회, 생각만 해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맺음말
하나님을 믿으면 위로는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범사에 감사하게 되며, 아래로는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믿음 생활이 가져다주는 유익이 충분히 크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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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어 순차적으로 발간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믿음의 유익
얼마 전 교회의 한 집사님으로부터 부탁을 하나 받았다. 처음으로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려는 초신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면 무슨 유익이 있는가?’에 대해 한 말씀 해 달라는 것이었다. 부담을 느끼던 중, 신앙생활의 앞면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뒷면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설명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 하나님을 믿는 믿음
믿음이란 우주를 포함한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창조와 존재, 그리고 운행의 질서를 주관하시는 무변광대(無邊廣大)한 절대자, 곧 창조주가 계심을 믿는 것이 아닐까 한다.
무변광대하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나는 우주가 끝없이 무한(無限)하다는 개념 자체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우주가 유한(有限)하다고 가정하면, 그 끝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무한한 우주와 자연의 질서정연함, 그리고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의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신비를 잠시만 생각해 보아도, 이 모든 일에서 창조주의 개입을 배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시계의 모든 부속을 모자 안에 넣고 아무리 오래 흔들어도 저절로 시계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는 말이 있다. 삼라만상의 창조와 질서는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창조주가 개입하신 필연의 결과라는 뜻이다. 우리는 그 창조주를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창조주 하나님이 얼마나 무변광대하신 분인지는 사람이 짐작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서는 일인 것 같다. 개미들이 평화롭게 사는 마을에 어느 날 코끼리가 지나가다 소변을 보아 대홍수가 났다고 상상해 보자. 온 마을의 지혜로운 개미들이 몇 달을 연구하고 토론해도 끝내 홍수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할 것이다. 코끼리와 그 소변은 개미가 이해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서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역시 인간의 헤아림 속에 갇히실 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크심뿐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의도(意圖) 또한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고(故) 하용조 목사께서 "당신이 하나님을 이해한다면 당신이 하나님이지."라고 하신 말씀에 공감한다.
믿음이란 결국 무변광대한 능력을 지니신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경배하며 찬양하는 일일 것이다.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자랑할 만한 능력이 티끌만큼이라도 있겠는가?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믿는 사람은 감히 하나님 앞에서 교만할 수 없다. 자연스럽게 범사에 겸손해지고, 티끌 같은 나에게 인생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된다. '멸망의 지름길'이라 불리는 교만에서 벗어나 범사에 감사하며 살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유익은 참으로 크지 않은가?
2. 이웃에 대한 사랑
다음으로 믿음의 뒷면인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자. 기독교는 예수님을 믿는 종교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사람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이제 우리는 사람이신 예수님의 삶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더욱 분명하게 배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마지막 카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몸소 사랑을 보여주셨고,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사람의 아기는 개나 소, 말과 달리 자립할 때까지 매우 오랜 세월 부모의 돌봄을 필요로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긴 돌봄의 시간을 감당할 수 있도록 부모의 마음에 깊고도 큰 자식 사랑을 심어 주신 것 같다. 애초에 사랑이 없으면 인생을 시작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틈만 나면 가족과 이웃 사이에서, 나아가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질투하고 증오하며 전쟁을 벌인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사랑’이 여러 가르침 중에 제일 중요하다고까지 말씀하셨다. 믿는 사람들이 먼저 사랑의 본을 보이라고 하신 것이다. 모두가 서로 서로 사랑하는 사회, 생각만 해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맺음말
하나님을 믿으면 위로는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범사에 감사하게 되며, 아래로는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믿음 생활이 가져다주는 유익이 충분히 크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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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어 순차적으로 발간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