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 세월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기사입력 2020-02-12 09:21     최종수정 2020-02-12 09:2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어느덧 2019년이 지나고 2020년이 되었다. 세월이 정말 빠르다. 미래가 어느덧 오늘이 되고 오늘은 순식 간에 과거가 된다. 누군가 나이가 먹을수록 세월이 빨라진다고 했는데 정말 그런 느낌이다. 요즘엔 현재의 순간 순간들이 과거라는 진공 공간으로 맹렬하게 빨려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마치 먼지가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러가는 모습이다. 세월이 흐르는 소리도 차창을 열어놓고 달릴 때 운전자 귀에 들리는 바람 소리처럼 요란하게 들린다.

인생은 내려야 할 역이 어딘지도 모르는 기차 여행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기차표에 출발 역은 찍혀있지만 내릴 역 이름은 빈칸이다. 승객들은 처음에는 기대에 들떠 차창 가에 매달려 바깥 구경을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창가에 매달렸던 승객들도 하나 둘 의자에 내려 앉는다. 그러다 승무원이 불쑥 나타나 내리라고 하면 내려야 한다. 옆 자리에 앉았던 승객이 갑자기 내리라는 싸인을 받고 허둥지둥 내린다. 대개 황당하다는 표정이지만 드물지만 침착하게 내리는 사람도 있다.

승객에게 주어진 시간은 탑승 후 내릴 때까지로 유한(有限)하다. 그 유한한 탑승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현명한 일일까? 대개는 갑자기 내리라는 말을 들을까 봐 전전긍긍하지만, 어떤 사람은 마치 영원히 내리지 않을 사람처럼 유유자적(悠悠自適) 여행을 즐긴다. 

인생에서 시간이란 과연 무엇이며 우리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지난 주일 설교 말씀을 적용해 본다. 시간에는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가 있다고 한다. 크로노스는 시계로 측정되는 시간을 말한다. 이 시간은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다. ‘시간을 아끼라, 기회를 활용하라’는 말은 이 크로노스 시간을 아껴 쓰라는 말일 것이다. 반면에 카이로스는 일(사건) 중심의 시간을 말한다. ‘2시간이 지났다’고 말 하지 않고 ‘예배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시각(視角)이다. 오래 살기 보다는 할 일을 다 하고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영원은 시간이 무한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가 끝까지 지속되는 것이란다. 성경에서 “세월을 아껴라 (redeem the time!)” 라는 말은 사탄에게 뺏긴 ‘영원’을 되찾아 오자는 말이란다.  크로노스 관점에서 보면 세월이 빠르게 지나가니 우리가 더 빨리 뛰어야 한다. 바쁘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이다.

남아프리카에 가면 스프링복(springbok)이란 양 또는 염소 비슷하게 생긴 포유류 동물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스프링복이 가끔 집단으로 낭떨어지에 떨어져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연구 결과 유난히 식욕이 왕성한 이 동물이 집단으로 다니다가 초원을 발견하면 서로 먼저 풀을 뜯어 먹으려고 앞으로 달려가기 때문에 일어나는 사고임을 알게 되었다. 서로 경쟁하다 보면 무려 시속 88km에 이르는 과속으로까지 달리게 되는데, 그러다 갑자기 앞에 낭떨어지가 나타나면 뒤에 오는 무리에게 밀려 그대로 집단으로 떨어져 죽게 된다는 것이다. 

크로노스에서 시간이 금(金)이라면, 카이로스에서 시간은 사랑이란다. 인간이 모두 회개하고 돌아 오기 전까지 종말을 선언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기다림(시간)은 사랑이라는 말씀이다. 모두 회개할 때까지 오래 참으심이 바로 카이로스 시간이라는 것이다.

설교를 들어보니 성아우구스투스를 비롯한 선현들은 시간의 문제를 포함한 인생의 제반 고민 거리들을 이미 오래 전에 심각하게 고찰해 놓았음을 깨닫게 된다. 이는 역설적으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의문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결코 인간의 지혜로는 근본적인 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1991년에 가수로 데뷔했다 곧 묻혀져 미국의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했던 양준일이라는 분(51세)이 30년만에 갑자기 인기의 세계로 재 소환된 일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그가 인터뷰에서 했다는 말, “과거가 이제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아요”가 귓가에 맴돈다. 흘러간 크로노스 과거에 지배되지 않는 그의 깨달음이 매우 감동적이다.

독자 여러분, 근하신년(謹賀新年)!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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