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허난설헌(許蘭雪軒) <제2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6-08-17 09:36     최종수정 2016-12-01 17:08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옷을 갈아입기 전에 머리단장이 먼저다. 초희는 장미목으로 만든 경대를 앞으로 끌어당긴다. 접이식으로 된 경대 아래 칸엔 촘촘한 참빗과 성근 얼레빗이 있고 위 칸에는 둘째 오라버니 허봉(許篈·1551~1588)이 명(明)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사가지고 온 상아 얼레빗과 쇠뿔로 만든 참빗도 보였다. 또한 박달나무로 제작된 얼레빗 여러 개가 기름먹은 한지에 쌓여 있다.


함 받을 준비로 건천동 그미네 집은 들뜬 분위기다. 가장인 허엽은 동이 트려면 아직 멀었는데 벌써 일어나 담뱃대에 불을 연이어 붙이며 사랑방을 아래위로 오가며 서성댄다.

사위 김성립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문벌이야 안동김씨(安東金氏)면 조선에서 으뜸가는 가문이지만 정작 당사자인 김성립이 딸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초희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다. 초당의 주위엔 내로라하는 집의 헌헌장부들이 줄을 서 청혼을 해 오는데 얼떨결에 김첨(金瞻·1354~1418)네와 사돈관계가 맺어지게 되었다. 가문이야 조선 제일의 문벌이나 이제 서서히 햇빛이 피해가는 집안 측에 들었다.

반면에 허엽의 집은 일취월장 가세가 대나무 뻗어 나가듯 해마다 다르다. 특히 그미의 문재가 두드러지게 빛나고 있다. 8살에 지었다는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은 천재신동이라 칭찬을 해도 부족할 정도다. ‘엎드려 바라오니, 이 대들보를 올린 뒤에 계수나무 꽃은 시들지 말고, 요초는 사시사철 꽃다워지이다. 해가 퍼져 빛을 잃어도 난새 수레를 어거하여 더욱 즐거움 누리시고, 땅과 바다의 빛이 바뀌어도 회오리바람의 수레를 타고 더욱 길이 살며, 은창이 노을에 눌릴 만큼 아래로 구만리 미미한 세계를 내려다보시고, 구슬문이 바다에 다다르면 삼천년 동안 맑고 맑은 뽕나무 밭을 웃으며 바라보게 하시며 삼소(三宵) 해와 별을 돌리시고, 몸으로 구천세계의 바람과 이슬 속에 노니소서.’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의 일부분이다.

이 상량문은 신선세계에 있는 ‘광한전백옥루상량식’에 초희가 초대되어 지은 명문이다. 상량식에 상량문을 써야하는데 마땅한 인물이 없어 초희가 초대되어 단숨에 써내려가 신동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드러내 신선세계도 깜짝놀라게 하였다.

허무맹랑한 애기 같으나 초희는 중국 송(宋)나라 이방(李昉)등이 지은 설화집 ≪태평광기≫(太平廣記)를 이미 읽고 신선세계에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그미는 이처럼 조숙했다. 그미는 조숙했을 뿐만이 아니라 새와 동물, 초목과 자연, 사물 등을 주제로 하는 영물시(詠物詩)까지 썼다. ‘뜻이 맞아 두 다리를 합하고/ 다정스레 두 다리를 쳐들었소/ 흔드는 것은 내가 할테니/ 깊고 얕은 건 당신 맘대로...’≪가위≫란 시다. 옷감을 마름질하는 가위의 모습과 노골적인 성교의 세부장면을 겹쳐 놓았다. 흡사 ≪금병매≫의 한 부분을 옮겨 놓은듯하다. 천재 여류시인의 문학세계는 이승과 신선의 나라에서 광대 무한한 영혼의 날개를 폈다.

이렇듯 그미는 속세를 떠난 또 하나의 세상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봉황이 창공을 날아다니듯 훨훨 누구의 허락도 제지도 당하지 않고 선녀(仙女)들이 살고 있는 신선세계도 마음껏 드나들었다. 그 신선세계를 그미는 마음먹고 눈만 감으면 봉황이 날개를 펴 날면 한 번에 구만리를 날아가듯 훌쩍 이승의 경계를 넘어 꿈과 낭만이 넘치는 신선세계로 가 옥황상제와 담소를 즐기곤 하였다.

천재 여류시인의 특권이자 현실에서 얻지 못하는 젊은 부부의 달콤한 삶의 싱그러움을 신선세계에서 찾았던 것 같다. 사실 임진왜란 이후 성리학의 나라인 조선이 남녀칠세부동석의 절대 규율에 틈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여자는 삼종지의(三從之義)와 칠거지악(七去之惡)의 그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미는 아버지 허엽과 두 오빠 허성, 허봉, 그리고 동생 허균으로부터 여자가 아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대접받으며 성장하였다. 하지만 김성립과 부부가 된 이후 그미의 생활은 360도 다른 환경에서 살아야했다.

감옥이나 다름없는 별당에서 그미(그녀의 애칭)의 생활이다. 자유로운 영혼이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 신선세계로 여행은 일상처럼 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봉황이 단산 굴에서 나오니/ 아홉겹 깃 무늬가 찬란해라/ 덕을 보여주며 천길 높이 날고/ 높은 소리로 산 동쪽에서 울어대네/ 벼나 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나무 열매만 먹는다네/ 어쩌다 저 오동나무 위에/ 올빼미와 솔개만 깃들어 있단 말인가...’ ≪봉황은 대나무 열매만 먹는다≫다. (시 옮김 허경진) 봉황은 상상세계의 상상의 새다. 아마 그미는 자신을 봉황에로 메타포(metaphor·은유)한듯하다. 현실세상에서 얻지 못한 욕구불만의 어떤 것을 그미는 신선세계에서 찾았을 것이다.

신부는 신랑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신랑 또한 신부를 뜨거운 가슴으로 맞이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성립과 허난설헌은 부부가 되었다. 그미는 족두리도 내려놓지 못한 채 첫날밤을 샜다. 하지만 신랑은 평소 부리던 몸종 달이와 그미가영물시로 표현한 ≪가위≫가 되었다. “도련님 오늘밤이 쇤네는 마직막입니다. 내일 모레 새아씨 오시면 무슨 수로 새서방님이 제 차례가 되겠어요? 새아씨는 문장가에 요조숙녀 같은 미인이라던데...!” 성립은 달이의 풍성하고 오감을 녹이는 육체의 향연에 몇 초도 안 걸려 넋을 잃었다. 결혼하기 며칠 전의 환희다.

그미는 결혼을 했는데 늘 독수공방이다. 오히려 그미는 독수공방을 즐겼는지도 모른다. 그럴 때면 그미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신선세계로 여행을 떠나 선녀들과 춤추고 노래하면서 성리학의 나라 조선 사대부 사회에서 아침 안개처럼 주위를 감싸고 있는 속박을 카타르시스 시켰을 게다.

만약 남편 김성립이 보통 남편과 같이 금실 좋은 부부생활을 했었다면 오늘날 전해지는 허난설헌의 문학세계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문화예술은 사랑도 운명도 역경을 딛고 꽃피워지는 창작의 산물이여서다. 허난설헌의 특별한 문화예술의 공간도 성장환경과 결혼 후의 상반된 생활이 꽃피운 시의 세계인 듯하다. 그미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봉황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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