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재규 교수의 'From San Franci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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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표절과 대학의 윤리적 기준

이종운

기사입력 2020-02-04 10:28     최종수정 2020-02-04 10:3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작년 5월, 한창 내가 맡은 코스를 진행하고 있을때, 캐나다에 있는 한 약대의 학장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교수님, 지난 3월에 저희 학교 교수인 Dr. E가 교수님의 슬라이드 사용건으로 연락드린 일이 있었지요.  그 때, 슬라이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승낙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 사용건에 대해 제가 전화 통화를 좀 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내일 하고 싶으니 언제 시간이 되는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몇 년전 내가 미국내 학회에서 구두 발표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발표 슬라이드를 학회에 제출했었는데 이 슬라이드가 여전히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를 발견한 Dr. E가 자신의 코스에 이 슬라이드를 쓰고 싶다고 요청해 와서 지난 3월 승낙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학장이 통화하고 싶다고 할까? 

아무 조건 없이 단번에 승낙했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는 학장과 통화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아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더군다나 코스 때문에 바빠서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은 일에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기도 했다.  

이 일에 대해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한 달 뒤에 학장으로부터 다시 이메일이 왔다.

“교수님, 내일이나 다음 주에 저와 통화할 수 있으신지요?”

벌써 두 번째 이메일인데다 상대가 학장이고 지난 번에 답장을 보내지 않은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첫번째 이메일에 대해 답장을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를 드리고 통화가 가능한 날짜와 시간을 보내 주었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전화벨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네, 안녕하세요 학장님.”
“제가 왜 통화를 하자고 했는지 궁금하시죠?”
“네.”
“먼저 Dr.  E가 교수님의 슬라이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승낙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Dr.  E가 교수님의 슬라이드를 승낙받기 전부터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알려드리고 사과하려고 연락드렸습니다.  학생들에게 교수님께 승낙받기 전에 사용한 슬라이드들을 모두 지우라고 지시했고, Dr.  E에 대해서도 학교차원의 징계를 내렸습니다.” 

신선한 놀라움이었다.  비록 내가 승낙하기 전에 슬라이드를 사용했다 하더라도, 결국 승낙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어차피 승낙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학교일로 바쁜 학장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을 시켜 연락하고 사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승낙을 받았건 안 받았건 승낙을 받기 전에 사용한 것은 윤리적 기준을 어긴 것이고, 이에 대해 학교를 대표하는 학장이 직접 나서 설명하고 사과하는 것으로 보아 이 학교는 표절에 대한 높은 윤리적 기준을 교수와 학생들에게 적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대학교는 표절 (plagiarism)에 대한 높은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대학이 생산해 내는 것이 주로 지적 재산이기 때문에 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 말, 저작을 사용 허가 받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고 마치 자신의 것인양 사용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도둑질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논문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보듯 교육자료, 과제물 등 모든 것에 적용된다.  

이처럼 중요하기 때문에 미국 대학에서는1학년 신입생때부터 표절을 포함한 academic integerity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예를 들어, 최근 대학을 들어간 내 아들에 따르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academic integrity에 대한 강의를 듣고,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써서 낸 다음 동료학생들과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인문학 (Humanities) 코스 수업 때 따로 두 번 - 코스 시작전과 마지막 학기말 과제 제출전 – 표절에 대한 교육을 더 받았다고 한다.  우리 학교도 약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academic integrity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 대학에서 표절에 대한 징계는 매우 무겁다.  몇 년전 우리학교 약대 학생이 다른 학생의 것을 일부 베껴서 과제물로 제출한 것이 발견되었다.  이에 대한 징계로 그 학생은 F학점을 받았고, 이 때문에 그 과목을 1년 뒤에 다시 들어야만 했으며 졸업도 1년 더 늦어졌다.  

Academic integrity는 대학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자신의 생각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을 사용할 때에는 먼저 승낙을 받거나 다른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각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생각도 존중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이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높은 윤리적 기준이 필요하고 구성원들은 이를 따라야 한다.  위의 캐나다 약대의 예처럼.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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