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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원의 커튼 콜

고양이 이야기_뮤지컬 캣츠

편집부

기사입력 2021-03-05 10:52     최종수정 2021-03-05 10:59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우리나라 언론지상에서는 세계 4대 뮤지컬이라는 말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오페라의 유령’, ‘레 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그리고 이번 칼럼에서 소개하려고 준비한 ‘캣츠’를 말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잘못된 표현이다. 180여년의 역사에 등장한 뮤지컬 작품 중 이들에게만 위대한 타이틀이 주어질 리 없기 때문이다. 사실 ‘세계 4대 뮤지컬’이라는 문구는 영어를 오역한 것이다. 1980~90년대 영미권에서는 전대미문의 흥행을 기록한 메가 히트 뮤지컬 네 편이 세간에 화제가 됐는데, 그래서 이들을 가리켜 ‘Big 4’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흥행을 기록한 작품들이란 의미인데, 굳이 해석하자면 흥행대작들이라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린다. 아날로그 예술인 공연 콘텐츠가 첨단의 영상물보다 큰 부가가치를 낳을 수도 있다는 살아있는 증거들이다. 

한 작품 한 작품 모두 대단한 족적을 남긴 뮤지컬계의 명작들이지만, ‘캣츠’는 특히 남다르다. 1981년 런던에서 초연됐고, 이듬해부터 뉴욕에서 막을 올린 이 작품은 ‘이제와 항상 영원히(Now and forever)’라는 홍보문구로 유명하다. 정말 언제까지나 인기를 놓치지 않을 것 같은 작품이라는 자신감을 담고 있다. 그러나, 유명세에 비해 이 작품의 진정한 묘미를 아는 사람들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알고 보면 더 흥미로운 ‘캣츠’의 뒷이야기는 그래서 매우 중요한 뮤지컬 감상의 중요한 전제다. 

잘 알려지지 않은 대표적인 이야기중 하나는 바로 주인공 격인 그리자벨라에 얽힌 해석이다. 원작자로부터 저작권을 확보하지 않은 해적판이 여럿 등장했던 시절, 우리나라 공연계에서는 그리자벨라를 두고 창녀 고양이라는 해석을 덧붙였다. ‘그리자벨라 글래머 캣’이라는 부제도 그렇거니와(고양이인데 별명이 글래머라니 다소 선정적이기까지 하다), 낡은 코트 차림에 풍기는 이미지나 분위기도 제법 그럴싸해 보였던 탓이다. 국내 제작진의 구성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이 시절 한국판 해적(?)버전을 주도하는 공연 관계자들이 배부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 참여했던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죽어서 다시 살아난다는 환생의 의미와 창부 막달라 마리아의 이미지를 차용하다보니 그런 해석이 더해졌다는 설명이다. 물론 당시 출연진과 제작진이 비슷한 종교적 배경과 신념을 지니고 있던 것도 한 몫을 했다. 덕분에 지금도 일부 언론에서는 여전히 ‘창녀’ 고양이의 표현이 등장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해석은 작품의 의미를 전혀 다르게 만든다. 원작에서 그리자벨라가 창녀라는 설정은 작품 어디서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거스가 극장에 사는 늙은 배우 고양이라든지, 스킴블생크스가 기찻간 고양이이고 미스터 미스토플리스가 마법사 고양이라는 표현은 있지만, 그리자벨라의 직업이나 과거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단어는 찾을 수 없다. 그저 새벽녘까지 런던의 도심 한복판인 토튼햄 코트 로드를 어슬렁거렸다거나, 우편배달부가 한숨을 쉬며 저 늙고 초라한 고양이가 왕년의 그 예쁜 고양이였다니하며 탄식만 했다는 표현만 나올 뿐이다. 

창녀 고양이라는 해석은 그리자벨라의 노래 ‘메모리(Memory)’에서 혼란을 크게 가중시킨다. ‘추억’을 노래하며 그녀는 삶의 열정과 기쁨이 가득했던 젊은 시절을 그리워한다. 인생의 반성이나 회한보다 젊음에 대한 추억과 지나간 시절에 대한 미련을 담고 있다. 많은 고양이들은 그녀의 노래를 듣고 고양이만의 특권인 환생의 기회를 양보한다. 그런데 그녀가 창녀 고양이라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액면 그대로만 해석하자면, 남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던 늙은 창녀 고양이가 화류계로의 귀환을 꿈꾸자 다른 고양이들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양보하는 셈이다. 뭔가 석연찮은 의미가 되고 만다.  

그리자벨라는 창녀 고양이가 아니다. 그보다 한때 무척이나 아름다웠지만 이젠 나이 들어 볼품없어진 고양이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군데군데 털이 숭숭 빠진, 그래서 마치 피부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보이는 늙고 추레한 모습이다. 그런 그녀가 부르는 노랫말은 “나를 쓰다듬어 주면 진정한 행복을 이해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인생의 쓴맛 단맛을 모두 경험하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앉은 중년의 고단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창녀 고양이의 환생이라는 난해한 스토리에 어리둥절했던 우리 관객들과 달리, 손바닥 벌겋게 박수치고 상기된 미소로 극장을 나서는 영미권 관객들의 이질적인 체험은 바로 여기에 그 이유가 있다. 

‘캣츠’를 보고 스토리가 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을 제대로 분석한 관객이다. 이 뮤지컬에는 사실 뚜렷한 스토리라인이 없다. 원작이 바로 시집인 탓이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T. S. 엘리엇은 캐톨릭 신자였다. 성당에서는 견진성사를 통해 종교적인 후견인(대부(Godfather) 혹은 대모(Godmother))이 되는 의식을 치르는데, T. S. 엘리엇에겐 고양이를 유난히 좋아하는 대자(Godchild)가 있었다. 도움이 되는 인생의 교훈을 들려주고 싶었던 그는 대자를 만날 때마다 고양이를 소재로 한 시를 한 편씩 건네줬고, 훗날 이 시들을 모아 시집을 발간한다. 무대용 뮤지컬은 바로 그 시집에 곡을 붙여 무대로 꾸민 작품이다. 따라서 이 작품엔 당연히 줄거리가 없다. 시집은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 이 작품은 한 마리 한 마리 고양이에 담겨있는 시적 상상력, 그리고 잘 알려진 싯구가 노래가 되고 춤이 되는 재미난 변화를 즐기는게 매력인 무대다. 당연히 뮤지컬을 보러 가기 전에 시집을 먼저 읽어보고 가는 것은 제대로 된 감상을 위한 매우 중요한 전제다. 

우리나라에서 ‘캣츠’는 보험 같은 뮤지컬이라는 별칭도 있다. 단 한 번도 흥행에서 실패하지 않은 이색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서울에서는 코로나 19 팬데믹을 딛고 내한공연이 막을 올리고 있다. 아직 ‘캣츠’를 보지 못한 독자라면 이 기회에 행렬에 동참해보길 추천한다. 세종문화회관을 나서며 고양이 한 마리쯤 키워보고 싶어진다면 이 작품을 제대로 만끽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객석을 돌아다니는 고양이들은 요즘 분위기에 맞게 마스크도 쓰고 있어 이색적이다. 멋진 관극이 되길 바란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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