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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오늘을 견디게 하는 희망, 뮤지컬 ‘HOPE(호프) :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

편집부

기사입력 2021-01-08 13:16     최종수정 2021-01-08 13:2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이 원고가 나야, 나라고!”

인간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을 경험한다. 일상에서 마주한 크고 작은 선택들은 하나둘 모여 지금의 삶을 이룬다. 순간의 선택은 곧 책임이란 무게로 바뀐다. 
 만약 당신의 인생을 한 권의 책이라 본다면, 맨 마지막 문장은 과연 어떤 글귀로 남게 될지 한 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여기,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한 ‘원고’에 내맡긴 인물이 있다. 심지어 자기 자신이 곧 원고라 주장하는 78세 노인 에바 호프. 한국 창작 뮤지컬 ‘HOPE :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이하 ‘호프’)’은 그 심오한 질문에 대한 해답의 열쇠를 제시해 준다. 

작품은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 ‘변신’,‘심판’ 등으로 잘 알려진 유대계 독일 작가 프란츠 카프카(Kafka, Franz 1883-1924) 미발표 원고 반환소송을 모티브로 창작됐다. 뮤지컬에선 호프의 아버지이자 세상이 뒤늦게 주목한 작가 요제프 클라인이 프란츠 카프카의 역할을 대신한다. 실제로도 카프카는 뛰어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병마와 외로이 싸우다 세상을 떠난 후에야 비로소 조명을 받았다. 당시 시대적 분위기와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고립된 삶을 살았던 카프카 이야기가 다시금 세간에 오르내린 건 바로 그의 친구 막스 브로트로부터 전해진 미발표 친필 유고 소송 때문이었다. 상대는 이스라엘 국립도서관, 원고를 보관하고 있던 사람은 호프였다. 그리고 길고 긴 법정 공방이 이어졌다.


뮤지컬 ‘호프’는 이스라엘 텔아비브 법정에서 펼쳐진 마지막 재판을 시작으로 주인공 호프가 간직한 기억의 흐름에 따라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형식을 취한다. 30년에 걸쳐 이어온 원고 소유권 다툼은 그의 생애 절반에 가까운 것이었다. 노인이 된 호프는 한눈에 보기에도 괴팍하고 거칠다. 마치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춰질 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듯 무심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그런 호프의 곁에서 계속 말을 거는 남자가 눈에 띈다. 눈부시게 하얀 원고지를 여러 겹 겹쳐 입은 ‘K’. 작품은 독특하게도 요제프 클라인의 미발표 원고를 ‘K’라는 젊은 청년으로 의인화했다. 또, 앙상블을 책갈피로 표현해 기억의 단편을 구분 짓는 역할을 부여했다.

희망을 뜻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불행히도 지나온 호프의 삶은 빛과는 거리가 멀었다. 힘겨웠던 삶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했던 선택은 오히려 독이 됐고, 절박함은 호프를 어둠 속으로 집어삼켰다. 요절한 천재 작가 요제프를 동경했던 친구 베르트로부터 부탁을 받아 전쟁통에서도 필사적으로 원고를 지켜온 엄마 마리에겐 사랑이 곧 희망이었다. 그러나 다시 만난 사랑은 끝내 등을 돌리고 만다. 약속이 깨진 후에도 오로지 원고를 지켜내는 일에만 몰두하는 엄마를 보며 절대로 그렇게 살지 않겠다 다짐하며 도망쳤지만, 결국 다시 돌아와 똑같은 삶을 살게 된 호프다. 마치 한 번도 읽히지 않은 원고처럼 그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상을 등진 채 후회로 가득 찬 과거를 돌이키며 자신을 벌하듯 사는 매일, 이제 남은 것은 이 원고뿐이라 생각하며 지킨다. 더는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재판에서 과연 호프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인터미션 없이 110분간 이어진 공연은 놀라운 흡인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오루피나 연출·강남 작가·김효은 작곡가가 함께한 뮤지컬 ‘호프’는 2018년 창작산실 뮤지컬 부문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돼 2019년 초연됐고, 제8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 ‘올해의 뮤지컬상’을 포함해 3관왕을 차지한 작품이다. 또 2020년 1월 제4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선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거머쥔 바 있으며 동시에 총 8관왕 수상이라는 성과를 올렸다. 초연 당시에도 반응이 무척 뜨거웠는데 이번 재연 역시 큰 사랑을 받으면서 ‘호프’의 저력을 다시금 증명하고 있다. 이처럼 많은 이들의 기대 속에 지난 11월 19일에 개막한 공연은 당초 계획보다 2주 연장된 2021년 2월 21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상연될 예정이다.



호프의 인생이 눈 앞에 펼쳐지고 추억이 서린 페이지가 한 장씩 넘어가는 사이, 우리는 생의 남은 페이지를 채워가는 것 또한 오직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이해하기 어려운 타인의 삶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는 순간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의지는 곧 가능성이 된다.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은 아직 적히지 않은 문장으로 남는다.
 
생의 모든 선택이 다 옳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그로부터 배우고 성장하며 새로운 길을 찾아갈 동력을 얻으면서 살아간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상의 연속으로 인해 모두가 힘겨운 시기, 뮤지컬 ‘호프’를 통해 얻은 위로와 희망은 지친 오늘을 견딜 힘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 또 공연장을 나서는 순간 자연스레 느끼게 될 것이다. 행복은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가까이에 있고, 당신의 삶은 지금도 충분히 빛나고 있다는 것을.


<필자소개>
 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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