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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음악을 '인버전'하다

편집부

기사입력 2020-09-25 13:08     최종수정 2020-09-25 13:19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바흐의 역행카논에 대하여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하면 복잡한 플롯으로 잘 알려져있다. 한 번보면 이해가 안가서 N차관람을 유도한다는 놀란 감독이 야심차게 내놓은 영화 TENET(테넷). 놀란 감독의 팬이기도 하지만 난해함의 끝판왕이라는 얘기에 승부욕(?)이 발동하여 개봉하자마자 보고 왔다.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라'. 극중 배우 로버트 패틴슨이 던지는 대사인데 결국 놀란감독이 영화가 어려운 관객을 의식한 듯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했다.

미래인들의 도움을 받아 세상을 파괴하려는 사토르라는 악당에 맞서 주인공과 그의 조력자 닐이라는 인물이 시공간을 넘나들며 제3차 세계대전을 막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의 첩보물인데 내러티브가 기발하면서도 역시 영화의 서사는 복잡하고 어려웠다.

영화 테넷 포스터 ▲ 영화 테넷 포스터

이 영화에서 앤트로피, 핵분열 등 다소 낯선 개념들이 등장하지만 영화의 핵심은 역시 '인버전(Inversion)'이라는 시간개념일 것이다.

인버전은 타임머신처럼 과거나 미래의 시간대로 순간이동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역행하며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극중에 주인공이 캣이라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일주일 전 과거 오슬로로 인버전하는 장면이 있는데 일주일 동안 시간을 들여 시간을 역행하며 오슬로로 향한다. 〈백 투더 퓨쳐〉처럼 바로 순간이동 하는 것보다 훨씬 수고스럽다는 사실.

이 영화를 보고 연대기적으로 역행하며 흐른다는 점에서 직관적으로 떠오른 작품은 바흐가 작곡한 〈음악의 헌정〉이다. 독일어 원제는 'Musikalische Opfer( BWV1079)'이며 13개의 악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흥미롭게도 음악을 사랑했던 독일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이 직접 작곡한 테마를 바탕으로 1747년 말년의 바흐가 리체르카레, 카논, 푸가등 다양한 작곡기법을 녹여낸 작품으로 왕에게 헌정했다.

여기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카논(Canon)'이라는 작곡기법을 주목해보고자 한다. 카논은 '규칙'을 뜻하는 그리스어가 어원이며 쉽게 설명하면 주선율이 선행되면 다른 성부가 시간 간격을 두고 그 주제를 엄격하게 모방하며 따라가는 작곡기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동네 한 바퀴'라는 돌림노래가 잘 알려진 카논이다) 그 어원이 말해주듯 물론 엄격한 모방을 규칙으로 하되, 예를 들어 모방하는 성부가 다른 음정에서 시작한다거나 같은 선율에 음가를 두배로 늘린다거나 하는 식의 다양한 자유도 부여되어 있다.               
 
〈음악적 헌정〉에 등장하는 10개의 카논 중에 그 유명한 카논 1번의 2성 역행카논(Canon 1, a 2 cancrizans)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역행카논이란 주선율 끝에서 시작하여 거꾸로 역행하며 시작점을 향하여 모방하는 것. 쉬운 예를 들어 '도레파미솔'이 주션율이라고 가정한다면 다른 성부가 뒤에서부터 거꾸로 '솔미파레도'로 역행하며 연주하는 것이다.

음악적 헌정에 수록된 역행카논 ▲ 음악적 헌정에 수록된 역행카논

음악적 헌정의 역행카논이 특별한 이유는 순행하는 선율과 역행하는 선율이 시간의 격차가 없이 동시에 얽히며 연주된다는 점이다. 마치 시간을 순행하는 사람들과  역행하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만나 사투를 벌이는 영화 '테넷'속의 장면들처럼. 이 카논은 달랑 한 성부의 멜로디가 주어지는데 한 연주자는 앞에서 연주를 시작하고 다른 연주자는 말미에서 연주를 시작한다. 음악 테이프를 거꾸로 되감으면 어색하게 들리듯 역행하는 성부가 선율적으로 구색을 갖추기가 쉽지 않을 터. 절묘하게도 하나의 선율이지만 순행하는 선율과 역행하는 선율이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서로 반응하며 화성진행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15세기 전후 성행했던 카논이 역사의 흐름속에 다양한 지적유희적 양상을 띄며 역행카논뿐 아니라 돌림노래 형식의 무한카논, 선율을 상하로 역전시켜 모방하는 거울카논 등 수많은 형태로 양산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이중에서도 바흐의 역행카논은 같은 음에서 출발하여 동시적으로 순행방향과 역행방향의 선율이 완벽하게 맞물린다는 점에서 뛰어나다. 마치 시작과 끝이 맞물려있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역행카논의 대가 기욤 드 마쇼의 <나의 끝은 나의 시작이다 Ma fin est mon commencement >라는 곡을 떠올리며 영화 '테넷' 에서 로버트 패틴슨이 주인공과의 마지막 이별씬에서 던지는 묵직한 대사를 소환해본다. "내 우정은 여기서 끝이지만 자네의 우정은 여기서 시작이야 ". 영화는 아직 어려운데 왠지 이 대사만은 와닿는다.

〈음악적 헌정〉은 바흐가 생애 마지막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그 만큼 바흐가 집대성한 대위법의 정수가 담겨있다. 우선 바흐의 역행카논(Canon 1, a 2 cancrizans)을 들어보며 주선율의 순행과 역행의 맞물림이 가져다주는 쾌감을 경험해보라. 악보를 보며 역행방향으로 음을 따라가 보는 것도 흥미롭다. 그 외에 〈음악적 헌정〉에 수록된 Trio Sonata를 추천한다. 4악장으로 이루어진 실내악 작품으로 편성은 플루트, 바이올린, 통주저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플루트를 잘 다루었던 프리드리히 대왕을 배려한 흔적이 엿보이며 유려한 선율과 함께 플루트와 바이올린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테마를 변주한다. 

*유튜브 링크 추천
https://www.youtube.com/watch?v=xUHQ2ybTejU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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