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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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홍랑(洪娘) <제11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9-06-12 09:36     최종수정 2019-06-12 11:40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고죽이 등청을 하지 않고 있다. 어젯밤에 뼈가 녹도록 쌓였던 회포를 풀어 그러려니 하고 홍랑은 부엌에서 아침 준비에 부산하다. 홍랑의 입에선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경성에 와서 처음 신방 같은 잠자리였다. 홍원에서 화촉동방을 치른 후 처음이다. 홍랑의 콧노래가 문지방을 넘어 고죽의 귀에까지 들렸다.

 

그때였다 ‘억억억...’ 하고 헛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죽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그게 무슨 소리냐? 어디가 아프냐?” 고죽의 화들짝 놀라는 표정에 홍랑은 잔잔한 무지갯빛 미소를 머금으며 “아니에요. 선생님! 별일 아니에요... 여자의 본분이 생겼을 뿐이에요.”라며 아침 준비의 손길을 더욱 빠르게 움직일 뿐이다.

참으로 예쁜 모습이다. 밤마다 한시도 떼어놓지 않고 운우지정을 즐겨도 싫증이 나지 않을 계집이 눈앞에서 팔딱이니 고죽의 물건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내는 두 팔을 벌려 홍랑의 등 뒤에서 감싸 안는다. 봉긋한 두 유방이 손안에 들어오자 물건은 뒤에서 실팍한 엉덩이를 압박한다. “선생님 여기서 그러시면 어떻게 해요?” 홍랑의 음성은 싫지 않은 목소리다. “어서 방으로 들어가세요! 곧 상을 들고 갈께요...” 고죽의 뜨거운 품에서 빠져 나간 홍랑은 냉이국을 퍼서 상에 놓아 방안으로 들어갔다.

둘은 밥상을 사이로 마주 앉았다. 홍랑의 얼굴이 전에 없이 상기 되었다. 고죽은 어젯밤 과음에 속이 타는지 냉이국을 단숨에 들이켰다. 한 그릇 더 달라는 표정이다. 눈치 빠른 홍랑은 알았다는 표정으로 부엌으로 나가 냉이국을 사발에 하나 가득 담아다 고죽 앞에 놓았다.

생애 최고의 행복해 보이는 고죽의 표정이다. 이때다. 홍랑이 고죽에게 큰절을 하며 부엌에서 보였던 잔잔한 무지갯빛 미소를 보이며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제 홍랑은 진정한 선생님의 여자가 되었습니다. 너무너무 고맙습니다.”라고 소리 없는 기쁨의 눈물을 보였다.

고죽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어젯밤의 첫날밤 같은 운우지정에 감격해 하는가 하는 눈치다. ‘남북으로 날리다가 금새 동서로 / 온종일 흩날리다가 진흙탕에 떨어지네 / 나 또한 넘어지고 미친 듯한게 너와 같거니 / 진나라 갔다가 초나라 갔다가 또 제나라로 가네’ 고죽의 《버들개지》다. (시옮김 허경진)

이제 홍랑은 진정한 한 사내 고죽의 여자가 되려한다. 두 볼을 타고 내려온 눈물을 두 손으로 닦고 역시 행복이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고죽선생님, 이 홍랑이 이제 진정한 고죽선생님의 여자가 되었습니다.” 말을 마친 홍랑이 속곡까지 벗으며 봉긋하게 솟은 배를 보여주었다.

고죽은 예상이라도 한 듯 말없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부엌에서 헛구역질을 할 때 고죽은 눈치를 채고 있었다. “언제부터냐?” “예, 선생님! 홍원에서 화촉동방을 치른 후였습니다. 그때가 소첩 배란기였었거든요..” “그때 그것을 내게 알리고 잠자리를 거절할 수도 있었지 않았느냐?” “소첩은 그것이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어요! 행여 임신이 안 될까 얼마나 걱정을 했었는데요. 선생님의 자식이 제게 들어있지 않았으면 이곳까지 찾아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홍랑의 두 눈에서 또 뜨거운 눈물이 두 볼을 타고 내려왔다.

고죽은 밥상을 옆으로 밀쳐내고 홍랑을 힘껏 품었다. “이제 아무 걱정 말거라! 내가 진정 네 사내인거라....” 둘은 말없이 한동안 한덩어리가 되어 떨어지지 않았다. 고죽은 홍랑을 품고 있으면서 지금이 한양으로 올라가야 하는 이유를 말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고죽이 두 팔에 힘을 더 넣었다. 그때다. 홍랑이 고죽을 빤히 쳐다보며 “아이가 숨이 차데요.”라고 홍당무가 된 얼굴에 또 한 번 행복이 물결치는 표정을 보였다.

고죽은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저토록 행복해 하는 분위기에 병조판서 얘기를 했다가 실망하는 표정을 볼까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을 넘길 수는 없다. 한시라도 빨리 상경하라는 병조판서의 영(令)을 어길 수는 없다. 군령을 어기고 병조판서의 영까지 어겼다가는 조선팔도 어디에서도 발을 붙일 곳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날 한양으로 떠나지 못했다. 경성에서 마지막 밤이다. 역시 홍랑의 거문고 음률에 주안상이 차려졌다. 고죽의 풍류다. “그래 홍랑아! 너의 태몽은 어떠하였느냐?” 거나하게 취기가 오른 고죽의 여유 있는 물음이다. “나으리, 이제 와 태몽이 왜 궁금하세요?” “아니다. 네가 무슨 태몽을 꾸고 임신을 했나 궁금하구나... 그리고 언제 꾸었는지도 궁금하구나...” “나으리를 뵙기 며칠 전에 꾸었는데 소첩은 너무 황당해 웃으면서 잊어 버렸는데 나으리를 뵙게 되었어요...” “허허... 태몽 내용을 얘기하라니까!” 고죽의 퉁명스런 말투다.

그때서야 풍류분위기를 깨지나 않을까 조마조마 한 표정으로 홍랑은 무거운 입을 열었다. “사실 소첩은 꿈이 없는 편인데 그날따라 백발노인한테서 예쁜 새 한 마리를 선사받았사옵니다. 그 노인의 말에 의하면 새의 이름은 한고조(寒苦鳥·히말라야에 사는 상상의 새)라 했사옵니다.” “한고조라? 처음 들어보는 새인데 어떤 새라더냐?” “예 나으리, 불경에 나오는 상상의 새라 하옵니다.” 고죽은 꿈 얘기에 신경을 쓰기보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홍랑의 배를 쓰다듬으며 당나라 시인 잠삼(岑參)의 《춘몽》(春夢)을 낭송하였다. ‘어젯밤 동방에 봄바람이 일어나 / 멀리 소양강의 미인을 그렸더니 / 베갯머리 잠시간의 봄 꿈속에서 / 강남까지 수천리를 달려갔도다.’라고 끝나기가 무섭게 ‘주섬주섬 이꽃저꽃 심을 것 없다 / 백화현(百花軒)에 백가지 꽃 차야 맛인가 / 매화꽃 국화꽃 맑고 좋은데 / 울긋불긋 다른 꽃 부질없구나...“ 홍랑이 무거운 몸으로 고려 충혜왕때 예문관 대제학 벼슬을 한 오조년(李兆年) 《백화헌》을 수창하였다. 고죽은 다시 한 번 홍랑의 시에 대한 높고 깊은 조예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고들은 그렇게 서로서로 사랑을 넘어 종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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