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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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자동선(紫洞仙) <제22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9-03-06 09:36     최종수정 2019-03-06 11:37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얼떨결에 내실로 떠밀려 들어온 영천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내를 먼저 들여보내고 뒷물을 하고 여자는 들어오리라 생각해서다. 영천군은 피곤하다. 요 며칠사이에 송악산을 두 번이나 오르내렸으며 자동선을 품으려고 온갖 묘수를 다 써 봤으나 번번이 헛수고만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자동선의 내실에 들어왔다. 여자의 방에 남자 혼자 있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남자는 온갖 상념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영천군은 그러하지 않다. 자동선의 내실은 의외로 단조롭다. 네 벽이 모두 하얀 백합처럼 흰 종이로 되었으며 남향의 벽엔 성명미상의 그림 《원앙》이 걸려있을 뿐이다. 머리맡엔 자리끼까지 준비가 되었다.

영천군은 옷도 벗지 않은 채 벌러덩 누웠다. 화촉동방을 상상하고 있다. 그런데 영천군은 자리에 눕자 금방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졌다. 영천군이 잠에서 깨어났을 땐 동창이 밝아오고 있을 때다. 옷도 입은 채다.

화들짝 놀라 일어났을 땐 자동선이 옆에서 “너무 피곤하게 주무셔서 소녀 그냥 이렇게 옆에서 밤새 지켜드렸나이다! 목이 타실 거예요. 어서 자리끼를 드시지요.” 자동선은 영천군이 일찍 잠에 빠져 오히려 아쉬운 밤을 보냈다는 말투다. “허허 그랬느냐? 내 너무 피곤해서 네가 들어오는 것도 몰랐느니라.” 남자체면이다.

밖에서 두런두런 사가정과 제일청의 대화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영천군 나으리, 일어나셨는지요? 사가정이 옵니다.”라고 문안을 알렸다. 툇돌엔 영천군 신발과 자동선의 신발이 나란히 놓였다.

사가정과 제일청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젠 됐다는 표정이다. “밖에 누가 오셨어요?” 자동선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다. “자동선아! 영천군 나으리 잘 모시고 잤느냐?” “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소녀를 어떻게 보시고 그런 망측한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자동선이 뿌루퉁한 표정으로 방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우리 집은 대궐 뒤의 막바지 골목 / 내 남편은 광명문의 젊은 파수꾼 / 여자의 마음은 일월같이 밝아서 / 생사를 걸고 섬겨 오는 내 낭군이오 / 패물을 돌리자니 눈물이 거침없어 / 시집 전에 못 만난 것 한스럽구려.’ 중국 장적(張籍)시인의 《절부음》(節婦吟)이다.

자동선도 마음이 타긴 영천군과 다를 바 없다. 영천군이 조바심을 내면서 자기를 원하는 표정은 역력한데 딱 부러지는 언행이 없어 몸을 열수가 없는 것이다. 낭랑18세의 보배 같은 몸을 선 듯 내어놓기가 무섭고 두려울 터다. 사내들은 여자가 한번 몸을 주면 자기 전유물처럼 행동하고 염치라는 것은 생각지도 않는 속성이 있다. 그런 사내들을 자동선을 수도 없이 보아왔다.

명나라 사신 김식이 껄떡거리며 안절부절못하는 자리에서 위기일발로 벗어나 영천군에게 왔으나 내 여자가 되어달라는 아무런 징표를 내어놓고 있지 않아 자동선도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사내들은 다 같은 족속들이야’하는 마음이 차츰 굳어가는 즈음 사가정과 제일청이 다시 찾아왔다.

사가정과 제일청은 싱글벙글 이다. 엊저녁에 뜨거운 살을 마음껏 섞은 흡족한 표정이 역력하다. “사가정 나으리, 사가정 나으리는 항상 즐거운 표정이세요?” 자동선이 샘이 나고 부럽다는 말투다. “그러하느냐? 나야 어디를 가나 술과 여자가 있어 얼굴 짱그리고 속을 태울 여유가 없단다. 그런데 너는 어찌 표정이 밝지 않은 것을 보니 영천군 나으리와 화촉동방을 못 치룬 눈치로구나?” “사가정 나으리, 그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오니까? 소녀를 어찌 보시고 청교방 창기와 같이 보시는지요? 소녀 매우 섭섭하옵나이다.” “아니다. 네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내가 사과하느니라...” 그랬다. 자동선의 마음은 영천군과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초야를 치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영천군은 자동선의 마음을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것이다. 사가정은 자동선이 방문을 열어놓고 나간 열린 문으로 내실로 들어갔다. “영천군 나으리 아직도 호박관자를 자동선에게 주지 않았습니까?” “글쎄. 그게...” 영천군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다. 당황하는 표정이 뚜렷하다. “자동선을 청교월 창녀 정도로 생각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자동선은 조선팔도 한양을 넘어 중국 사신들까지 품지 못해 속을 태우는 명기라기보다 여자사대부라고 해야 적절한 표현이 될 것입니다. 어서 기회를 봐서 호박관자를 주시면서 평생을 책임진다는 약속을 하셔야 몸을 내어 놓을 것입니다. ” 그때서야 영천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두 사내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자동선과 제일청이 들어왔다. 자동선의 손엔 술병이 들였고 제일청의 손엔 거문고가 들였다. 사내들에게 술이 최고이며 자신들의 생각을 관철시키는 데에는 술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두 분이 무슨 얘기를 그토록 달콤하게 하시나이까?” 가시가 돋친 제일청의 말투다. 이틀사이에 《송악도》(松岳圖)를 두 폭을 그리는 사이 자동선의 마음을 충분히 알았을 터인데 아직도 호박관자를 주지 않았느냐는 질책이 섞인 어투다.

술과 거문고를 보자 두 사내 표정이 밝아졌다. 영천군의 표정이 더욱 환하게 피어났다. 자동선을 보자 영천군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쉽고 원망스런 표정 같기도 하다. 자신은 고단한데다 술에 취해 금방 잠에 들어 깼을 때는 옆에 자동선이 마치 등신불(等身佛·사람 키와 같이 만든 불상)처럼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밤새 지켜만 보았냐는 표정이다.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어지고 / 땅에선 한 나무 가지가 되어지고 / 설사 하늘과 땅이 다할 때가 있어도 / 알뜰한 우리사랑 끊길 줄이 있으랴...’ 제일청의 신기에 가까운 거문고 음률과 사가정의 시낭송에 영천군과 자동선의 뜨악했던 정서가 봄눈 녹듯 녹고 진달래 피듯 하나가 되었다. 영천군이 호박관자를 자동선의 가슴에 달자 자동선은 감격에 못 이겨 사내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이제 몸을 맡겨도 된다는 안도의 울음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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