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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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자동선(紫洞仙) <제15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9-01-16 09:36     최종수정 2019-01-16 11:52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두 사내와 한 여자는 송도유람에 나섰다. 사가정의 제의로 성사되었다. 자동선은 술과 안주를 챙겼다. 그리고 자동선은 나귀에 올랐다. 사가정은 영천군에게 나귀 탈 것을 권하고 싶었으나 아직 효령대군의 자제라는 것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건장한 사내에게 나귀를 타라고 여자인 자동선에게 양보를 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송도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송악산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자동선이 길라잡이다. 나귀 위의 자동선은 더 예쁘다. 사가정이 고삐를 잡고 영천군이 뒤따랐다. 제일청도 자동선이 불러 동행을 한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상쾌하다. 여름이지만 오전엔 송도의 날씨는 시원하다.

사가정은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제일청이 따라와서다. 제일청은 비록 이젠 노기(老妓)로 옥골선풍 헌헌장부의 발길은 뚝 끊겨 청교방거리 뒤켠에서조차 밀려났으나 인간미가 넘쳐 옛정을 못잊어 심심치 않게 사내들이 드나들었다. 사가정도 그 중의 한 사내다.

세월의 무게가 실린 아름다움이다. 썩어도 준치라고 어찌 보면 한창 때는 자동선을 뛰어넘는 미색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세월에 밀려 자동선 손님의 뒷바라지에 나섰다.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하더니 빈말이 아니었다. 청교방 거리에서 제일청하면 오가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저기 저 집이요!” 라고 했는데 지금은 철지난 꽃으로 쳐다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가정에겐 제일청이 철 맞아 한창 피어난 꽃처럼 보였다. 영천군은 나귀에 탄 자동선의 동태만 살피고 사가정은 제일청의 속삭임에 정신이 없다.

송악산으로 가는 길엔 왕윤사(王輪寺)가 있다. 울창한 삼림에 둘러싸인 왕윤사는 한때는 수 백명의 스님들이 거주 했었으나 지금은 대웅전과 초라한 건물 몇 채만이 옛 영화를 대변해 주고 있다.

대웅전에 닿자 자동선이 나귀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대뜸 ‘전각은 황량하고 중은 보이지 않네 / 황금 부처님만이 뉘연히 앉아 있네 / 선탑에 쌓인 먼지를 바람이 쓸어가고 / 어두운 창가에 달이 등불처럼 비친다.’ 용재 성현(慵齋 成俔)의 시다.

사가정이 깜짝 놀라 “네가 어떻게 내 친구 성현의 시를 알고 있었느냐?”라며 자동선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한양 나으리는 풍류엔 뛰어난데 기녀들을 너무 낮게 보시는 경향이 있으시네요? 앞으론 그렇게 보지 마세요. 그렇게 했다간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사옵니다. 기녀들을 길가에 핀 한 떨기 꽃으로 보시고 꺾었다 버리면 그만이란 생각은 이젠 버리셔야 하옵니다.” 자동선의 단호한 말투에 천하의 풍류객 사가정도 움찔하였다. 어설피 행동했다간 영천군 나리 앞에서 망신을 당할 것 같아 언행에 신중 신중을 속으로 다짐하였다.

자동선은 단순히 미색으로만 보았는데 높은 인격과 풍부한 학식을 갖추어 웬만한 사대부는 우습게 볼 학기(學妓:학식이 높은 기생)가 아니었던가? 영천군도 성현의 시를 읊는 자동선을 보고는 침착해 하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사내들은 충동적이다. 본능이다. 농경사회에서 사냥을 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생태적 본능이 시대가 바뀌어도 본능은 바뀌지 않는다. 시대와 환경에 발전, 진화하여 언행도 바뀔 뿐이다.

두 사내와 두 여자는 짝을 이뤄 어느새 귀산사(龜山寺)에 이르렀다. 왕윤사에 공민왕이 자주 들린 것과 같이 귀산사에 충렬왕이 들려 국태민안의 기도를 올렸다. 산이 깊어 갈수록 송악산 절경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울창한 나무 위에선 꾀꼬리들이 쌍쌍을 이뤄 노래 부르며 사랑을 나누고 있다.

벌써 영천군은 피곤해 보이는 기색이다. 사가정은 어떻게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야했다. 마침 널따란 바위가 나타났다. “제일청아! 우리는 봉우리로 올라가 정상을 보자꾸나! 두 분은 여기서 잠시 쉬었다 올라오시게 하고...” 말을 마치기도 전에 사가정은 제일청의 손을 잡고 달리듯 정상을 향해 발길을 재촉하였다.

영천군도 기다렸다는 듯이 행동에 나섰다. “자동선아, 사가정의 말대로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자! 내 어젯밤에 한숨도 못자 피곤해서 더는 못가겠다...” 영천군은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는 바위에 주저앉아 이인로(李仁老)의 《산거》라는 시를 읊었다. ‘봄은 가고 꽃은 아직 남아 있는데 / 하늘은 맑고 골짜기는 그윽하다. / 두견새 소리가 한낮에 들려오니 / 여기가 살기 좋은 곳임을 알았노라...“ 사랑을 하면 누구나 시인이 되는 듯 자동선 앞에서의 영천군도 도연명이 오얏마을에서 심정인 듯하다.

사가정은 산봉우리에서 영천군을 기다리다 못해 술병을 들고 다시 바위로 내려왔다. “두분께선 서로 보기만 하고 뭘 하고 계십니까?” 젊은이들이 만났으면 한바탕 불꽃을 튕겨야 하지 않나요?“ 자동선은 사가정의 말에 즉각 반응을 보였다. ”그게 무슨 해괴한 말씀이세요? 이 대명천지에...“ 그러나 사가정이 누구인가! 한 치도 물러설 리 없다. ”허허 하늘이 맺어준 배필 같으오...“ 사가정은 말과 동시에 술잔을 연천군에게 건넸다.

연천군은 마침 목이 탈 때다. “허허 자동선이 눈치도 빠르고 웃어른을 모실 줄 아는 현숙한 여인인 줄 알았는데 내가 잘못 알았나 보네. 이 어른이 어떤 어른인지 아느냐? 세종임금의 손자이시고 효령대군의 자제분이시다. 정성껏 잘 모셔야 하느니라!” 세종임금의 손자라는 말에 깜짝 놀란 듯 발딱 일어나 큰절을 올린다. “소녀 어르신을 몰라 뵈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주시옵소서...” “아니니라. 내가 밝히지 않은 죄가 더 크니라!” 옆에 있는 사가정의 표정이 밝아졌다. 영천군이 그 어느때 보다도 표정이 밝아서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피로한 표정이 역력했는데 그런 기미가 온데간데없어졌다. 영천군은 자동선이 따른 술잔을 받아 마시고 그녀의 손을 덥썩 잡고 산봉우리를 향해 뛰듯 걷는다. 산봉우리에 올라가선 무슨 일을 결심한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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