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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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자동선(紫洞仙) <제12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8-12-26 09:36     최종수정 2018-12-26 10:3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청교방 거리 이웃엔 노기(老妓)들이 많다. 색보다 술을 더 좋아하는 사가정엔 노기가 경영하는 청루가 더 좋다. 사가정은 노기 제일청(第一靑)이 있다는 청루를 물어물어 찾아갔다. “이리 오너라! 게 아무도 없느냐?” 천하의 풍류객답다.

조선 천지 어디를 가도 그는 기가 죽는 법이 없다. “누구세요?” 솜털이 아직 보송보송한 동기다. “사가정이 왔다 일러라!” 사가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가정 나리!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 오셨습니까?” 몇 년 만에 남편과 재회하는 부인같이 맨발의 반색이다.

청루 춘망(春望)의 제일청이다. 목단춘과 언니 동생하며 지내는 사이지만 젊었을 땐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경쟁자다. 제일청이 두 살 아래다. 미모는 제일청이 앞서지만 시재나 노래와 춤엔 목단춘에 뒤진다. 불려가는 연회석도 뚜렷이 구별이 되었다.

제일청은 젊은 층들이 술 마시고 한바탕 객고 푸는데 단골이고 목단춘은 품위 있고 방사엔 거리가 있는 연회장이 주 고객이었다. 사가정도 삼십대 한창 펄펄 날 때 제일청과 만리장성을 쌓았다. 그때 인상이 깊어 세월이 십 수 년이 흘렀는데도 여인은 기억이 살아있다.

기생은 이십대가 지나면 환갑이라 하여 노기 취급으로 청루일선에서 물러난다. 지금 제일청도 그런 신세다. 사가정은 당대 대학자이며 천하의 풍류객이다. 그가 노기인 제일청을 잊지 않고 물어물어 찾아왔으니 반길 수밖에 없다.

사내들은 철지난 꽃은 찾지 않는다. 봄이 되면 봄꽃을 여름엔 여름꽃이 피어나고 가을이 찾아오면 가을꽃들이 화려하게 벌나비들을 영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한양을 넘어 이곳 송도(현 개성)까지 명성이 자자한 사가정이 찾아왔으니 제일청은 죽었다 다시 살아온 남편인 냥 맨발로 뛰어나와 맞았다.

그들은 내실로 안내되어 술상을 받았다. “아니 저 족자는 십 수 년 전에 내가 써준 시가 아니더냐?” “예 그러하옵니다. 나리께서 취중에 소첩에게 《노기》(老妓)란 시 한 수를 써 주셨기에 그 시가 마음에 들어 족자를 만들어 가보로 소중하게 보관 중이옵니다.” “그랬느냐? 그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멋지게 써줄 것을 아쉽구나... 그건 그렇고 이 분한테 정중하게 인사를 올려라! 한양에서 지체 높고 돈도 참으로 많으신 어르신이니라... 그리고 나으리 제가 쓴 《노기》란 시를 한번 읽어 보시죠...” 영천군은 사가정이 하라는 대로 족자의 시를 보았다. ‘예쁘던 그 얼굴 꽃 진 나뭇가지로 변해 / 아름답던 옛 모습 그 누가 알아보랴 / 노래와 춤만이 예와 같이 연연하여 / 가련한 그 재주만 아직 늙지 않았네’ 사가정의 필체가 분명하였다.

술잔이 네댓 순배 돌 즈음 제일청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나리, 웬일로 이 외진 소첩의 집까지 찾아오셨는지요? 혹 주류천하 길에 노자가 떨어져 오셨는지요?” 눈치 빠른 노기는 한 눈에 사가정의 속내를 알아보았다. “하하하! 제일청은 독심술까지 익혔으니 사내들이 사족을 못 썼어! 너의 예리한 독심술은 늙지 않았구나...” 연천군은 두 연놈의 흥겨운 언행에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이다.

그랬다. 십 수 년 전에 친구들과 대동강 수양버들 뱃놀이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제일청에 잠시 들렸었다. 그때도 노자가 떨어져 제 돈을 맡겨 놓은 듯이 요구하였다. 그런데 제일청도 초면인데도 아무조건도 없이 두둑한 노자를 대주었다. 그래서 사가정은 그때 노자를 받아간 징표로 시 《노기》를 써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십 수 년 후에 혼자도 아닌 일행과 함께 혜성처럼 얼굴을 드러냈다.

그래도 제일청은 싫은 표정이 아니다. 기쁨에 흥겨워 부엌으로 드나들며 술과 안주 나르기에 바쁘다. 여름밤은 술 마시기에 딱 좋은 밤이다. “그런데 제일청아! 나는 네가 있어 좋은데 우리 어른을 모실 명기(名妓)가 있어야겠구나! 어디서 네가 불러오거라...” “송도에서 으뜸가는 명기가 있기는 하오나 이 밤에 올지요? 자동선(紫洞仙)이란 명기지요. 이제 겨우 17살인데 중국 사신이 보고는 자기나라 4대 미녀인 양귀비·서시·초선·왕소군보다도 절색이라고 칭찬이 중국에까지 소문이 자자한 아이예요.” 영천군이 제일청의 말을 듣고 있다 벌떡 일어나며 “내가 돈은 얼마든지 줄 터이니 그 아이를 지금 당장 데려다 주게”라고 말을 하고는 눈가에 특유의 미소를 띠었다.

제일청은 영천군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이 밤에 어떻게 자동선을 불러오겠사옵니까. 소첩이 오라면 마지못해 오긴 오겠으나 이 밤엔 아니 되옵니다. 내일 두 어른께서 자하동(紫霞洞)자택으로 자동선을 찾아가시면 틀림없이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일청은 두 사내 사이에서 얘기를 주고받으며 노기답게 여름밤을 흥미롭게 넘겨주었다. ‘사내의 마음이자 계집의 마음이라 / 이별의 눈물이 흘러 옷깃이 젖는다 / 주머니가 빈 털털 가진 것이 없어서 / 시 한수 써 갈겨 천금을 탕감하네!’ “내 돈이 없어 지난번 같이 시로 술값을 대신 하려네. 지필묵을 가져다주게나.” 사가정의 일필휘지는 거칠 것이 없었다. 제일청은 사가정이 돈이 없다는 소리에 섭섭한 표정이 아닌 기다렸다는 듯이 지필묵을 탁자 밑에서 꺼내 내어밀었다.

준비 된 행동이다. “이제 두 번째 가보가 생겼사옵니다. 선비님... 이 은혜를 평생 잊지 아니할 것입니다.” 영천군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술값도 안주고 잠까지 잤는데 그까짓 시 한수 써 준 것이 저토록 고마울 수가... 얼마나 뜨겁고 속 깊은 정을 나누었으면 저렇게 고맙고 헤어지기 싫어할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제일청은 괴나리봇짐을 사가정이 챙기자 벽장에서 돈 꾸러미를 꺼내 통째로 내주며 “이제 얼마 안 되나 용채에 보태어 쓰세요.”라고 말을 마치고 정중히 사립문 밖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뜨겁고 정중한 이별 배웅을 받은 사가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하 동쪽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한편 영천군은 사가정과 제일청의 오래간만에 재회하는 부부 같은 모습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가정이 원망스럽다. 누구보다 자기 성정을 잘 아는 그가 여보란 듯이 제일청과의 수작이 눈꼴이 사나웠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도 풍류엔 둘째가라면 서러워하겠으나 사가정엔 앞자리를 내어준다.

지금도 그러하다. 사가정이 자신 앞에서 미안해하는 표정도 없이 제일청의 엉덩이를 만지며 술을 마시는 꼴이 그가 아니었으면 술잔이 날아가도 열 번은 날아갈 분위기다. 그러나 영천군은 자동선을 만날 생각에 여타 상황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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