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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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송덕봉(宋德峰) <제11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8-09-19 09:36     최종수정 2018-09-19 10:42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부부관계란 빛과 그림자 같아 오래 살다 보면 권태기도 있다. 젊었을 땐 여자가 고분고분 그림자로 있다 이립(而立·30)이 지나 불혹(不惑·40)이 가까이 오면 남성화 되는 경향이 있다. 이때 권태기도 생길수도 있으며 부부간에 크고 작은 갈등도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미암과 덕봉에겐 권태기란 없다. 낙향 후 하루하루가 뜨거운 사랑이 더 뜨겁고 깊어져 갔다. 밤마다 그들의 방에선 박장대소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미암이 귀양살이로 비록 몸은 떨어져 있으나 마음은 늘 덕봉의 곁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한양 벼슬에서 내려와 고향으로 왔다. 

덕봉의 뜻대로 되었다. ‘황금 띠를 둘렀으니 선비로서는 극진한 영화 / 돌아와 초당에 누워 건강을 돌봄이 어떠하오. / 벼슬을 사양할 수 있다고 일찍이 약속했으니 / 뜨락에서 달을 보며 돌아오길 기다리오!’ 미암이 가선대부(嘉善大夫·종2품)에 올랐을 때 덕봉이 보낸 시다. 

문관과 무관에게 주는 품계다. 종2품(從二品)의 하계로 가정대부(嘉靖大夫)와 가의대부(嘉義大夫)보다 아래 자리다. 사대부로 벼슬길에 올랐는데 종2품으로 만족할 리 없다. 출사한 김에 우의정·좌의정, 아니 영의정까지도 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덕봉은 미암이 높은 벼슬보다 건강한 남편을 더 희망했나 보다. 그래서 이제 그 꿈이 이루어졌다. 가깝고 가까운 길을 두고 멀고 먼 길을 돌고 돌아서 겨우 제자리로 왔다. 

지방의 향반(鄕班)에서 중앙무대인 육조거리에 까지 올랐다가 약삭빠른 사대부들의 권력다툼의 희생양이 되어 20여년 만에 고향에 돌아갔다. 그립고 목마른 조강지처 품으로 돌아왔다. 

덕봉의 간절한 희망이기도 하지만 미암의 꿈이기도 하였다. ‘눈이 내리니 바람이 더욱 차가워 / 그대가 추운 방에 앉았을 것을 생각 하노라. / 이 이슬이 비록 하품이지만 / 차가운 속을 따뜻하게 데워 줄 수 있으리...’ 미암이 한양에서 덕봉에게 보낸 시다.  

덕봉도 지체 없이 시로 답한다. ‘국화 앞에 비록 눈발이 날리지만 / 은대(승문원)에는 따뜻한 방이 있으리 / 차가운 방에서 따뜻한 술을 받으니 / 속을 채울 수 있어 매우 고맙소...’ 한양에서 미암이 따뜻한 방에서 소위 호사를 하고 있음이 아내 덕봉에게 미안하게 생각하며 보낸 시에 답시로 따끈한 술로 위로하고 있음을 거침없이 표현하였다. 

덕봉과 미암은 빛과 그림자 같은 부부인 동시에 시를 쓰는 문학 동료이기도 하다. 시로 안부를 묻고 답하는 과정을 보면 애틋한 사랑이 아쉬워 눈물겹도록 그리워함을 애써 숨기며 격려하는 분위기를 만든다. 나는 잘 있으니 당신이나 걱정하라는 답신이다. 하늘이 맺어준 천생연분의 모습이다. 

그러던 그들이 이제 귀향하여 낮이나 밤이나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다. 숨 가쁜 사랑이 나날이 더 화려하고 신비스럽게 깊어간다. 밤이 더 길었으면 하는 마음이 그들 부부는 동창이 밝아올 때마다 동시에 시퍼런 멍처럼 가슴에 새겨졌다. ‘높이는 여악 삼천 길과 같고 / 맑기는 소양강 8·9월 가을 같네. / 다시 양춘의 생물하는 뜻이 있어야 / 바야흐로 군자의 강유가 덕을 이룬다네. / 맑기가 어지 상수의 가을 같습니까? / 당신의 시 자랑 겸양이 없는데 / 젊은 시절 색욕을 없애버리고 / 사물에 무심하면 과연 짝이 없을 것입니다.’ 그랬다. 덕봉은 미암보다 8살이나 어리지만 정신적 연령은 오히려 네댓 살 위의 누이 같다. 

성장과정에서 여자아이가 남자아이 보다 철이 빨리 든다고 하는데 덕봉과 미암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외지에 나가 있는 남편이라 마치 물가에 내어놓은 아이를 보는 어미 심정 같아 보이기까지 하다. 어쩌면 미암은 그 같은 아내의 태도를 즐기는지도 모른다. 

결혼 때도 미암은 덕봉의 코치를 받았다. 미암은 키가 작다. 신부 집에서 반대를 한 것을 나이 어린 덕봉이 부모님을 설득하여 어렵사리 부부가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덕봉은 미암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세심한 배려가 사내에겐 때론 거추장스러울 수도 있었다.

그래서 미암은 “당신이 문 밖에 나갈 때는 코가 먼저 나가네!”라고 하자 덕봉은 서슴없이 “당신은 길 갈 때는 갓끈이 땅에 끌려간다.”고 응수하였다. 자나 깨나 척척 맞는 부창부수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뼈가 있는 얘기라 하겠다. 

남편을 지나치게 감시하지 말라는 뼈 있는 얘기와 키가 작은 것을 빗대 잘난 척 하는 남편을 제압하는 여자의 재치가 엿보인 일화라고 할 수 있다. 16세의 신부와 24세 신랑의 결혼생활은 순탄해 보일 듯 했으나 의외로 가시밭길이었다. 

35세 때부터 시작된 귀양살이는 55세에 유배생활이 끝났으나 곧바로 한양 벼슬길에 올라 헤어졌던 부부생활로 복귀되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40년 5개월 결혼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40여년 중 20여년은 유배생활로 빼앗겼으며 실제 한 지붕 아래 오순도순 결혼생활은 17년9개월에 불과하였다.

당시 조선시대의 주거환경을 오늘날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지역적인 거리로 소위 향처(鄕妻)와 경처(京妻)라는 것이 있었다. 벼슬을 하여 한양으로 올라가면 수발 들 여인이 필요할 때 생기는 아내가 경처며 고향에 있는 조강지처가 향처다. 

남존여비시대의 산물이다. 하지만 덕봉은 지혜롭게 대처하였다. 15세 연하의 여자 방굿덕과 미암 사이에서 네 딸이 출생했으나 그녀는 의연하게 처신했다. 미암은 귀양살이에서도 여자는 늘 곁에 두었다.

그러나 덕봉은 가장 없는 살림살이 챙기기에도 버거워 남편의 외도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지혜로운 여인의 삶의 모습일 게다. 덕봉이 그렇게 살아 오늘날 전라도가 낳은 제일의 여성 문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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