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약업닷컴 홈 > 팜플러스 > 문화

<118> 송덕봉(宋德峰) <제10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8-09-12 09:36     최종수정 2018-09-12 14:28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동창이 밝았는데도 미암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어젯밤의 방사가 힘에 붙였던 것 같다. 덕봉은 콩나물국을 끓였다. 숙취에 좋다고 하여 미암이 깨어나면 먹이려 하는 것이다. 평소 같으면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독서나 산책을 할 시간이 훨씬 지났다. 하지만 지금도 미암은 여전히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다. 이따금씩 잠꼬대까지 한다.

한양 육조거리에서 꿈같았던 생활이었는지 간간이 깔깔대는 웃음소리까지 나왔다. 그러다가도 땅이 꺼지는 한숨소리도 이따금씩 터졌다. 길고 길었던 유배생활이 교차하는 꿈이었던 것 같다. “여보 이제 일어나셔야 되요.” 덕봉이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미음을 흔들어 깨우자 와락 두 팔을 벌려 안았다.

덕봉이 깨워주길 기다렸던 것 같다. 입에선 여전히 술 향이 풍겼다. 방안에 술 향이 가득하다. “빨리 일어나세요. 방문을 열어 술 냄새를 없애야 겠어요...” 하지만 미암의 두 팔에 힘은 점점 더 세어져 덕봉은 다시 미암의 품으로 들어갔다. 새벽 그것이 일어난 것이다. 미암의 속내를 꿰뚫고 있는 덕봉은 온힘을 다해 뜨거운 품에서 빠져나왔다. 어젯밤의 심한 관계로 아직도 사타구니에선 불이 났다.

덕봉은 무결점의 현모양처 위치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자리를 지키려한다. 게다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서울 육조거리를 활보하는 사대부로서도 흠결 없는 선비가 되려 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잦은 꿈에서 임금을 만났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꿈에서라도 실현하려는 간절한 욕망이다. 그렇게라도 하여 현실에 대한 불만을 카타르시스 하려는 절규다.

낙향하여 그 절규는 더 강렬해 졌다. 북촌에 살았을 때는 육조거리와 피막골을 오가며 잠재된 이상이 실현 불가능 하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자제시켰다. 하지만 낙향해서는 그나마 볼 수 없어 마음은 정처 없이 떠돌고 애달프다. 이처럼 마음이 공허하고 무기력 할 때엔 미암과 장기를 두었으나 그것도 이젠 시들해졌다.

장기와 바둑은 덕봉이 미암을 못 당하였다. 미암이 덕봉의 의중을 꿰뚫고 슬슬 전략적으로 져주고 있는 것을 아내는 아직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대개 귀양살이에서 독서와 바둑, 그리고 여자가 삼락(三樂)이다.

미암도 그 삼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었다. 사실 군자(君子)의 삼락은 구존(俱存·양친이 다 생존)하고 형제가 무고하며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럼이 없으며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암은 귀양살이에서도 여자를 뚝 떼어놓고 살지 못하였다. 함경도 종성에선 방굿덕이 대표적 여자다. 그녀는 미모는 좀 빠지지만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서슴없이 하는 입안의 혀 같은 존재다.

문제는 사내들의 섹스욕구다. 여자와 달리 사내들한테는 섹스욕구가 목이타면 물을 마시고 싶은 갈증처럼 밀려오는 증상일 게다. 사실 하고나면 허무하기 까지 하지만 끝없는 갈증을 느끼는 것이 사내들의 색욕이다. 섹스에너지는 무한한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되기도 하고 어두운 그늘의 페이소스(비애감)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두 얼굴의 야누스이기도 하다.

덕봉은 지금 미암 정서의 조정자로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결혼생활 반은 귀양살이로 보내 애틋한 부부애를 쌓지 못하였다. 이제 낙향하여 못 다한 부부애를 오롯이 채우려 안간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미암은 미암대로 여자의 생리를 터득하였고 덕봉은 덕봉대로 남자에 대한 정서를 관념화 하였다. 그 중에 부부관계가 가장 문제가 크다.

노류장화(路柳墻花)로 다루었던 욕망분출을 미암은 낙향하여서는 덕봉에게도 그러려는 태도로 여자는 느끼고 있다. 어느새 불혹의 끝자락에 까지 왔다. 몸은 늙어 손자, 손녀들의 박 넝쿨에 박처럼 주렁주렁 달렸는데 여자로서 감정은 화촉동방 때나 별반 변한 것이 없다.

여자는 나이 들수록 철이 든다지만 남자는 지천명(50) 지나 이순(60)이 넘어가면 어린아이로 돌아간다 했는데 미암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암은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와 1519년 기묘사화로 화순동복으로 귀양 온 신재 최산두 밑에서 동문수학 관계다. 하서와 미암의 우정은 남다르다. 1540년 성균관에서 공부할 때 하서가 전염병에 걸려 위독한 상태였었다. 이때 미암은 문과에 급제0하여 성균관 관원이었던 그는 하서를 데려다 극진히 간호하여 회복케 하였다.

그 후 그들은 서로 반쪽 같은 관계가 되었다. ‘술에 취해 꺾었다오. 버들가지 하나 ’ 이별의 순간은 다가오는데 한없는 이 정을 어이하리. / 말리라, 내일이면 머나먼 길을 뜬다지. / 저 달이 몇 번이나 밝아야 그대 돌아오려나. ‘ 하서가 미암의 함경도 종성으로 귀양길을 앞두고 이별주를 마시며 읊은 시다. 마치 사랑하는 여인을 기약 없이 멀리 떠나보내는 연인의 애달픈 심정의 표현이다.

이에 미암 역시 유배지에서 시로 화답하여 주었다. ‘종성은 천하의 궁벽한 곳 / 티끌 모래 날로 일어 자욱만 하네. / 사투리를 잃지 않는 십년 나그네 / 부질없이 고향 꿈만 꾸고 있다네. / 북쪽 변방 아무도 불어오는 사람 없는데 / 하서 혼자 나를 생각하며 / 삼백자나 되는 시를 새로 적어 보내 / 털끝만큼 어긋나다 크게 그르쳤음을 말해주네’ 그랬다. 그들은 뜨거운 살을 섞는 아내 못지않은 우정의 꽃을 피웠다.

미암은 친구 복도 많았으나 아내 복도 차고 넘쳤다. 덕봉은 미암의 아내인 동시에 문학을 하는 동료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밤엔 연리지(連理枝)같이 뜨겁고 뜨거운 부부가 되었고 낮엔 끌어주고 밀어주는 동료가 되어 학문의 세계를 넓혔다.

미암은 덕봉을 당나라 문종 때 효성이 지극하고 현모양처인 상곡부인(上谷夫人)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덕봉은 미암이 첩과 사이에서 얻은 딸까지 차별 없이 가족으로 품은 아내의 도량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그 아내에 그 남편이다.

덕봉이 있었기에 미암이 있었으며 미암이 그녀의 남편이었기에 덕봉이 당나라 문종 때에 상곡부인으로 까지 비유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덕봉은 여자론 휘(諱)는 종개(鐘介), 자는 성중(成仲), 호는 덕봉(德峰)을 가진 흔치 않은 인물이다. 덕봉은 그녀의 전남 담양군 대곡면 집 뒷산의 산 이름이기도 하다.
기사공유   트위터   페이스북   싸이공감   구글
독자 의견남기기

독자의견쓰기   운영원칙보기

(0/500자) 로그인

리플달기

댓글   숨기기

독자의견(댓글)을 달아주세요.

뉴스홈으로    이전페이지로    맨위로

인기기사    댓글달린기사    공감기사

실시간 댓글 더보기

구인    구직   매매

사람들 interview

“노인 천식, 흡입제 사용 어렵다면 ‘경구제’가 대안”

박흥우 교수 “복약순응도 중요…비교적 안전한 ‘LTRA’ ...

더보기

오피니언 더보기

의약정보 더보기

약업북몰    신간안내

2018년판 약사연감 (藥事年鑑)

2018년판 약사연감 (藥事年鑑)

약업계 유일한 정책자료집… 인물정보 총망라국내 약업...

이시각 주요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