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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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김부용(金芙蓉) <제6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8-03-14 09:36     최종수정 2018-03-14 09:57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초겨울의 강선루는 그림처럼 아름답다. 강선루 밑으론 비류강이 이슬 같은 물이 흐르고 홀골산 열두 봉이 손에 잡힐 듯 병풍처럼 버티고 있어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한 후 한바탕 춤을 추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눈에 보이는 듯한 꿈속 같은 곳이다.

그 아름다운 풍광을 두 손을 꼭 잡고 구경하는 한 쌍의 남녀가 있다. 부용과 유관준이다. 목민관과 기생의 사이가 아닌 다정한 연인처럼 보인다. “어젯밤엔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았느냐? 내 숙소가 워낙 협소하고 구차하여 여자들이 편히 쉴 곳은 못되느니라.” “아니옵니다. 조용하고 아담하여 소녀는 꿀 같은 잠을 잤사옵니다. 나으리는 술을 드시다 거문고를 키시다 밤을 꼬박 새우신듯하옵니다.” “그랬느니라... 나는 혼자 자는 버릇이 있어 누가 옆에 있으면 잠을 이루지 못해 그러했느니라! 양해를 하려무나...” “아니옵니다. 소녀가 방해가 되었다면 다음부터는 부르지 마시옵소서...” 부용은 밤마다 불러달라는 말을 반대로 했다. 반어법이다.

370여칸이나 되는 강선루를 모두 구경하려면 며칠은 묵어야 한다. 산해진미의 음식을 먹어가며 팔도에서 나는 명주(名酒)를 마시고 주지육림을 즐기려면 그러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곳이다. 
 하지만 신임사또 유관준은 그런 마음이 전혀 없는 사내다. 술과 거문고만 있으면 잘 노는 사내다. 여자가 있으면 금상첨화지만 부용은 아니다. 연천이 떠올라서 일게다. 부용이 연천의 소실이 된다면 정경부인의 반열에 오른다.

하룻밤 객고를 푼 다음 후에 정경부인이 되면 평생 얼굴을 못 들고 있을 상황이 눈앞에 어른거려서다. 하지만 강선루에 올라와서는 마음이 조금씩 변해갔다. 부용을 품지는 않더라도 춤과 노래는 즐기고 싶은 게다. 한양에서 놀던 끼를 해동제일루인 강선루에 와서 자제는 쉽지 않은 충동이다.

그때다. “사또 나으리! 바쁘신 일과에 소녀를 위해 이곳까지 오셨는데 술 한 잔이 없어서 되겠는지요. 소녀가 나으리의 허락도 없이 아랫것을 시켜 간단하게 주안을 준비해 왔습니다.” 비류강 근처 고목 밑에 자리를 폈다. 안주는 빈대떡에 순대, 술은 옥로주다. “안주는 간단하나 주위의 절경의 경치를 산해진미로 생각하시고 즐겁게 옥로주를 즐기시옵소서...” 부용이 새 신임사또에게 술을 따라드렸던 옥(玉)잔으로 권하였다. 

유관준은 부용의 고고한 인물과 풍겨 나오는 아름다움에 넋을 잃은 듯 따르는 대로 술을 마셨다. 부용도 몇 잔 마시고 흥에 겨워 성천의 고유 춤인 황학무(黃鶴舞)와 금사무(金獅舞)를 마음껏 추어 보였다. 유관준도 술이 얼근하게 취해 덩달아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사내로 태어나서 부용을 보고 색이 동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지금 유관준이 딱 그러하다. 그들은 홀골산에 해가 걸리자 서둘러 하산하였다. 연인 같은 부용과 사또는 주막에 들려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맹세를 한 부부인냥 다정스럽게 막걸리와 순대로 저녁을 때우고 어제 그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다. 예방 아전이 서찰을 가져왔다. 연천이 보낸 유관준이 성천 목민관에 부임한 것을 축하한다는 서찰이다. 유관준은 빙그레 웃음 띤 얼굴로 부용을 바라보며 평양감사 연천대감이 보낸 서찰인데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스승의 서찰을 먼저 받았다고 말을 꺼냈다.

내일 당장 평양으로 축하인사를 떠나야겠다는 말이다. ‘성천의 붉은 기생이/ 푸른 비단 치마를 입었네/ 치마폭마다 봄바랑이 일고/ 걸음걸음마다 향기로워라/ 황학이며 금사자며/ 맞아서 춤을 추는데/ 강선루 위에/ 선녀들이 내려왔구나.’ 《기생들의 춤을 보면서》다.

거나하게 취한 유관준은 부용이 무섭기까지 하다. 자칫 순간의 취흥에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넘을 경우 평생 스승을 못 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온몸에 소름이 두드러기처럼 솟았다.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할 땐 유관준은 거문고에 시름을 실었다.

지금이 그때다. 강선루에서 부용이 욕망을 한껏 부추겼는데 유관준은 석남(石男)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용을 스승에게 선물로 받쳐야겠다고 마음먹고부터는 조심스럽고 정경부인으로 어른거려서다. “나는 동헌에 나가 할 일이 있으니 부용 너는 피곤할 텐데 일찍 자거라...” 사또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동헌으로 총총히 나갔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다. 부용은 사또 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원망스럽다. 뭇 사내들은 부용이하면 물불 안 가리고 부나비처럼 달려드는데 유관준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강선루에서 황학무와 금사무로 흥을 돋워 주었는데도 미동도 않는다. 부용은 춤을 출 때 살짝살짝 잘 익은 복숭아 같은 엉덩이까지 보였으며 저고리를 추켜올려 젖가슴도 보였다. 하지만 유관준에겐 통하지 않았다.

스스로 음문에 색기가 작동하였다. 소꿉동무 문칠이가 떠올랐다. 동갑내기지만 산으로 들로 나무를 하러 다닌 몸은 이젠 당당한 사내가 되었다. 그 문칠이가 나타났다. 지금 부용은 남자가 필요하다. 소꿉동무 문칠이는 소꿉놀이에서 엄마 아빠 역할 놀이도 한 사내다. “네가 어쩐 일이냐?” “으응. 내가 산에 갔을 때 잘 익은 산딸기가 있어 너 주려고 따가지고 왔어...” “그래! 고맙다.” 산딸기를 나누어 먹은 그들은 스스럼없이 한 덩어리가 되었다. 때마침 소나기가 쏟아져 나무그늘로 숨어들었다. 부용은 소나기에 옷이 흠뻑 젖어 전신이 드러났다. 문칠이는 거칠게 부용을 쓸어안았다. 풋사랑이다.

부용이 비몽사몽에서 깨어났을 때는 동창이 밝아오고 있었다. ‘서루에서 취하여 내려와/ 돌다리를 건너니/ 강바람이 비를 몰아와/ 차가운 창문으로 들어오네/ 부용 휘장 안에서/ 잠도 오지 않는데/ 가을 물 긴 하늘로/ 기러기 한 쌍이 날아가네.’ 《가을》이다. (시옮김 허경진)

그렇다. 열길 물속은 볼 수 있어도 한 길 사람 속은 볼 수 없다. 지금 유관준과 부용이 딱 그런 관계다. 불타는 청춘의 마음을 숨기고 고고한 체면을 지키는 사또와 절세미인을 몰라주는 부용은 꿈에서 그만 소꿉동무와 불장난을 치고 말았다. 꿈에서지만 부용은 유관준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부스스한 눈으로 잠에서 깨어난 부용에게 사또는 불쑥 말을 꺼냈다. 며칠 전부터 준비했던 말이다. “내 연천대감 축하인사에 너를 동행하려는데 네 마음이 어떠하냐? 지금 당장 떠나련다.” “나으리 소녀에겐 잠시 시간을 주셔야 하옵니다. 짐 정리를 해야 하옵니다.” 서둘러 짐정리를 한 그들은 평양을 향해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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