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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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김부용(金芙蓉) <제1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8-02-07 09:36     최종수정 2018-02-07 10:40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녹두꽃 빛깔의 하늘엔 새털구름이 몇 가닥 떠 있을 뿐 화창한 날씨다. 늦여름이지만 새벽공기는 달콤할 정도로 신선하다. 그런데 부용(金芙蓉·기명秋水·호雲楚·1820~1869)은 잠을 설쳤다. 신임사또가 열흘 후에 부임한다더니 모레 온다는 전갈이다.

환영을 준비하라는 전갈이 왔다. “부용아 새 사또가 모레 오신단다. 너도 준비를 해야겠다.” 수양모 설매(雪梅)가 호들갑을 떨며 들어왔다.

부용은 엊저녁에 잠을 설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강선루로 나가 머리를 식히려고 채비를 서두르는 찰나였다. “어디 나가려느냐?” “예 어머니 머리가 아파서 강선루에 가서 바람이나 쐬고 오려고요...”

“새 사또께서 모레 오신다는데 준비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번에 오시는 사또는 젊은 사또래. 인물도 옥골선풍에 헌헌장부로 인심까지 좋다는 소문이야! 젊은 사또가 열흘 후에 오신다더니 모레 오시는 것을 보면 네 명성을 익히 알고 있는 모양이야... 이 기회에 우리 한몫 잡자! 어느새 네 나이도 열아홉이 되었어. 기생나이 이십이면 환갑이 되는 거야. 우물쭈물하다 너도 내 꼴이 되기 십상이야... 젊은 사또는 너를 보면 물불 안 가리고 덤벼들거야! 이때 한 만냥 받아내야 돼...” 부용은 설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성천(成川)사또는 이상하게 자주 바뀌었다. 일년을 겨우 넘길 뿐 이년을 채우는 사또는 지난해 떠난 이기연(가명) 뿐인데 그의 후임으로 서희순(가명)이 온다는 전갈이다. 옥골선풍의 젊은 사또라는 말에 부용도 마음이 쏠렸다.

이왕 수청을 들 바에야 헌헌장부 젊은이한테 몸을 여는 것이 마음도 편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이든 사또는 욕심이 있어 밤새 아래위로 오르내리기만 하지 정작 사내구실은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부용이 어느새 사내를 접한 지 3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숱한 사내들이 욕정을 채우고 떠나갔으나 마음을 흔들었던 남정네는 한사람도 없다. 그런데 젊은 옥골선풍의 사또가 온다는 말엔 왠지 궁금해져 갔다. 어차피 수청을 들을 바에야 늙수그레한 사또보다 헌헌장부의 젊은 사또에게 몸을 내어주는 편이 나으리란 생각이 들어서다.

열두살에 기적에 올라 4년 후인 열여섯살에 성천 명기(名妓)가 되어 새로 부임하는 사또의 단골 수청 기생이 되었다. 성천 사또가 자주 바뀌는 이유는 명기인 부용이 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떠돌기도 한다. 소문에 불과한 얘기지만 아무튼 일년을 겨우 넘기나 싶으면 예외 없이 새 사또가 오곤 하였다.

이유도 다양하다. 몸이 안 좋아 사직하는 사또에서부터 늙은 부모 봉양까지 임금이 들으면 사임을 윤허(允許·임금이 허가함)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들이다. 그런데 사실은 성천 명기인 부용을 오래 차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성천 사또로 부임을 희망하는 인물이 너무 많아 눈치가 보이기도 하지만 생명에 위험을 느껴 일년 정도로 스스로 이유를 만들어 떠나간다는 얘기도 나돈다.

부용과 한번 합방을 하면 그만큼 치명적이라는 얘기다. 시와 노래, 그리고 춤에 미모까지 뛰어나 성천의 오절(五絶)이라 할만하다. 송도의 황진이(黃眞伊)·박연폭포(朴淵瀑布)와 서화담(徐花潭)을 ‘송도삼절’이라 한데에 비유한 것이다.

사실 부용은 평양 황진이·부안 이매창(李梅窓)과 함께 조선의 3대 시기(詩妓)로 꼽히고 있다. 세 시기 모두 기생으로 천부적 문재에 뛰어나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문화예술의 창조적 에너지 메카로 세월의 물레방아를 돌리고 있다.

부용은 기생으로서 절정기다. 기력(妓歷) 3년이지만 그동안 거쳐 간 사또들이 한양에서 내로라하는 사대부들이다. 사또라는 지방 목민관에 불과하지만 부용을 품으려고 경쟁적으로 성천 사또를 지망하는 현실적 배경이다. 이번에 부임해 오는 옥골선풍의 젊은 사또 역시 부용을 품으려는 것이 숨길 수 없는 뜨거운 속내일 게다.

성천 사또는 부용과 같이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지면 잠자리에 든다. 일심동체다. ‘옥 같은 얼굴 얼음 같은 살결이 애틋하게 여위었는데/ 봄바람에 열매 맺고/ 푸른 가지도 돋았는데/ 그치지 않고 봄소식을 알려주니 인간세상의 한스런 이별보다 오히려 나아라.’ 《지는 매화》다.

아무튼 모레 부임해 올 헌헌장부의 사또가 하루 전에 꿈에 먼저 나타났다. 부용은 아침부터 목욕재계하고 몸과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었다. 그동안 숱한 사또들은 기녀는 그냥 몸을 내주는 고깃덩어리 취급을 하여 석녀(石女)가 되었었다.

그런데 이번엔 이상하게 마음이 앞서고 가슴이 설레기까지 한다. 부용 자신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몸과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었다. “서방님 소녀 인사 올립니다. 소녀는 며칠 전부터 서방님을 기다렸습니다.” 부용은 나비가 꽃에 앉듯 사뿐히 치마를 걷어 올리며 신임 사또 앞에 절을 올렸다.

“그랬구나! 나를 왜 그토록 기다렸느냐? 나를 어떻게 알고 네가 기다렸느냐?” “소녀 기생 신분으로 성천에선 소식이 비교적 빠르옵니다.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역시 성천 명기 부용이 답구나...” 말을 마친 사또는 부용을 덥석 안아 방으로 들어가 화촉동방을 즐겼다.

부용의 남가일몽(南柯一夢)이다. ‘부용화가 곱게 피어 연못 가득 붉어라/ 사람들 말하기를 내 얼굴보다 예쁘다네/ 아침녘에 둑 위를 걷고 있노라니/ 사람들이 부용화를 왜 안보고 내 얼굴만 보나.’ 《부용화가 더 예쁘다더니》다. (시옮김 허경진)

그랬다. 부용은 시·노래·춤·거문고에도 뛰어났으며 미모까지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성천의 오절이라 지칭했으리라... 내일 모레 부임할 헌헌장부 사또도 열흘 후에 부임하리란 소식을 뒤엎고 칠일이나 앞당겨 오는 것도 성천의 명기인 부용을 하루라도 빨리 품으려는 욕심에서 서둘러 오는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다. 부용의 마음도 여느 사또와 달리 점점 더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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