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약업닷컴 홈 > 팜플러스 > 문화

<83> 김금원(金錦園) <제8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8-01-03 09:26     최종수정 2018-01-03 09:26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삼호정의 모임은 장안의 화제다. 조선후기 시사(詩社)활동이 주목 받는 것은 양반에서부터 중인계층(여항인閭巷人)까지 확산되었다는 사실이다. 사대부들의 독점이었던 문화 활동 무대가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넓혀졌다.

여자들의 모임으로 삼호정이 단연 눈에 띄는 존재다. 금원·운초·경춘·경산·죽서 등은 이미 여류시인으로 시사사회에선 존재를 인정받고 있었다.

임관(壬亂·1592)을 치룬 이후 조선후기다. 이 시기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문예의식이 고양되었던 때다. 사대부 문화에서 중인(中人)계층이 주축을 이룬 여항문화에 이르기까지 남성들의 문화는 보다 다양한 양상으로 세련되어 갔다. 이러한 문화를 주도했던 당대의 특징적인 문화현상 중의 하나가 시사활동이다.
그런 시대의 흐름 속에 순수여성 중심의 삼호정 존재는 여성계의 대표성을 뛰어넘어 조선후기 문화흐름에 획기적인 소위 페미니즘적 운동이라 해도 지나침이 아닐 것이다. 시사활동은 신분적 특권과 아울러 문화적 특권을 누렸던 상층 양반들은 뜻이 맞는 이들끼리 시사(詩社)를 결성하여 시와 풍류를 즐겼다.

오늘날 시동인 모임과 비슷한 성격으로 정치·사상적 입장에 따라 분파를 이루면서 서울(한양)과 근기(近畿·서울인근 지방)지방을 중심하여 형성되었다. 조선후기 시사는 학문과 인생에 뜻을 공유하여 예술적 재능을 고무하는 지음(知音)들의 창작활동을 격려, 지원하는 공간이기도 하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정약용은 이치훈·이우수·한치응 등 14명을 중심으로 죽란시사(竹欄詩社)를 결성하였으며 이덕무·박제가·박지원·홍대용 등 연암그룹은 백탑시사란 문학 동인을 만들었다. 백탑은 현재 탑골공원 원각사지 십층석탑을 지칭한다.

이 외에도 수많은 시사가 결성되어 음악을 연주하며 술을 마시고 다졌으며 시를 주고받으면서 풍류(風流)를 즐겼다. 이 시기에 주목하는 것은 양반들의 독점이었던 시사활동이 중인계층까지 확산되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중인들의 거주 중심지는 인왕산과 삼각산 부근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은 천수경(千壽慶·?~1818) 중심의 옥계시사(玉溪詩社)에 참가했었던 사람이 수백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런 문화 흐름에 금원·운초·경산·경춘·죽서의 삼호정은 문화사회 전체에 관심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녀들의 재능은 남성중심의 시사에 대등하거나 어느 부분에선 앞선 부분흐름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독서세계는 폭 넓고 집중적으로 신분상의 열등함을 문화예술로 극복하려는 생활이여서다.

고독과 여성 특유의 섬세함, 그리고 소외감은 시창작의 에너지다. ‘저녁 무렵 구슬피 울며 기러기들 떼 지어 날고/ 강물 위 구름과 고갯마루 나무에 가슴이 메어진다/ 서로 생각하며 강물에 눈물 뿌리니/ 지난해 삼호정에서 이별하고 물결만 보냈네’ 죽서의 《가을 금원에게》다. 반벙어리에 병약하기 까지 한 죽서의 조용하고 속 깊은 성정이 시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금원·운초·경산·경춘·죽서는 삼호정이 단순한 시사모임이 아니다.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시대와 고려의 국교였던 불교를 역성혁명으로 성리학을 국교로 한 사대부의 나라 조선에서 처절한 페미니즘 운동의 공간일 것이다.

그녀들은 서녀나 기녀 출신으로 사대부의 소실이 되었다. 하지만 천부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주체할 길 없어 삼호정을 만들어 독자공간을 만들었던 것이다. ‘오늘 밤 달은 한없이 밝은데/ 너랑 나랑 깊은 회포 누가 더 클까/ 은하수 뗏목 빌려 꿈속으로 오리니/ 은하수야 높은 물결 일게 하지마라’ 죽서의 《다시 금원에게》다. 금원과 죽서는 동향인으로 우의가 남달라 두터웠었다.

그녀들은 그렇게 형제 못지않은 정서 동일체로 호흡이 척척 맞았다. 삼호정이란 독립된 공간은 다섯 여인의 삶이면서 시의 세계 자체다. 삼호정은 그들만의 문화세계에 갇혀있지 않았다. 사대부 중심의 시사와 중인계층의 시사와도 교류를 하였다. 시대흐름을 알기 위한 소통이자 페미니즘 운동이기도 하다.

대표적 인물이 신위(申緯·1769~1847)다. 시·서·화 삼절(三絶)의 문인으로 삼호정 여류시인들과 소통이 자연스러웠다. 불우한 여인들의 정서와 생활상들이 예술창작의 에너지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남성주도 사회에서 독특한 신분의 여성들의 정서를 알기 위함에는 삼호정보다 좋은 데는 없기 때문이다.

한편 원주댁의 뜻밖의 저돌적 행동에 김명원은 이틀이나 더 머물렀다. 전에 없었던 원주댁의 고집이기도 하지만 김명원이 순순히 져 주기도 처음이다. 사실 원주댁은 현모양처에 티끌만치도 모자람이 없는 여인이다. 원주댁은 어디로 보나 정경부인(貞敬夫人·정·종일품 문무관 아내)의 품위다.

그런데 지금 소실로 있다. 김명원은 늘 마음속으로 미안해 왔는데 오늘 처음으로 앙탈 섞인 고집에 순순히 응해 주었다. 그들의 잠자리는 밤낮이 없다. 금원은 한양으로 올라갔고 경춘은 이웃마을 외가댁으로 며칠 놀러가 집안은 제2의 화촉동방을 즐기는 부부만이 있다. “우리 다음 세상에서도 다시 만납시다. 내 그대를 꼭 정경부인으로 만들어드리리다...:” 김명원은 일합을 즐기고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뜨거운 손이 원주댁의 사타구니를 더듬더니 곧 바로 힘을 쓰기 시작하였다.

여자도 일합때 물만 붙었지 정작 활활 타오르지 않은 상태다. “당신이 사나흘 더 있다 가라하지 않았으면 내가 화를 냈을 거야!” 한낮이 어스름 땅거미가 질 때까지 그들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엄마 어디계세요?” 이웃마을 외갓집에 놀러갔던 경춘의 목소리에 원주댁은 화들짝 놀라 김명원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삼십이 넘은 원주댁의 얼굴에는 활짝 핀 핑크빛 영산홍 꽃빛깔 같은 웃음이 가득히 피었다.
기사공유   트위터   페이스북   싸이공감   구글
독자 의견남기기

독자의견쓰기   운영원칙보기

(0/500자) 로그인

리플달기

댓글   숨기기

독자의견(댓글)을 달아주세요.

뉴스홈으로    이전페이지로    맨위로

인기기사    댓글달린기사    공감기사

실시간 댓글 더보기

구인    구직   매매

사람들 interview

"다양한 경험 토대로 '심야상담약국' 자리잡을 것"

약준모 11호 공공심야약국으로 광주 소재 '소담약국' 지정

더보기

오피니언 더보기

의약정보 더보기

약업북몰    신간안내

약창춘추(藥窓春秋) 2

약창춘추(藥窓春秋) 2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전 식약청장)가 약업신문에 10...

이시각 주요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