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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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김금원(金錦園) <제6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7-12-20 09:36     최종수정 2017-12-20 10:45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학수고대 했던 늦둥이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나날이 불러오던 배는 김명원이 팔월 한가위에 다녀간 이후 불룩했던 배가 서서히 꺼지기 시작하였다. 상상임신 이였었던 것이다. 헌헌장부 김명원에게 첫눈에 반해 소실이 되었으나 연달아 딸만 낳았다. 김명원은 대놓고 얘기는 하지 않았으나 은근히 아들을 바라는 눈치였다.

금원과 경춘에게 아들한테 시키는 교육을 그대로 시키는 것을 보고 원주댁은 김명원의 속내를 눈치 챘던 것이다. 하지만 아들을 마음대로 낳을 수 있는 것이 아닐 뿐만이 아니라 일 년에 두서너 번 왔다 하루 이틀 묵고 바람처럼 떠나가는 사내 씨앗을 제때 받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엔 마침 배란기였었다. 그래서 임신이 적중했으리라 철석같이 믿었다. 입덧에 눈 밑에 기미까지 생겼다. 생리중단에 구토와 유방이 커지고 유두주변 색소까지 짙어지고 하여 임신을 확신했던 것이다. 더욱이 생생한 태몽까지 꾸었다. 태몽도 예사롭지 않은 태몽이었다. 남편과 짙은 사랑을 나누고 정원을 거니는데 둥근 보름달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중에 옥동자로 변해 ‘엄마’ 소리치며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태몽은 이튿날로 이어졌다. 원주댁은 아침에 먹다 남은 보리밥을 냉수에 말아 간단히 점심을 먹고 잠시 눈을 감았는데 비몽사몽에 붉은 태양이 떨어져 내려오는 중에 헌헌장부로 변해 ‘어머니’하며 가슴을 파고들었다. 너무도 생생한 꿈이다. 아들을 낳아 소실의 책임을 다 하리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상상임신이었다. 본가에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비록 소실이지만 아들을 낳으면 소실로서 여자의 책임을 다 하는 동시에 위치도 확고해 지기 때문이다.

원주댁은 임신을 하고서도 생각이 많았다. 아들을 낳아도 문제가 있다는 것에 걱정을 많이 했었다. 아무리 똑똑하고 학문이 높아도 과거를 볼 수 없는 신분(서자)이니 여자인 금원과 경춘과는 또 상황이 달라 은근히 아들이 아니기를 바랐던 것도 사실이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서자·서녀의 길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정해져 있어서다.

벼르고 별러 의원 집에 가서 아이의 건강을 진단했을 때 상상임신으로 밝혀지자 원주댁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내로 태어나 과거도 못 보는 신세에 얼마나 괴로워할까 생각에 이르자 몸서리가 쳐졌던 것이다.

한편 금원은 금강산이 봉래산으로 변하는 늦가을에 집으로 돌아왔다. 금원은 제천 의림지를 시작하여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다 보았지만 미련이 남아 설악산까지 보고서야 귀향하였다. 집에 도착하자 남자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으로 세상의 넓음과 화려함을 포효하였다. ‘모든 물 동쪽으로 다 흘러드니/ 깊고 넓어 아득히 끝이 없구나/ 이제야 알았노라. 하늘과 땅이 커도/ 내 가슴에 담을 수 있음을...’ 《호동서락기》 중에서다.

1830년 봄 금강산 유람을 다녀온 후 어디에선가 영혼의 자유를 위해 기생을 한듯하다. 원주에서 자라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세상이 넓음을 안 금원이 한양(서울)으로 올라왔을 것이 뻔하다. 김앵(金鶯·금원 妓名)은 이때 김덕희(金德喜·1800~1853)의 소실의 신분이었으며 시인이었던 운초(雲楚·1800~1857·김부용의 호) 역시 소실로 시를 썼던 경산(瓊山)등과 어울렸다.

1841년 87살이 된 김이양의 생일잔치에 금원도 참석했는데 그때 그녀를 김이양은 교서(校書·기생지칭)라 불렀다.

아무튼 그 후 1845년 금원의 나이 29살에 김덕희(金德喜)의 소실이 된다. 금원은 김덕희를 따라 의주로 갔다 벼슬에서 물러난 남편을 따라 용산의 삼호정으로 온다.

이때부터 시사(詩社) 삼호정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봄뜻으로 서로 만나 고운 놀을 아끼며/ 버들 눈썹 처음 펼치니 예스런 뺨이 곱기도 하여라/ 시를 찾으며 꽃 보는 목을 마음껏 누리니/ 누가 선녀들에게 베틀 일을 쉬라했나’ 《삼호정의 벗들》이다.

그해 따라 전례 없는 많은 눈이 내렸다. 한양에서 원주까지 오려면 그때는 날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김명원은 꽃피고 새 우는 봄이 되서야 원주에 내려왔다. 사내는 행여 아들이 태어나 아비를 반길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원주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는 이름(金星)까지 부르며 들어갔다. “금성아! 아비가 왔다! 아비가...” 김명원은 차분하고 전형적인 사대부로 흥분하는 경우가 없다. 원주댁이 15년 동안 경험해 온 김명원 모습이다. 그런데 오늘은 사립문에서부터 아이 이름을 부르며 들어왔다.

원주댁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어차피 한 번은 겪고 넘어가야 할 고역이니 부딪쳐야만 하였다. “대감 소첩이 죽을죄를 지었어요...” 원주댁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김명원 앞에 넙죽 엎드려 울음을 터뜨렸다. “죽을죄를 지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울지만 말고 어서 말을 해 보시오!” 김명원은 원주댁을 일으키며 다그쳤다. “대감, 소첩이 상상임신을 했었어요! 그것을 지난겨울에야 알게 되었어요. 소첩이 아이 건강을 알아보기 위해 읍내 의원 집에 갔었지요... 그런데 의원이 뱃속에 아이가 없다는 것이에요... 소첩은 의원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 몇 번이고 다그쳐 물었지요. 하지만 역시 상상임신이라는 것이에요...” 말을 마친 원주댁은 다시 엎드려 더 섧게 울었다.

김명원은 상황판단이 잘 안되는지 멍하니 천장을 한참 쳐다보다 밖으로 나왔다. 울타리엔 산수유가 곱게 피었다. 원주댁은 봄꽃 중에 노란 산수유를 유독 좋아한다. 김명원은 산수유 꽃이 많이 달린 가지 하나를 꺾어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원주댁을 향해 “당신이 무슨 죄요! 자식 욕심을 낸 내가 죄지....”라고 산수유 꽃을 원주댁에 건넸다.

그리고 그는 “내 한양으로 올라가리다! 내달에 과거 시험이 있소...”라고 문밖으로 나갔다. 원주댁이 뒤따라 나갔으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듯 총총히 어둠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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