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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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김금원(金錦園) <제2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7-11-22 09:36     최종수정 2017-11-23 09:06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잠자리 얘기로 시작 된 삼호정 시사(詩社)는 맏언니 운초의 수습으로 겨우 진정되었다. 소실의 위치에서 잠자리는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노류장화 개념에서 거두어 준 존재로 생각되어서다. 아무리 빼어난 미색이나 뛰어난 재주를 가졌어도 소실은 소실이지 조강지처는 아니기 때문이다.

삼호정에 모였던 여류시인 운초·금원·경춘·경산·죽서 5인방이 그러했다면 고인들이 격노 할지도 모르겠으나 19세기 사대부 중심의 조선사회는 그러했었던 역사를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점심을 먹고 난 후 그들은 노량진이 눈 아래 펼쳐진 창가에 나란히 앉았다. 병약한 죽서는 역시 점심도 먹는 시늉만 하였다. “너는 왜 그렇게 먹질 않니? 내가 오늘 점심을 신경을 많이 썼어... 노량진에 가서 생선을 사와 직접 만든 거야... 건강해야 잠자리도 좋아져! 사내들이란 잠자리를 중시하거든...” 금원이 근심스런 표정으로 죽서를 바라보았다. “언니 고마워요! 오늘은 그래도 많이 먹은 거야... 집에 있으면 점심은 거의 거르는 것을....” 죽서의 음성에 갑자기 물기가 묻었다. “왜 어디가 그렇게 아픈 거야?” “내 건강이야 배냇병신이잖아...” 그렇다.

그녀의 호(號)가 반아당(半啞堂:반벙어리)이다. 배냇 장애인 신체다. 하지만 시재(詩才)는 뛰어나다. ‘꽃이 지는 봄은 첫 가을과 같네./ 밤이 되니 은하수도 맑게 흐르네./ 한 많은 몸은 기러기만도 못한 신세/ 해마다 임 계신 곳에 가지 못하고 있네.’ 죽서의 《만춘》(晩春)이다. 장애인을 한탄하는 시다. 기러기는 계절에 따라 자기가 가고 싶은 곳에 갈수 있는데 만물의 영장인 자신은 마음대로 임이 계신 곳에 갈수 없음을 나타낸 적나라한 절창(絶唱)이다.

금원과 죽서는 고향 친구다. 그래서 둘은 5인방에서 가장 친한 관계다. 나이도 같으며 금원이 생일이 몇 달 앞서 언니로 부르지만 자연스럽게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오전엔 금원이 노래를 하더니 오후엔 죽서가 자신의 《만춘》을 낭송하였다. 몸은 거동하기에 조금 불편할 뿐 시를 쓰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그러나 장애인이란 칭호가 붙어서 그런지 그녀의 시는 늘 애처롭다.

좀처럼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다. “운초언니, 오늘은 이만하고 한강에 나가 뱃놀이나 하는 것이 어때요? 날씨도 청명한데 집에 있으니 답답하기도 하네요?” 금원의 말에 운초가 반아당의 눈치를 살핀다. 거동까지 자유롭지 못한 죽서가 걱정된다는 표정이다. “괜찮아요. 언니 저는 지금 시상이 떠올라 시를 써야겠어요! 네 사람이 갔다 오세요...” 말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하지만 죽서의 표정은 맑은 샘물을 보고 목이 너무 길어 먹지 못하는 기린의 눈망울이다.

한강의 나들이는 결국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삼호정 5인방이 누구 한사람이라도 빠지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묵계가 있어서다. 그들은 만나면 즐거웠다. 자신들을 사람대접해 주는 이들은 삼호정 인원뿐이다. 사실 사내들은 그녀들을 말하며 움직이는 꽃 정도로 보고 있는 것일 게다. 그녀들은 다시 태어나면 꼭 사내로 태어나길 소원 1호로 꼽을 것이다.

착 가라앉은 분위기를 운초가 나서고 금원이 수습을 해야 한다. “오늘은 우리 시 낭송을 죽서로 끝내고 서방과 재미있는 얘기나 좀 해보자! 누구 서방이 밤에 제일 신통치 않지?” “언니 서방 얘기는 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우리에게 남자는 벌 나비 같은 존재지요. 저는 삼호정의 호스트로 시 한 수 읊고 오늘은 끝내지요!” 금원의 표정이 단호하다. “그렇게 하자. 오늘은 이상하게 분위기가 무겁고 감정이 가라앉아 있네... 미안하다. 나잇살을 더 먹은 내가 흉허물 없는 얘기인줄 알고 말을 꺼냈는데 그만 실수를 했네. 적어도 잠자리는 비밀인 것을 내가 주책이 없었어... 정말 미안하다.” ‘꽃향기 따라 더욱 새로운 풍경/ 아름다운 꽃과 풀에 지난날 생각나네./ 연초록 나뭇잎은 그림 같은 봄빛/ 우렁찬 물소리 골짜기 가득하네./ 보름 즈음 밝은 달 떠오르고/ 고향이 그리워도 갈 수 없는 몸이라/ 깊은 산 노을위로 날아가는 저 학은/ 지난 밤 꿈속에서 만난 그 사람이런가.’ 《무제》(無題)다.

사실 소실은 본인이 남편을 보고 싶다고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신분이 아니다. 사내가 마음대로 바람처럼 와서 마음껏 욕심을 채우고 아침안개 같이 사라져도 앙탈 한번 제대로 부릴 수 없는 조강지처와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조선조 당시엔 소위 향처(鄕妻)와 경처(京妻)란 것이 있었다. 교통이 불편하여 벼슬길에 오르면 자연스럽게 조강지처와 헤어져 몇 개월씩 혹은 몇 년이나 본의 아니게 홀아비 생활을 하게 된다. 현지 생활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방책의 현지처가 그것이다. 시골에서 한양으로 온 사대부에겐 경처이며 한양에서 시골로 간 사대부에겐 향처다.

지금 삼호정 다섯 여인은 남편의 신분에 따라 경처와 향처의 자리에 앉았다.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정할 수 없는 것이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여자다. 서녀나 기녀 출신의 소실들 신분은 더욱 제한적이었다. 삼호정의 멤버 운초·금원·경산·경춘·죽서는 천부적 재능인 시문에 뛰어나 제한적이지만 그들만의 공간에서 영혼의 자유를 즐길 수 있었다.

남편의 벼슬에 따라 정경부인(정·종 일품 문무관 아내 봉작)이 될 수도 있는 여인들이었으나 모계 법에 따라 서녀가 되기도 했으며 양친이 일찍 세상을 떠 의지할 곳이 없어 기생의 길을 택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삼호정 5인방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타고난 시재를 마음껏 발휘하여 여류시인으로 역사를 빛냈다. 조선의 여류문학은 서녀와 기생들의 시재로부터 꽃피워졌다.

황진이·이매창·김부용 등 주옥같은 시를 남겨 청사에 길이 남을 절창들이 수두룩하다. 금원·경산·경춘·죽서 등도 그녀들의 작품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다. 불꽃같은 예술은 뜨거운 사랑이 에너지가 되어야 탄생할 수 있는가 보다.

삼호정의 5인방은 사내들이 여자를 더 사랑한 것이 아닌 여자들이 사내들을 더 극진이 흠모하고 순애보 같은 사랑을 받친 역사적 주인공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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