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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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김삼의당(金三宜堂) <제5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7-09-06 09:36     최종수정 2017-09-06 09:40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화촉동방보다 더 뜨거웠던 방은 동창이 밝았는데도 인기척이 없다. 삼의당과 하립의 방이다. 며칠 전에 한양에서 내려와 오늘은 다시 산사로 들어가기 위해 끔찍이 사랑한 삼의당과 헤어져야 하는 날이 밝았다. 삼의당은 부부관계를 하고 남편이 잠들자 바람처럼 방을 빠져 나왔다. 남편이 몇 달을 한양에서 지낼 때 입을 옷 등을 준비가 덜 되어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다.

하립은 그것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졌다. 몇 달을 참았던 욕정을 몇 번이고 반복하여 방문이 열렸다 닫혔다 할 정도로 심하게 코를 골며 깊은 잠에 곯아 떨어졌다. 삼의당도 몸이 고달프긴 마찬가지다.

첫날밤 이후 처음으로 호되게 시달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싫지 않았고 항상 아련히 기다렸었던 것으로 다가와 부부가 척척 호흡이 맞았던 것을 삼의당은 떠올리며 빙그레 웃음까지 나왔다.

그것이 부부인가 하는 생각에 이르자 입신양명의 꿈이 하루 속히 이루어져 하루라도 빨리 일년 365일 한 이불속에서 뒹굴었으면 하는 생각이 갑자기 소름이 끼치도록 목말라졌다. 삼의당은 속으로 나도 여자임엔 틀림이 없었구나 하며 대책 없이 날뛰는 욕망을 조용히 다독이었다. 남편은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인기척이 나지 않았다.

조선 말기 향반들의 삶의 모습이다. 배부르고 등 따습게 해주는 좋은 직업은 2~3천여 개에 불과한데 학통에 붙어 거웃거리는 선비들과 논공행상에 매달린 이들과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1597) 등에서 공을 세운 이들까지 벼슬길에 오르려 아귀다툼이다.

하립과 같이 향반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입신양명 파들도 수도 헤아릴 수 없을 만치 많다. “또 왔어! 이번엔 꼭 등과해야지...”라고 겉으로라도 덕담을 해주는 인사가 있는가 하면 ‘네 놈은 이번에도 뻔한데 또 왔어?’ 하고 아예 무시하는 이도 있다.

그럴 때면 하립은 당장 짐을 챙겨 고향으로 달려가려 할 때마다 아내가 앞을 가려 참고 또 참았다. ‘스물일곱 살 아내와 남편/ 몇 해나 긴 이별을 했던가요./ 올 봄에도 장안으로 가신다니/ 두 뺨에 두 줄기 눈물이 흐르네요./ 늙은 말은 밤새도록 여물 먹었는데/ 나그네 길 떠나는 건 왜 이리 더딘지/ 몽당치마 어린 여종이 부엌에 와서/ 기장밥을 새벽에 벌써 지었다고 아뢰네요./ 원앙금침 잠자리에 새벽닭이 일찍 울어/ 천리 먼 길 낭군님의 짐 보따리 차리네./ 늙은 종은 문 열어 말 끌고 나가 부싯돌로 불붙여 담배 태우네.’ 《서울(한양)에 가시는 낭군께 드리다.》다.

삼의당의 두 눈에선 소낙비가 쏟아지듯 눈물이 두 볼을 타고 쉼 없이 흘러내리고 있다. 밤새 떡방아를 찧고 정오가 지나서야 일어나 아내의 눈물을 보자 하립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먼 윗대 영의정 할아버지 하연(河演:1376~1453)이 비몽사몽에 나타나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 향반에 머물러 있으려느냐?”고 야단 겸 분발하라고 사라졌다.

아내가 어젯밤에 따라준 술잔에도 하연 할아버지 모습이 언뜻언뜻 비쳤다. “그만! 그만 하시오. 내 곧 당장 한양으로 떠나야겠소... 친구와 약속한 것을 깜박 잊고 잊었소!” “아니에요 서방님! 시험날짜는 아직도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하루 더 쉬고 가셔도 넉넉하지 않을까요?” 삼의당은 남편 하립이 친구와 약속을 깜박 잊어 지금 당장 떠나야겠다는 말이 자신이 권주가까지 부르며 장도에 오르는 자신을 위함에 미안해하는 말이란 것을 아내는 알고 있었다.

실제로 어젯밤의 뜨거운 운우지락을 화촉동방 이후 처음이라 한 번 더 기쁨을 누리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기도 하였다. 여자는 여자의 세계를 벗어나기 쉽지 않다. 의식적으로 지성적 행동이 필요하여 때와 장소에 따라 그리고 대상에 따라 지성적 판단에 의한 주인공이 되지만 여성 본연의 위치로 오면 역시 여성적 일 수밖에 없다. ‘성남의 밭두덕에서 뽕 따는데/ 곱디고운 흰 손이 어른거리네./ 젊은이의 휘둥그레 놀란 눈/ 바라보며 부러 오래 머뭇거린다.’ 《밭두덕의 뽕나무》다. (시옮김 허경진)

여자의 본심일 게다. 남편 하립이 과거 공부한다고 산사에 있다 한양 길에 오르기 위해 집에 들려 며칠 쉬는 사이에 부부의 뜨거운 밤은 짧디 짧다. 열여덟 살에 부부의 연이 되어 화촉동방의 뜨거운 살을 섞은 향기로운 체향(體香)이 채 가시기도 전에 초야에 세운 입신양명을 위해 헤어져 살았다.

지금 또 헤어져야 할 순간에 삼의당이 한양으로 떠나 갈 남편을 위해 권주가를 불렀다. 향반으로 사회적 신분이 떨어지긴 했어도 그녀는 포은 정몽주의 문인 정우(鄭寓)의 딸이다. 그런데 지금 기방(妓房)에서 기녀가 찾아 온 한량을 위해 부름직한 권주가를 열창하였다. 여인의 한이 맺힌 권주가다. 똑같은 노래의 가시일지라도 장소와 대상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삼의당의 권주가는 입신양명을 학수고대 하는 처절하고 눈물겨운 노래다.

하립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하루 더 아내와 뜨거운 운우지락을 즐기고 이튿날 한양 길에 올랐다. 발길이 천근만근이다. 과거는 시간이 흘러 세월의 무게가 쌓일수록 점점 더 자신이 없어졌다.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여 자신이 더 붙어도 신통치 않은 상황에 아내의 그리움이 점점 더 커져 책을 펴 놔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아내의 성화에 떠밀려 한양 길에 올랐으나 결과는 뻔해 보였다.

몇 년 전에 본 얼굴들이 떠올랐다. “자네도 또 왔군! 큰 꿈 버리고 이왕 왔으니 한양구경이나 실컷 하고 요릿집에 가서 몸이나 풀고 내려갑시다.” 수차례 떨어진 향반 자제들의 푸념이다. 하립도 아마 이들 사이의 한 인원이었을지도 모른다.

때는 소론이 득세했던 영조시대다. 영조는 사색당파의 극심한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그 유명한 탕평책을 썼다. 그때 나온 음식이 탕평채였다. 당시 당파의 싸움은 결국 밥그릇 싸움이다. 그때 괜찮은 직업은 2~3천개에 불과했다니 쟁탈전이 오늘날과 별반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소위 지식인 그룹인 학파로 모였던 인재들은 이해가 맞아 떨어진 붕당을 이뤄 당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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