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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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김삼의당(金三宜堂) <제4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7-08-30 09:36     최종수정 2017-08-30 09:38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진양 하씨 집안은 영의정의 후예라고 내세우긴 하지만 그건 먼 조상의 얘기에 불과하다. 7대조의 교리(校理:홍문관 정5품) 벼슬 현달로 끝이 났다. 그나마 세거지인 안산에서 남원으로 낙향한 후 증조부 이래로는 벼슬길과는 멀어졌다. 하씨 집안이 평민으로 몰락하지 않으려면 하립의 대에서 기어코 등과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삼의당의 친정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삼의당의 남편 하립의 등과로 출사(出仕)의 꿈은 기울어진 친정집 뜨락에도 따뜻한 봄볕이 쏟아지길 기다린 야무진 야망이 도사리고 있다. 새색시 독수공방은 그처럼 두 집안의 운명이 그녀의 가녀린 양 어깨 멍에가 되었다.

하지만 정작 시험을 치러 어사화를 머리에 꽂고 마을을 휘돌아 위세를 떨쳐야 할 주인공은 아내 삼의당처럼 심정이 절박하지 않다. 몸은 산사(山寺)에 있어도 마음은 삼의당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책을 펼쳐 몇 장을 넘기지 못하여 아리따운 삼의당의 곱고 항아(嫦娥:달속의 전설의 선녀)같은 자태가 책장을 덮어 더 이상 글을 읽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그가 입신양명의 꿈을 학수고대하는 삼의당이 허벅지를 꼬집어 가며 독수공방을 극복하는 심정을 알 리가 없다.

담락당(湛樂堂) 하립은 오늘의 상황이 삼의당 같이 절박하지 않은 것이다. ‘보지 않으면 마음도 멀어진다.’ 하지 않았던가! 지금 하립의 입장이 딱 그러하다. 사랑하는 아내 삼의당과 비단 같은 살을 비벼대며 뜨거운 입김을 토해내는 정사장면 문득문득 눈앞을 가려 끼니가 어려운 집안 사정은 염두에도 없는 것이다. ‘얇은 적삼은 추위를 견디기 어려운데/ 일 년 중 오늘밤 달이 가장 둥글구나./ 낭군님께선 옷 보내주기를 기다릴 텐데/ 힘들여 다듬이 질 하자니 밤이 깊어가네.’ 《옷을 다듬이질 하며》다.

지금은 옷이 지천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옷은 일일이 여인의 손길이 가야했다. 제조에서 재단에 이르기까지 여인의 손길이 가지 않으면 남자들은 의관을 제대로 갖출 수가 없었다. 삼의당의 친정이 향반으로 지위가 하향되어 있었어도 삼의당이 밥 짓고 설거지까지 하지는 않았다. 이제 삼의당은 출가외인 신세다. 친정보다 몸 담고 있는 시집이 더 걱정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시집온 후 뼛속까지 하씨 집안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편이 과거를 통해 입신양명하면 시집은 물론 친정까지 빛을 볼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여자가 잘 들어와야 집안이 잘된다는 옛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남편의 사회생활도 아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랐듯이 조선시대에서 신분의 격침도 여자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하씨 집안의 환경은 꼭 그런 것도 아닌듯하다. ‘달밤에 함께 꽃구경하며 꽃과 달과 당신이 있으니 우리집 같은 곳은 세상에 다시없을 것’ 하립이 이처럼 아내에 깊은 사랑을 표시했으며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긴 하나 야심만만하거나 성취욕은 아내인 삼의당에 미치지 못하였던 것 같다.

아내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입신양명의 작전으로 공부 하러 간 산사와 과거 보러간 한양에서 하립은 끊임없이 그리움과 어려움을 호소하였다. ‘그립고 슬픈 생각이 들 때면 당신의 얼굴을 보듯 보내온 글들을 읽는다.’라고 애절한 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삼의당은 그럴 때면 어미가 철부지 아들을 달래듯 편지로 독려와 미래를 얘기하며 다독였다. ‘여자들은 여려서 마음이 아프기 쉬우니/ 그리운 마음 들 때마다 시를 읊지요./ 대장부는 바깥일에 힘써야 하니/ 고개 돌려 규방 속은 생각하지 마세요.’ 《서울계신 낭군께》다. (시옮김 허경진)

그랬다. 삼의당은 여장부다. 남편 하립에겐 집안일은 내가 알아서 다스릴 터이니 당신은 열심히 공부하여 장원하면 더욱 좋고 등과하여 끊어진 사대부의 맥을 다시 이어 달라는 애절한 호소다. 하지만 하립은 삼의당의 뜨거운 야망의 절박함 같이 움직여 주지 않았다. 부창부수(夫唱婦隨)가 아니었다.

과거를 십여일 앞둔 어느 무더운 여름밤이다. 과거에 몇 번 실패했으나 포기할 수 없는 양가의 유일한 희망이 하립의 양 어깨에 달렸다. ‘당신께 술을 권하오./ 당신께 권하니 당신은 사양 마오./ 유령과 이백이 모두 무덤의 흙 되니/ 한잔 또 한잔 권할 이 뉘리오./ 당신께 술을 권하오/ 당신께 권하니 당신은 더 드시오./ 인생의 즐거움은 얼마나 가랴./ 나 당신을 위해 칼춤을 추려하오./ 당신께 술을 권하오./ 당신께 권하니 당신 실컷 취하오./ 부질없이 상머리의 돈 지키긴 싫소./ 오래오래 눈앞의 술잔 대하고 싶소...‘ 현모양처인 삼의당이 과거보러 한양으로 떠나갈 남편 하립에게 애틋하고 파격적인 밤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박제(剝製)되지 않은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으나 남자의 자존심을 최대한 살려준 술상 머리다. 그리고 질펀한 방사가 동창이 밝을 때까지 끊이지 않았다. 그것이 화촉동방의 기분이 채 가시지 않은 신혼부부다.

여름이라 미끈덕 거리는 신혼부부 욕정은 끊임이 없다. 이제 남편이 훌쩍 한양으로 떠나면 독수공방은 다시 시작된다. 이성이 욕망에 밀려 나갔다. 여인의 욕망은 사내를 배 위에서 밤새 내려놓지 않았다.

한미한 향반 집에 술이 넉넉할 리 없다. 아마도 낙방한 낭군이 낙향하여 다시 공부하며 등과할 때까지 도전을 위해 삼의당은 시아버지 몰래 밀주를 마련했으리라... 권주가(勸酒歌)를 들으며 생전처음 칼춤까지 춘 아내의 가슴 아픈 입신양명의 야망에 물러설 수 없이 또 다시 괴나리봇짐을 지고 동창이 밝자 한양 길에 올라야 한다. 천근만근의 발길이다.

과장(科場 )에 하도 여러 번 나타나 알아보는 이들이 한 두명이 아니다. 하립과 같은 향반의 자제들이 대부분이다. 오늘과 같이 청년실업이 조선말기 때도 비슷하였다. 기존의 세력들이 한번 잡은 밥줄(벼슬)을 놓지 않으려고 학통(學統)으로 모인 사대부들이 이익집단화 되어서다. 소위 사색당파(노론, 소론, 남인, 북인)의 폐해다. 당시 육조거리를 중심으로 괜찮은 벼슬은 이천 여개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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