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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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김삼의당(金三宜堂) <제3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7-08-23 09:36     최종수정 2017-08-23 11:07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시아버지 하경천은 며느리 삼의당을 보고 기쁨이 넘쳤다.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조의제문을 제자 김일손이 사관(史官)으로 사초에 실어 무오사화가 일어나 젊은 나이인 34살에 유명을 달리한 뼈대 있는 집안의 후예에 은근한 자부심이 발동했으리라...

 

하지만 하경천 집안은 너무 가난하다. 체면도 최소한의 호구지책이 유지되어야 가능한 사대부의 현실이다. ‘깊은 규중에서 자라나/ 얌전히 천성을 키운다./ 일찍이 《내칙》편 읽어/ 집안 정사 훤히 알았네./ 어버이에게 효도를 하고/ 지아비에겐 반드시 공경할지니/ 잘하는 것도 잘못도 없이/ 순종으로 정도를 삼을 뿐...’ 하립의 부친은 ‘양반은 죽어도 겻불은 안 쬔다.’는 사고방식에 갇혀있는 전형적 성리학 신봉의 시골 샌님이다.

그런 그가 삼의당의 짐 속에서 위의 시를 보고서는 안심을 하였을 터다. 그의 시는 어쩌면 삼의당의 고도의 위장술이었을지도 모른다. 삼의당은 하립과 결혼하기 이전부터 누군가와 결혼을 하면 그를 통하여 입신양명의 야망을 조심스럽게 키워왔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한마을에서 한날한시에 태어나 사주까지 같은 하립과 결혼하여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되어 입신양명의 목표를 세운 야심찬 새색시가 되었다.

하경천은 무오사화의 주인공 김일손의 후예라는 지체 높은 집안의 겉모습만 보았지 삼의당의 깊고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경천동지할 야심(등과)은 미처 알아보지 못한 시아버지였다.

여자가 잘 들어와야 집안이 번성한다 했으니 경천은 며느리를 잘 맞아들였다. 문제는 아들 하립이다. 사내들은 장가를 들면 신부 곁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하립도 예외가 아니다. 예쁘고 고운데 시문(詩文)까지 뛰어난 색시 곁을 한시인들 떠나고 싶은 사내가 있을까? 행여 그런 사내가 있다면 오히려 어딘가 모자라는 축에 들어갈 것이라고 쑥덕거릴 것이 뻔하다.

아무튼 삼의당과 하립은 동창이 밝을 때까지 뜨거운 살을 섞어도 거뜬히 일어나 주경야독할 열정이 넘치는 건강한 남녀다. 그래서 삼의당은 처녀시절에 꿈꿔왔었던 야망을 남편 하립을 통해 실현하려는 속내다.

그래서 그녀는 어쩌다 산사에 있던 남편이 연락도 없이 집에 불쑥 나타나면 때론 즉석에서 되돌려 보내기도 하였다. 꿀맛 같았던 화촉동방의 운우지락의 환상을 못 버리면 과거 준비에 차질이 생길까 염려돼서다. 그럴 때면 도끼눈으로 발길을 돌리곤 하였다. 삼의당도 독수공방이 싫다. 빨래터에 가면 동네 아낙들이 놀려대는 소리도 귀가 아프도록 듣는다.

이젠 이골이 날만도 한데 “남편은 언제 어사화를 꽂고 온답디까?”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쓰리다. 그리고 시간이 가고 세월이 흘러 딸 미혜의 나이가 들어갈수록 남편에 대한 철석같은 믿음이 조금씩 무너져 내려갔다.

하지만 삼의당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꿈이다. 자신의 욕망과 시집의 처지가 한 궤의 것임을 절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남편 하립은 어려서부터 영민하여 온 집안이 과거에 희망을 걸고 있는 아들이다. 큰아주버니 하호는 일찌감치 과거를 포기하고 자영농 길에 들어섰다.

아들 둘이 모두 과거에 매달릴 수 없어 일종의 역할분담이 이루어졌다. 형은 자영농을 하고 동생은 등과하여 옛 영광을 되찾으려는 몸부림에 삼의당이 들어와 본격적으로 과거 분위기로 온 집안이 들어갔다. 삼의당의 어깨에 온 집안 식구의 관심이 쏠려있다. 그 같은 집안의 분위기에 삼의당의 마음은 무겁고 아프다.

남편은 과거를 포기하고 사랑하는 아내 곁에서 농사나 지으며 살고 싶다는 속내를 편지에 털어놓을 때마다 삼의당은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사실 그녀는 초야를 치르면서 인생설계를 말하지 않았던들 남편의 뜻에 따라 삼종지덕의 현모양처 길을 묵묵히 따랐을 게다.

하지만 친정과 시집의 오늘의 현실이 너무나 초라하다. 그 같은 현실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삼의당 처지가 포기할 수 없는 하립의 ‘입심양명’의 꿈이다. ‘밝은 달이 담 머리로 솟아오르니 쟁반도 같고 거울도 같구나./ 방문에 주렴을 내리지 말아야지/ 들어오는 달빛을 가릴까 염려되네./ 같은 달이 두 곳을 비추지만/ 두 사람은 천리나 떨어져 있네./ 바라건대 저 달의 빛을 따라서/ 밤마다 임의 곁을 밝혀 보고 싶어라.’ 《가을밤》이다. (시옮김 허경진)

화촉동방의 뜨거운 열정의 사랑의 향기가 채 증발되기도 전에 삼의당과 하립은 입신양명을 위해 간헐적 별거를 시작하였다. 그들의 식을 줄 모르는 뜨거운 열정이 어떠하였을까? 맨 뒤 시 구절(句節)인 ‘밤마다 임의 곁을 밝혀 보고 싶어라’는 새색시의 초야의 뜨거웠던 몸과 마음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하겠다.

낮에는 밥 짓고 집 안팎 일 하느라 까맣게 잊었던 남편 생각이 독수공방에 들어가면 몸서리쳐지도록 그리울 것이 뻔하다. 하지만 삼의당은 내색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등과를 포기하고 고향에 돌아와 오순도순 손잡고 세상시름 떼어놓고 자영농으로 행복을 찾으려는 남편을 따르고 싶으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향반(鄕班)에서 더 이상 떨어질 신분이 없기도 하지만 친정의 영남학파 비조(鼻祖)격인 김종직의 수제자 집안과 시집의 영의정 하연(河演:1376-1453)의 한없이 퇴락한 양가의 명예를 르네상스 시키는 것을 이제 와서 포기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처지다.

삼의당의 야무진 꿈이자 야망이다. 조선시대에선 사대부만이 가슴을 펴고 살 수 있는 사회다. 사대부는 3대를 계속 벼슬을 못하면 평민이 되어 지배계급이 되려면 등과를 하거나 전쟁 등에서 공을 세워 유공자 등이 돼야 가능한 신분이다.

삼의당과 하립의 집안은 향반이 된지 오래다. 삼의당의 눈물겨운 입신양명운동은 두 집안을 동시에 음지에서 양지로 옮기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명예회복 운동이다. 그 거대한 운동의 선봉에 가녀린 여인이 앞장섰다. 낭랑18세를 갓 넘긴 삼의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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