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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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김삼의당(金三宜堂) <제1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7-08-09 09:36     최종수정 2017-08-09 09:49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전라도 남원의 교룡방 기슭 서봉방의 김씨(김삼의당·金三宜堂:1769~1823)집에 신방이 차려졌다. 1786년 화창한 어느 봄날 뜨거운 방이다. 혼례를 마친 새색시가 새신랑과 마주 앉았다. 화촉동방을 밝히고 합환주(合歡酒)라도 사이에 놓고 마주 앉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아닌 낯익은 얼굴들이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인연을 맺어짐으로써 만나게 되었음을 즐기는 분위기다. 그래서인지 새신랑 하립(1769~1830)은 대뜸 신부에게 시를 건넸다.

‘만나고 보니 둘 다 광한루 신선들/ 오늘은 분명 옛 인연이 이어진 것/ 배필이란 본디 하늘이 정하시는 것/ 세간의 중매들 모두 어지럽게만 구오...’ 수줍어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라 고개조차 들 수 없을 새 신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화답(酬唱·시를 불러주고 받음) 하였다. ‘열여덟 살 신선 열여덟 살 선녀/ 깊은 방 꽃 촛불에 좋은 인연 한해 한달 태어나 한 마을에 사니/ 이 밤 우리 만남이 어찌 우연일까요!’ 이 얼마나 당돌하고 자신에 찬 신부였을까?

사실 그들은 단순히 천생연분으로만 말하면 이도령과 춘향을 뛰어넘는 연분이었을 것이다. 이도령(남원부사 아들)과 춘향(퇴기월매 딸)의 광한루 그네뛰기에서 극적인 조우로 인연이 되어 변학도의 수청을 거부로 죽을 고초를 겪으면서도 정조를 지키는 여인의 정절을 하립과 삼의당은 그들의 얘기를 전해 들었으리라....

그들은 한마을에서 한날한시에 태어나 사주까지 같은 범상치 않은 인연의 남녀다. 이럴 때 쓰라고 ‘천생연분’이란 말이 생겼을 것이다. 그들은 분명 조선팔도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기적 같은 연분으로 오늘 화촉동방의 불을 켰다.

당시 열여덟이면 오늘날 22~23세의 나이는 되었을 청춘남녀다. 아무리 절제된 언행으로 시작되었어도 초야다. 오다가다 힐끗힐끗 보아오기 18년의 세월 속에 그들은 이미 상대방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싹이 터 상당 수준으로 성장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리워하며 보아오기 18년 오매불망 기다렸던 어느 누구도 간섭이 없는 화촉동방이다. 유교가 국교인 조선은 철저한 남녀칠세부동석이며 삼종지덕의 사회다. 그런데 삼의당은 생각이 좀 다르다. 사내가 잘못하면 어찌 여인이 따를 수 있겠느냔 것이다. 남녀 평등의 사고를 가진 규수다.

더욱이 삼의당은 대학자 김일손(金馹孫:1464~1498)의 후예로 시(詩)에도 능통한 재원이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출사하여 한양의 육조거리를 주름잡고 다닐 그녀다. 그러나 벼슬길이 막혀 낙향하여 겨우 처사(處士:초야에 있는 선비) 대접 받기에 급급한 집안형편은 삼의당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이제 결혼을 했으니 남편을 통한 입신양명이다.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수제자 김일손의 후예로서 비록 아녀자 일망정 남편을 통한 그때 영광을 재현하려는 불타는 포부다. 연산군(燕山君)시대에 훈구파의 공격에 사림파의 첫 희생자다.

사초(史草)에 조의제문 사건으로 촉발된 무오사화(戊午士禍)가 그것이다. 삼의당은 먼 선조이나 그의 영민한 생각으로 남편 하립을 통해 재현하고 싶은 속내를 초야에 드러낸 당찬 신부다. ‘책 있어도 모름지기 읽기를 좋아해야지/ 배우지 않으면 사람 노릇 못하네./ 십년 동안 등불 앞에 나그네 되면/조정에 이로운 손님이 되라....’ 삼의당의 《학문을 권하며 읊다》다.

이 얼마나 강렬한 입신양명에 대한 욕구일까? 그러나 그녀는 과거를 볼 수 없는 여자가 아닌가! 아마도 그것이 안타까워 초야에서도 장래에 대한 설계도를 토로 했을 것이다.

하립은 삼의당이 시에 조예가 깊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때문에 첫 수작(酬酌:술을 주고  받음)부터 시였다. “두목(杜牧:803~852)의 ‘평생 오색실 순 임금의 옷을 기어드리려네’라는 싯구가 좋아 늘 외웁니다.” “아니 하필 그런 구절을 좋다하오? 남자라면 모르지만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싯구인데?” 남성의 사회적 성취에 대한 포부를 읊은 것인데 새색시가 제일 즐긴다는 말에 하립은 의외라는 표정이다.

하립은 아직 삼의당의 뜨겁고 장대한 야망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사실 신랑으로선 더욱이 첫날밤이라 부부금슬을 노래하거나 시부모에 대한 효성을 다짐하는 《시경》(詩經) 구절쯤을 예상했던 것이다.

삼의당은 거침이 없다. 그녀는 열다섯 살에 지었다는 《어른이 되는 날》을 줄줄이 외웠다.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데 남녀가 구분이 있을까요? 여자의 도움 없이 역사가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있었던가요?” “사람의 도리로는 효성이 첫째인데 어째서 그것을 제쳐놓고 임금에 대한 충성을 얘기하기에 급급하오?” “입신양명해서 부모님께 현달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효라고 공자께서도 말씀하셨지요.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방법으로 임금한테 충성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까요?” 하립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양가집 모두 한때는 한양 육조거리를 누비며 명문가의 행세를 했었으나 지금은 초야에 묻혀 처사 노릇하기도 버거운 가세다. 그리하여 삼의당은 동갑내기 남편을 통하여 입신양명하여 가문을 다시 일으키려는 야망에 불타고 있다.

한 동네에서 18년이나 살아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하지만 단오명절 등에서 그네뛰기·널뛰기 등에서 귀동냥으로 하립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던 관계로 부부가 됐으니 스스럼없이 평소의 생각을 털어놓는 것이다. 더욱이 한날한시에 태어나 사주까지 같아 자신의 생각을 한 몸처럼 느끼리라 철석같이 믿는 눈치다.

삼의당은 어떠한 일이 닥쳐도 남편을 한양 육조거리를 주름잡는 사대부를 만들겠다는 굳은 내조를 결심하고 스스로 불을 끄고 사내 품에 안겼다. 그들은 밤새 뜨거운 살을 섞느라 동창이 밝아서야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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