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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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황진이(黃眞伊) <제29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7-06-28 09:36     최종수정 2017-06-28 10:29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마음이 답답하고 세상의 갈피가 보이지 않을 때면 진이는 박연폭포를 찾았다. 폭포수 앞에서 노래가 아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 가슴이 조금은 열려지기 때문이다. 한양 살이 3년 동안에 생기가 넘치는 세상을 보고 송도에 들어서자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유몽인(柳夢寅·1559~1623)은 《어우야담》(於于野談)에서 ’진이는 여자들 중에서 뜻이 높고 협기가 있는 자’ 로 평했으며 허균(許筠·1569~1618)은 《성옹지소록》(惺翁識小錄)에서 ‘성품이 활달하여 남자와 같으며 거문고를 잘 타고 노래를 잘 불렀다’고 높이 평가 하였다.

그렇다. 진이는 예쁜 여자로 태어났으나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한혈마를 타고 만주벌판을 질풍노도처럼 달리고 싶어 하는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의 기개를 닮은 여장부다.

그런데 그녀는 고려의 수도가 아닌 조선시대의 송도에서 서녀(庶女)로 태어났으나 사대부집 딸로 출생한 것으로 15년 동안 금지옥엽 호의호식하며 성장하여 신동소리를 들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서녀 신분으로 바뀌어 기생(妓生)의 길로 들어섰다.

숱한 사내들의 품을 통하여 세상살이를 살펴봤으나 진이는 성에 차지 않았다. 사내들은 진이를 정복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녀는 그들을 품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남자 특유의 정복 심리다. 사내는 여자에게 들어오면 죽는다. 정복이 아닌 포로가 되는 신세다.

진이는 숱한 사내들을 품어 봤으나 마음에 들고 존경할 만한 상대를 찾지 못하여 방황하고 있다. 진이는 문득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1489~1546)을 번개처럼 떠올렸다. 화담이라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고 존경의 대상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진이는 어느 때 보다도 곱고 단아하게 차려입었다. 하늘에서 하강한 선녀(仙女)모습이다. 어깨엔 자신의 키 만한 거문고가 메어져있고 손엔 송도 명주인 태상주와 간단한 안주가 들려졌다. 
 화담을 공략하러 가는 길이다. 때마침 비가 추적추적 오고 있다. 진이는 비를 맞으면서도 《대학》(大學)은 젖지 않도록 가슴에 품었다. 제자가 되게 해달라고 호소하러 가는 길이다. 술과 거문고는 자신의 재능을 보여 주려는 속내다.

지체 높은 사대부집에서 천하의 소리꾼과 바람둥이들에게서 세상살이를 체득한 당돌한 계집이다. 진이의 명성은 송도를 넘어 한양은 물론이고 중국의 사신들은 조선에 오면 그녀를 찾아 자고 가는 것을 최고의 예우를 받는 것으로 생각하기까지 하였다. 중국의 사신뿐만이 아니다. 그들을 보내고 영접하는 조선의 관리들도 명월관에 들려 진이를 탐하였다.

화담도 제자들의 얘기를 통하여 진이의 신상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진이가 화담을 뵈러 가겠다고 연통을 넣고 갔으나 집에 있지 않았다. 진이가 화담의 제자가 된다면 홍일점(紅一點)이 되는 것이다.

화담의 문하엔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많다. 행촌 민순, 사암 박순, 초당 허엽, 술한 박민헌, 토정 이지함, 지채 홍인우, 수암 박지화, 연방 이구, 동강 남언경, 죽계 마희경, 이재 차식, 남봉 정지연, 이소재 이중호, 척암 김근공, 사재 장가순 등 그밖에도 많은 인물들이 있다.

이 같은 문하에 진이가 군침을 흘린다. 그녀가 존경하며 사랑하고 싶어질 사내가 행여 생길까 기대를 하는 속내다. 하지만 화담의 문하생이 되는 길이 그렇게 쉽게 열리지 않았다. 당나귀 등에 화담이 즐긴다는 음식과 태상주를 싣고 화담에 도착했을 때는 집안이 텅 비었다.

아름다운 집이다. 진이는 마음속으로 화담선생님의 거처가 선인(仙人)들이 산다는 동리(東籬)인가 싶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송악산 동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오관산 화곡이 그곳이다. 오관산은 산봉우리가 다섯 개 나란히 서 있어 멀리서 보면 왕관처럼 보인다. 기암괴석이 둘러선 화곡에는 봄엔 진달래와 산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 산기슭을 불꽃처럼 물들이고 가을엔 붉은 단풍이 타올라 절경이다.

화곡을 한참 오르면 거대한 바위가 움푹 패어 이루어진 연못 화담(花潭)이 있다. 서경덕은 화담 곁에 초당을 짓고 세속과는 거리를 둔 채 ‘주기론’(主氣論)을 주창하며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이곳에 진이가 오늘 나타났다. ‘붉은 나무 병풍처럼 둘러친 산에 어른거리고/ 푸른 시냇물 거울 같은 웅덩이로 쏟아지네./ 신선세계 가운데 거닐며 시 읊으니/ 갑자기 마음이 맑고 깨끗해짐 느끼네.’ 서경덕의 《대흥동》을 떠올렸을 것이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말끔히 개고 반짝 해까지 났다. 비온 뒤의 날로 청자 빛의 상쾌한 분위기다. 초당 주위엔 여름 꽃들이 만발하였다. 비까지 내려줘 활짝 핀 꽃들이 생기발랄함으로써 화담은 더욱 아름다운 신선들이 산다는 동리로 보였다.

진이는 피곤함도 잊은 채 화담 주위와 초당 곁을 살폈다. 연못엔 이름 모를 고기들이 춤을 추며 노래라도 하는 듯이 즐거워 보였다. 연못 주위엔 나팔꽃과 해란초, 그리고 금낭화와 패랭이꽃까지 다투어 피어 또 다른 꽃의 세상을 만들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며 꽃 그림자들이 화담을 감쌀 때 두런두런 인기척이 났다. 화담 일행이 연못 앞으로 드러났다. 진이는 가슴이 뛰기 시작하였다. 허엽이 다가와 당나귀에 실린 짐을 받아 광에 들여놓고 진이를 화담에게 소개해 주었다.

진이의 얼굴이 활짝 핀 나팔꽃 빛깔로 변하였다. ‘소나무 아래서 동자에게 물었더니/ 스승님은 약초 캐러 가셨어요./ 이 산중에 계시긴 하지만/ 구름이 자욱하여 계신 곳을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하네’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779~843)의 《은자를 찾아 갔으나 만나지 못하다》를 회상한 듯하다.

하지만 진이는 화담을 극적으로 만났다. 진이는 화담을 만난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조선팔도를 누비고 다니며 숱한 남자와 뜨거운 살을 섞으며 사랑을 찾아 봤으나 아직까지 찾지 못하였다. 진이 그녀가 찾아 헤매는 사랑하는 사내는 22살이나 위인 화담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어렵사리 황홀한 기분으로 꿈속에서도 마음대로 못 뵈었던 화담을 극적으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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