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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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황진이(黃眞伊) <제14話>

기사입력 2017-02-28 13:32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밤새도록 사랑놀이를 하고도 진이와 이생은 피곤한 기색 없이 말에 올랐다. 말 등엔 거문고와 점심에 먹을 간단한 음식이 실렸을 뿐이다. 어차피 얻어먹으며 유람생활을 할 것을 이것저것 가지고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묘향산을 출발하여 지리산을 거쳐 금강산으로 들어 갈 생각이다. 그래도 진이의 속주머니엔 외숙부가 건넨 비상금이 있다.

진이는 자신의 몸뚱이를 여행의 무기로 생각하고 있다. 돈이 떨어지면 이 절 저 암자를 찾아 구걸을 하고 그것이 안 되면 몸을 달라면 주려는 속내도 가졌다. 그런 생각까지 하니 무서울 것이 없다. 호위무사로 이생이 있으니 짐승한테 물려 갈 염려도 없으니 진이 마음이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이생은 이생대로 마음이 즐거웠다. 아버지는 포의(布衣:벼슬 없는 선비)로 정암(靜庵:조광조 호)과 의기투합 했었으나 곤궁하여 그를 배신하여 선비로서 자격이 없다하여 15살의 이생이 이름을 버리고 팔도를 유랑하고 있었다.

마침 그때 한양에서 진이와 연락이 닿았던 것이다. 아버지가 정암과 의기투합이 잘 되었다면 출사는 못했어도 높은 학문의 세계에 있었을 게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가 준 이름을 버리고 세월을 낚으며 팔도를 유랑했던 것이다.

이생이 진이를 만난 것은 그야말로 호박이 덩굴째 굴러들어온 것이다. 그토록 조선팔도 사내들이 품에 넣고 싶어 했던 명월을 매일 곁에 두고 밤잠까지 할 수 있으니 횡재 중에서도 상 횡재한 사내가 되었다.

그들은 묘향산 보현사에 다다랐을 때는 어느덧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하늘을 덮은 고목들로 밤 같은 분위기다. 그들은 길 위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으나 허기가 졌다.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주지스님을 찾았다. 진이도 남장차림이다. 이생만이 진이를 여자로 알고 있을 뿐이다.

주지스님은 저녁을 주고 방까지 내주었다. 허기를 채우자 그들은 골아 떨어졌다. 그런데 이생이 문득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코에 선향(仙香)이 들어왔다. 보현사 특이의 향이려니 하고 다시 잠을 청했으나 선향은 점점 더 짙게 느껴졌다.

옆에서 곤히 잠은 진이한테서 꽃향기처럼 피어나는 향기였다. 이생은 처음엔 자신이 진이한테 홀려 느끼는 착각이려니 생각하기도 했으나 진이가 숨을 내쉴 때마다 선향이 자신을 구름처럼 휘어 감았다.

꿈이 아니었다. 창문으로 푸른 달빛이 들어와 진이의 얼굴에 머물러있다. 신선이 누워 있는 것이다. 이생인 진이를 여자로 보고 사내 역할을 하려던 욕망을 접자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묘향산엔 향목·동청(冬靑) 등 향기로운 나무들이 많아 묘향산(妙香山)이라 이름을 붙였는데 이생은 처음엔 그런 향기려니 생각했었는데 방안에 점점 더 향기로운 향이 짙어졌다.

진이가 움직일 때마다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향기로운 향취가 안개처럼 퍼졌다. 진이는 어느새 이생의 품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선 ‘세상 가는 곳 마다 환락의 장소에는/ 음악소리가 호화로운 집 울리지만/ 쓸쓸한 산가(山家)에슨ㄴ 즐길만한 것 없어/ 하늘이 새들 시켜 피리퉁소 불게 하네.’ 원감(園鑑)의 《새벽에 일어나 새소리를 듣고》를 떠올리며 잠꼬대를 하였다.

명월이 이생의 품에서 꿈틀댔다. 첫날의 합방은 얼떨결에 몇 번의 방사를 했으나 태상주 기운에 비몽사몽 상태라 진이의 깊은 맛을 미쳐 느껴보지도 못하였다. 이제 흡족하고 멋지게 즐길 수도 있는 순간이다. 그런데 왠지 명월이 무서워졌다.

둘이 있을 때엔 형 아우로 하고 뭇사람들이 있을 때는 상전과 하인으로 하자 했는데 첫날부터 상전으로 느껴졌다. 여자가 분명한데 젖먹이가 어미를 대하는 심정이다.

진이의 체온이 서서히 옮겨져 오고 있다. 진이의 두 팔이 벌어져 이생을 끌어안았다. 이생의 숨결이 가파르게 올라갔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얼굴이 달아오르는데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진이가 쾌락의 대상이 아닌 예사롭지 않은 경계해야 하는 존재로 느껴져 무서워져서다. 진이는 더욱더 뜨거워진 몸으로 이생을 끌어당겼다.

그때 진이의 입에서 시가 나왔다. ‘기다려도 기다리는 사람 오지 않고/ 스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네./오로지 숲 속에는 새들만 있어/ 지저귀는 소리에 술 생각이 나는구나.’ 이인로(李仁老)의 《천수사 벽에 쓰다》다. 진이는 조선시대에 살고 있으나 고려 여인으로 긍지를 잊지 않고 있다.
 특히 중국의 죽림칠현(竹林七賢)을 벤치마킹한 강좌칠현(江左七賢)을 경모(敬慕)하였다. 칠현 중에서 특히 문장에 뛰어나고 절행(節行)으로 추앙받는 함순(咸淳)을 늘 마음속에 두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작품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역시 강좌칠현의 일원인 이인로의 작품을 진이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암송하였다.

지금 진이가 꿈속에서 함순을 만나고 있으면서 입에서는 이인로의 시가 나왔다. 이생은 진이를 가슴에서 떼어놓고 밖으로 나갔다. 으슥한 밤이다. 산사(山寺)의 깊은 밤은 적막하다 못해 무덤 속 같이 고요하다. 하늘엔 보석을 뿌려 놓은 듯이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닫았으나 진이가 깼다. 이생이 옆에 없자 진이도 밖으로 나왔다. “밤이 깊었소! 잠을 더 자고 일찍 길을 떠납시다.” 말을 남기고 진이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따라 들어오란 말투다. 이생은 잠시 아버지를 떠올렸다. 영웅심에 들떠 정암을 고발하고 순간적으로 들떠있던 아버지가 지어 준 이름을 버리고 비렁뱅이가 된 것에 대한 반추(反芻)다.

이생 아버지의 정암 모함으로 촉발된 기묘사화(己卯士禍)는 숱한 사림파 선비들이 죽거나 벼슬에서 쫓겨났다. 사대부 집안의 체면이 아니다란 신념으로 아버지가 지어 준 이름을 팽개치고 팔도를 유랑하는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대단한 도덕군자도 아닐진대 라고 하는 생각에 이르자 그는 총총히 진이가 다시 들어간 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방으로 들어온 이생은 마음을 굳게 먹고 진이를 뜨겁게 끌어안았다. 진이도 말없이 사내가 하는 대로 몸을 움직여주었다. 명월관에서 첫 방사를 할 때보다 이생은 몸과 마음이 흡족하였다. 몸과 마음을 흡족히 나눈 그들은 산사의 새벽종이 울리기도 전에 총총히 발길 닿는 대로 길을 재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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