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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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황진이(黃眞伊) <제6話>

기사입력 2017-01-04 09:36     최종수정 2017-01-04 11:03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천재는 세상에 쉽게 나오려하지 않았다. 임신 소식을 우서(羽書·서찰)로 황진사에게 알리자 얼굴이 백짓장 같이 질려왔다. 그것도 그럴 것이 장님 기생을 건드려 임신 시켰다는 소문이 퍼지면 아직 출사도 제대로 못하였는데 출세 길이 영영 막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황진사는 오자마자 낙태를 권하였다. 하지만 현학금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황진사는 겁쟁이에다 철부지였다. 현학금은 황진사가 돌아간 후부터 초승달이 뜨면 추렴을 걷고 섬돌에 내려앉아 그리운 님을 생각하며 깊은 상념에 빠지고는 하였다.

그녀의 폭넓은 학문의 세계로 아마도 당(唐)의 이단(李端:743~782)의 《초승달에 절함》을 떠올렸을 가능성이 높다. ‘주렴을 걷도 초승달을 보고는/ 섬돌에 내려 다소곳이 절하나니/ 속삭이는 하소연은 아무도 못 듣는데/ 북쪽 바람이 치마 띠를 휘날린다.’의 분위기와 너무나 흡사하다.

조선에 당나라 시를 그들의 수준만큼 이해하고 쓰는 소위 삼당시인(三唐詩人:백광훈·최경창·이달)을 존경의 시선으로 볼 정도이니 당시 시 문학이 차지하는 문화예술 수준이 어느 정도였다는 것이 짐작이 가능하다고 하겠다. 사실 왕조시대엔 규방(閨房)문화는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으나 상대적으로 기방(妓房)문화는 극소수이지만 힘차게 맥을 이어왔다.

현학금은 보통 기생이 아니었다. 요즘말로 하면 예술가다. 하지만 그녀도 여자였다. 임신을 하고는 엄마가 될 준비에 들어갔다. 황진사와 뼈를 녹인 애틋한 순간에 매몰되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배는 하루가 다르게 불러왔다. 가려야 할 음식을 경계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의남초(宜男草:허리에 차면 아들을 낳는다는 약초)를 허리에 차는 일도 빠뜨리지 않았다.

배는 하루가 다르게 불러오는데 출산할 장소가 문제였다. 하지만 거문고를 타고 노래 부르는 것은 복대를 두르고도 출산 며칠 전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현학금의 옆에는 친정 동생과 이의동생 옥섬이 그림자처럼 있었다. 해산달이 다가오면서 걱정이 현실로 밀려왔다.

출산 며칠 전까지 거문고를 타고 노래를 부른 것은 유수와 아전들에게 뇌물을 써 입을 막으려는 술책이었다. 그렇게 하여 몇 주간의 출산휴가를 얻어 박연폭포를 거슬러 올라 실상암 관음굴로 숨어들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출산을 하려는 의도다. 하지만 아이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사흘 밤낮의 산통을 하면서도 아이는 꼼짝도 하지 않고 양수도 터지지 않을 뿐 아니라 자궁은 오히려 체면을 지키려는 듯이 조개모양 더욱 오그라들었다.

현학금은 파죽음이 되어 갔으며 친정 동생과 이의동생 옥섬을 본인보다 더 앉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이다. 이때도 현학금은 마음속으로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잊지 않았다. 몸은 고달프나 곧 나올 새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출산의 고통으로 인해 잃지 않으려는 치열한 자기 체면이다. ‘미인이 환하고 환하여/ 얼굴이 능소화 같구나./ 운명이지 운명이로다./ 천시(天詩)를 만나 태어났건만/ 아무도 나를 아리땁다 하지 않는구나.’ 조(趙)나라 무령왕의 꿈에서 처녀가 거문고 타는 모습의 장면을 연상한 맹요의 《열녀전》을 애기하는 것일 게다.

비록 지독한 산통으로 정신을 잃을 아찔한 찰나에까지 이르렀으나 중국의 신화 《산해경》의 애기들을 계속 떠 올렸다. 그같이 극락과 연옥을 오가며 뱃속의 아기와 씨름을 하는데 새벽 종소리에 놀란 듯 놀랍게도 지궁이 열리며 툭하고 어미를 떠났다. 박연폭포처럼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리며 세상에 신고를 하였다.

진이의 탄생은 관음굴에서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날 밤 현학금은 아이를 안고 동생을 따라 관가로 가지 않고 집으로 갔다. 그의 집은 사대부 가문은 아니었으나 중인(中人)의 악사집으로 체면을 중시하고 분수를 아는 집안이었다.

고려 때부터 대대로 이어지는 악사(樂士)집안으로 예인(藝人)의 DNA가 전통이다. 현학금이 비록 군왕(郡王)을 잘못만나 비장의 결의로 장님이 되는 비극적인 운명이 되었으나 자존심은 어느 누구보다 강하다. 현학금이 기녀신분이나 사대부 못지 않은 문화예술세계를 가졌으며 그 같은 시가(詩歌)의 재능은 진이한테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황진사는 출산 며칠 후 현학금 앞에 나타났다. 진이를 데려다 조강지처가 낳은 딸로 키우려는 속내다. 진이의 탄생을 본가 동생과 의이동생, 그리고 유수와 몇몇 아전들만 알 뿐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맹인의 딸로 키우려는 것이냐” 내가 네가 원하는 딸 이상으로 데려다 키울 것이다...“ 한량 아진의 아버지 진정성에 현학금도 계속 버티지 못하고 진이를 품에서 내어주었다. 진이는 보쌈 하듯 칠흑 같은 어둠에 황진사 집으로 옮겨졌다. 조강지처 신씨(申氏)품에 안겨 친딸처럼 쑥쑥 컸다.

진이를 황진사에게 넘긴 이튿날 현학금은 거문고를 메고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말만 듣던 금강산을 직접보고 몸소 체험하고 싶은 것이다. 일만 이천 봉 퍌만구암자 골짜기마다 거문고 소리에 맞춰 신명나는 유람을 하려는 속내다.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야 핏덩이를 떼어놓고 떠나는 간장을 녹이는 어미마음이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강산은 아름답고 실로 경이롭다.

진이는 현학금의 생각대로 총명하고 아름답게 성장해 주었다. 배다른 동생 난(蘭)이도 “언니 언니”하며 잘 따랐고 두 살 위 오빠 경(敬)이 역시 배다른 동생 티 안내고 슬기롭게 처신하였다. 누가 봐도 의이 좋은 삼남매다. 황진사와 조강지처 신씨도 그 같이 의이 좋은 삼남매 생활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진이의 행복은 거기까지였다. 키워준 어머니 신씨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진이의 신분이 사대부집 딸에서 서녀로 둔갑되었던 것이다. 맹인 몸에서 출생했으나 범상치 않은 미색(美色)에 영리하기 까지 한 진이에게 천성이 착한 신씨는 배 아파 낳은 자식과 차별 없이 키웠다. 경이와 난이와는 다르게 자고 깨면 아버지 서재에 들어가 책을 읽는 모습에 겉으론 드너내지 않으나 속으론 키운 보람이 있구나 생각하였다.

진이도 철석같이 신씨가 친 엄마로 알고 15년을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소실로 들어가라는 아버지 황진사의 권고를 뿌리치고 집을 나섰다. “아버지 소녀 집을 나가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큰절을 넙죽하고 입던 차림 그대로 집을 나와 기생의 길로 들어갈 결심을 굳혔다. 자유인이 되려하는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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