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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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황진이(黃眞伊) <제5話>

기사입력 2016-12-28 09:36     최종수정 2016-12-28 11:3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동쪽 동인문 밖 물가에서 거문고를 타면 아득히 먼 중국의 장강(長江·揚子江의 본명) 이남에서 흑학들이 떼 지어 날아와 거문고 소리에 맞추어 춤을 주었다. 현악금(玄鶴琴)이 거문고를 타면 학들이 날아와 춤을 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진이의 모친인 진(陳) 현학금의 이름에 대한 유례다.


현학금은 열한 살에 기적(妓籍)에 올라 비파와 가야금을 거쳐 거문고에 빼어난 기량을 보여 열다섯 살에 악사(樂士) 기생으로 자리를 잡았다. 현학금은 이때부터 어디를 가든 자신보다 훨씬 큰 거문고를 가로로 메고 다녔다.

현학금의 열아홉 살 단풍이 풍악산(금강산 가을 山名)에 곱게 물든 가을 어느 날이었다. 1504년 연산군(燕山君:1476~1506)의 집권 10년이 되는 해다. 처음엔 성군의 자질을 보였으나 친어머니(폐비 尹氏)의 참극을 안 후 그는 폭군이 되었다. 국정은 팽개치고 원수 갚기와 계집질로 세월을 보냈다. 홍문관을 없애고 정치 논쟁을 금하기 위해 경연(經筵)을 폐지했다.

조선 불교의 산실인 원각사(圓覺寺)는 장악원(掌樂院)으로 바꾸어 기생들의 교육장으로 바꾸었다. 한양에서 마음에 드는 미녀가 모자라자 전국으로 채홍준체찰사 라는 대신과 채홍준사와 채청사라는 급조된 관리들이 송도에까지 내려왔다.

그때 송도 관아엔 현학금도 있었다. 빼어난 미모의 현학금도 여러 미녀들과 새로 설치된 운평에 갇힌 채 자색을 평가 받았다. 현학금은 뛰어난 절색에 거문고의 기예까지 갖추어 최고 점수인 천과흥청이 되었다. 천과흥청과 지과흥청의 미녀는 대궐에 들어가 임금의 성은을 입는다. 임금의 특명이었으므로 고을의 유수조차 미처 손 쓸 겨를이 없었다.

현학금은 경악하였다. 악사기녀로서 은밀하게 자존심을 지켜왔는데 그 자존심이 일순간에 무너짐을 느꼈다. 곰곰이 생각 끝에 의동생 기생 옥섬에게 비상약을 짓게 하였다. 단호한 현학금의 부탁에 옥섬도 거부 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약을 먹은 현학금은 하룻밤 사이에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으로 변하였다.

채홍준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다. 연산군의 마음에 쏙 드는 미녀를 뽑아오면 특별진급이나 두둑한 상금이 걸려있어 현학금이 딱 마음에 들었는데 그만 낭패가 되었다.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의원을 불러 검사를 해봤으나 장님이 틀림없다는 결론이다. 그들은 현학금의 두 눈을 뒤집어 보기까지 하였다. 채홍준사는 현학금을 체념하고 기적에서 빼내주어 운평에서 나와 집으로 왔다.

현학금은 채홍준사와 채청사들이 한양으로 올라간 후 금강산에 몸을 의탁하였다. 약을 먹고 억지 장님이 되어 이 골짜기 저 골짜기 사찰로 다니며 걸식을 하면서도 거문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그렇게 걸인 악사로 봄엔 금강산, 여름엔 봉래산, 가을엔 풍악산, 겨울엔 개골산 등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며 6년의 세월을 보냈다.

현학금의 거문고 연주는 신기(神技)에 이르렀다. 그녀는 장님 악사로 소문이 퍼져 관아의 연회 때마다 단골로 초대되었다. 현학그이 초대되었다는 연회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모여든 사람들은 현학금의 천상의 거문고 음률에 세상시름을 실어 보내 화병을 앓던 사람이 낫고 무릎이 내려앉은 앉은뱅이는 걸어서 집으로 가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소문은 소문을 낳고 현학금의 거문고 기적은 송도의 일상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이다. “현학금 언니, 집에 있으면 뭐해! 병부교에 나가서 바람이나 쐬지....”현학금은 이웃아가들의 성화에 못 이겨 병부교 빨래터에 나갔다. 그날도 현학금은 천상의 음률로 거문고를 탔다. 고단한 아낙들의 세상시름을 덜어주기 위함이다. 현학금이 비록 앞을 보지 못할 뿐 마음속으로 천상의 음률에 서경덕이 평생 흠모한 송(宋)의 시인 소옹(邵雍·1011~1077)의 《수미음》(首尾吟)의 일부를 실어 보내고 있다.

그녀는 하늘의 침묵을 대변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요부는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시는 요부가 사랑할 수 있을 때/ 이미 마음을 쓸 때는 마음을 쓰고/말을 가하지 않은 곳엔 말을 가한다./ 사물엔 모두 이치가 있는데 나는 무엇인가/ 하늘이 말하지 않으니 사람이 그것을 대신한다./ 자연 조화의 무한한 말을 대신하는 것이니/요부는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그랬다.

현학금은 눈만 보이지 않을 뿐 눈을 뜨고 삼라만상을 보는 이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눈으로 보지 못하는 세상사를 탁월한 감수성의 발달로 범인들의 수준을 뛰어 넘었다. 게다가 천상의 음률을 타는 거문고의 명인에 절세미인이었다.

이때다. 마침 이곳을 지나는 한량이 있었다. 황진사(黃進士)다. 그의 눈에 현학금이 들어왔다. 황진사는 이미 현학금에 대한 소문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송도가 넓다고 하지만 저잣거리에서 나도는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금방 전 송도로 퍼져 나갔다.

병부교(兵部橋) 아래의 빨래터 아낙들의 입방아에 올라오면 그 소문은 바로 송도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현학금의 거문고 소문을 황진사가 모를 리 없다. 아낙들의 성화에 현학금은 천상의 음률을 관아의 연회가 아니면 타지 않는 연주를 하기도 하였다.

오늘도 현학금은 아낙들의 성화에 떠밀려 병부교 빨래터에 나와 거문고를 탔던 것이다. 현학금의 천상의 거문고 음률에 빨려들었다. 청춘남녀가 만나면 서로의 콤플렉스에 빠진다. 황진사화 현학금도 그러했을 것이다.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으라 했으니 그들도 예외 없이 사랑의 만리장성을 쌓았을 게다.

그때 현학금은 사랑의 만리장성을 쌓고 임신하여 조선제일의 여류시인이며 송도삼절(서경덕·박연폭포)의 하나인 황진이(黃眞伊)를 낳는 어머니가 되었다. 그들은 이 시(詩)를 떠올렸을 것이다. ‘가시리 가시리 잇고/ 버리고 가시리 잇고  위 증즐가 태평성대(太平聖代)// 날러든 어이 살라하고/ 버리고 가시리 잇고 위 증즐가 태평성대// 잡사와 두어리 마는/ 선하면 아니 올세라 위 증즐가 태평성대// 설온님 보내옵나니/ 가시는 듯 돌아오소서 위 증즐가 태평성대’ 고려가요 《가시리》다. 황진사와 현학금이 뜨겁게 사랑을 나누고 헤어질 때 《가시리》의 내용과 별 온도차이가 없을 심정이었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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