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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자식의 도리

신재규교수의 'From San Francisco' 우리나라 의료경험기 23

신재규 교수

기사입력 2018-12-03 12:59     최종수정 2018-12-03 13:05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우리나라 의료경험기 23 – 자식의 도리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세 가족은 큰 탁자를 가운데 두고 서로 뻘쭘이 마주 앉아 있었다. 이윽고 간호사로 보이는 분이 방으로 들어 왔다.  

이제 초진 암환자들에게 제공되는 암교육이 시작되는가 보다.’

환자교육에 경험이 많은 듯 한 간호사 덕분에 말없이 앉아 있던 세 가족은 자신들에 대해 소개할 수 있었다한 가족은 50-60대인것 같은 아버지가 대장암 2기 진단을 받았다고 하고, 아들만 참석한 다른 가족은 80대 아버지가 식도암 3기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아무런 치료방법이 없는 말기 췌장암 진단을 받은 어머니에 비해 다른 환자들은 아직은 암과 싸울 수 있는 희망이 있어 보여 매우 부러웠다.

암교육은 암의 완치 가능성을 강조하고 항암치료제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해 개략적인 설명으로만 채워져서, 항암치료를 더 이상 받지 않기로 한 어머니와 우리 가족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기계적으로 똑같은 정보를 모든 환자에게 제공하기 보다는 각기 다른 환자의 상황을 고려한 맞춤형 교육이 아쉬웠다.

설명이 끝나자 간호사가 말했다.  “질문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식도암 3기 아버지를 둔 아들이 물었다.

저희 아버님은 지방의 한 병원에서 식도암 3기 진단을 처음 받았습니다.  병원에서는 암이 많이 진행되어서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는 할 수 있지만 수술은 할 수 없다고 했어요.  알아 보니 삼성서울병원에서는 식도암 3기라도 수술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여기로 아버님을 모셔왔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은 살 만큼 사셨기 때문에 수술은 받기 싫다고 하세요.  하지만, 자식의 도리로서 수술을 해 드리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일까?

완치가 불가능하고 생존기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게 되면 치료를 포기하려는 환자와 무엇이든 해 보려는 환자 보호자 사이의 갈등이 나타날 수 있다.  어머니는 황달을 줄이는 시술을 받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이유는 근본적인 문제인 췌장암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완화치료과의 신동욱 교수의 권유에도 꿈쩍 않으시던 어머니는 아무것도 해 드린 것이 없기 때문에 이 시술만은 꼭 해 드리고 싶었던 동생이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자 마음을 바꾸셨다

네 동생이 울어서 해야 겠어.”  

, 환자 보호자 사이에도 의견이 갈릴 수 있다처음에는 나도 시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그런데, 문헌을 찾아보니 이 시술은 황달로 불편한 증상 (특히, 가려움증)을 줄이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증상이 없으면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특히, 담즙배액관의 경우, 몸밖으로 관을 빼는 것이기 떄문에 감염의 위험이 있었고, 움직일 때마다 배액관의 위치를 조정해야 하는 불편함도 만만치 않았다.

Less is more - 미국 의료현장에서 쓰이는 표현 중 하나다 (저명 의학잡지 JAMA Internal Medicine에도 “Less is More”라는 코너가 있다).  번역하면 적게 하는 것이 더 많이 하는 것이다정도가 될 것 같다지금까지 의료 현장은 환자에게 무언가를 더 해 주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이는 뭔가 더 할수록 환자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물론, 하나라도 의료 행위를 더 할수록 금전적으로 보상을 더 많이 받는 행위별 수가제 – fee for service – 도 그 배경의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검사 하나라도, 수술 하나라도 더 하고 약 하나라도 더 주려고 한다그런데, 여기에서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점은 이런 의료 행위에는 부작용의 위험이 따르며 이로 인해 오히려 환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그래서, “Less is more”는 환자에게 도움이 확실한 것만 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런데, Less is more를 의료 현장에 적용하는 데에 몇 가지 장벽을 넘어야 한다.  가장 큰 장벽 중 하나는 그동안 하나라도 더 하는 것에 익숙한 의료인들이다이는 교육과 연구로 풀어가야 할 부분이다, 하나 큰 장벽은 문화의 차이다내게 가장 기억에 남은 환자 중 하나는 선천성 심장질환으로 20대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의사에게 들었다지만 50대 중반까지 산 환자였다이 환자는 그동안 버텨온 심장이 더 이상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어 호흡곤란 등의 증상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있었다상황이 좋지 않아 의료진은 심장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증진시키지만 심장을 지치게 하여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강심제 (inotrope)로 연명을 시킬지 아니면 이를 포기하고 통증 등 불편한 증상만을 조절하다가 얼마 뒤 죽음을 맞이 하는 “comfort care”로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아침 회진에서 이를 듣던 환자는 조용히 눈물만 흘리고 있던 가족을 옆에 두고 “comfort care”를 선택했다환자가 이 때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I have lived a good life.”  

반면 내게 익숙한 동양문화는 이와는 많이 다르다이는 미국 의료현장에서도 심심치 않게 관찰할 수 있다몇 년전 80대 중반의 동양계 환자가 심장에서 대동맥 사이에 있는 판막 (대동맥판; aortic valve)가 심하게 좁아져서 (협착; stenosis) 입원한 적이 있다당시만 해도 수술만이 유일한 치료법이었는데 환자가 고령에 신부전증 등 여러 합병증을 가지고 있어서 수술 자체에 의한 사망 위험률이 50% 이상이었다수술로 살 수 있는 확률보다 죽을 확률이 더 높았던 것이다하지만, 가족은 의료진의 수술 불가능 판단에 동의하지 않았다수술을 어떻게든 해 보자고 했지만 의료진이 거부하자 다른 병원을 찾아 보겠다며 환자를 퇴원해 데리고 나갔다.

자식의 도리어려운 질문이다어떻게 해서든 부모님을 살리고 싶은 것은 자식의 당연한 심정이다하지만, 현실적으로 치료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무엇보다 부작용이 만만치 않아 본의와는 다르게 부모님이 더 고생할 수 있다어머니의 투병과정에서 난 어머니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을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했다항암치료를 했으면 몇 달 더 사셨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를 선택하지 않으셨던 어머니의 의사를 존중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그러나, 한 가지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어머니에게 혜택은 없이 불편함만 주었던 담즙배액관 시술을 마지막에 동의한 것이었다.

신재규 교수 ▲ 신재규 교수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임상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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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교수님이 쓰시는 글 다 공감은 하는데요
미국과 한국 의료수가와 의료비 본인부담금 생각해 보세요.
비교가 되는지
(2018.12.05 11:07)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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