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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우리나라 의료 경험기 7 – 환자를 고려하지 못하는 의사소통기술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대학 임상약학과 부교수 신재규

기사입력 2018-03-08 08:55     최종수정 2018-05-09 13:59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36>우리나라 의료 경험기 7 – 환자를 고려하지 못하는 의사소통기술

학회참석 때문에 한 주동안 담당의사가 환자를 보지 못해서 그런지 서울대 병원 췌담도암 클리닉은 환자로 붐볐다.  환자 수로 보아 진료예약 시간보다 1시간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았을 텐데 모니터를 보니 고작 약 15분만 지연되고 있었다.  대기실에는 동네병원처럼 바이탈을 측정하고 환자의 상태를 묻는 간호사가 없었다.  대신 담당의사에게 배정된 7번 진료실에 차례가 된 환자를 간호사가 진료실로 들이고 있었다.

오늘은 어머니 치료에서 매우 중요한 날이다.  어머니는 항암제 치료를  더 이상 받지 않겠다고 결심하셨고 우리는 병원을 옮기기로 했기 때문에 의사가 몇 가지 조언을 해 주길 기대했다.  먼저, 어머니는 내가 문헌을 보고 말씀드린 자료에 따라 결심을 하셨기 때문에, 난 오랫동안 췌장암 환자를 치료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항암제 치료의 득과 실에 대한 의사의 조언을 기대했다.  그리고, 췌장암이 진행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합병증들에 대한 대처방법에 대해 듣고 싶었다.  

어머니는 이미 복수가 좀 있었고 암이 진행함에 따라 복수가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집에서 모니터하며 어느 경우에 응급실로 모시고 가야 하는 지 궁금했다.  또, 췌장암이 커지면 담관을 막기 때문에 담즙이 배출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황달이 생기고, 치명적일 수도 있는 담관염이 발생할 수 있다.  일시적인 방편이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치료로는 담관에 스텐트를 삽입하여 뚫어주거나 외부에서 간에 직접 관을 넣어서 담즙을 빼는 방법이 있다.  병원을 옮긴다면 이런 시술을 잘 하는 병원으로 옮기고 싶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조언도 듣고 싶었다. 

의사: “어서 오세요.”

인사는 하는데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같이 온 나와 동생에게는 눈길하나 주지 않았고 앉으라고 하지도 않는다.  환자 보호자이거니 했겠지만 환자가 모르거나 환자를 보충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으니 대화를 부드럽게 이어 가려면 환자보호자가 구체적으로 누군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난 클리닉에서 환자보호자를 처음 보면 항상 이름과 환자와의 관계를 묻는다.  또, 함께 앉아서 같은 높이에서 눈을 마주치고 대화해야 상대방이 좀 더 편하게 느끼기 때문에 의자가 부족하면 난 다른 방에서 의자를 가져온다.

의사: ” 오늘 한 혈액검사는 괜찮던데 항암제 맞고 좀 어떻셨어요?”

여전히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어머니: “항암제 맞고 속이 불편해서 잘 먹을 수가 없었고 또 힘들었어요.  계속 맞으면 제가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 더 맞지 않으려고요.”

의사: ”항암치료를 받지 않으면 급격히 나빠질텐데.  환자가 싫다면 어쩔 수 없죠.”     
필자 :”’급격히’라 하면 얼마나 빨리를 말씀하시는  거죠?”
의사:”한 3개월?”

“한 3개월?”이라고 대수로운 것이 아니란 듯이 이야기하는 의사의 대답에 나는 분개했다 - 이봐요, 어머니는 몇 주전까지 건강하다고 생각하시던 분이예요.  이런 분에게 당신이 지금 한 말이 얼마나 충격적이겠어요?  말기암 환자를 많이 봐와서 어머니도 그런 환자 중 하나라고 생각했겠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이런 일이 처음이라고요.  또, 환자 가족에게는 단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고요.  그렇다면, 이들을 고려하면서 전해 줘야 할게 아니예요?  환자 손을 잡는 것까지는 기대하지 않더라고 적어도 환자와 눈을 마주치면서, 그렇게 단답식 문제에 대답하듯이 “한 3개월?”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항암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약 3개월 정도밖에 시간이 남은 것 같지 않은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잖아요!  또, 힘들겠지만 항암제 치료를 받으면 기대 수명이 연장되고 암의 진행에 따른 통증도 좀 덜 한 것 같으니 다시 한번 고려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냐고도요! – 이렇게 따지고 싶었지만 어머니를 봐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병원을 옮기려고 한다니 의사는 어차피 항암제 치료를 받지 않을 거면 서울대 병원은 더 이상 올 필요없다고 이야기한다.  병원을 옮기는데 필요한 서류를 만들어 줄 테니 의무과에서 그동안의 차트와 함께 받아 가란다.  그리고는 진통제를 처방해 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집에서 무슨 약을 드시고 계셨는지에 대해서는 물어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내가 위장관 운동 촉진제와 췌장효소제를 함께 처방해 달라고 요구하니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췌장암 진행에 따른 여러 합병증에 대한 대처방법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어서 내가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담도 스텐트 시술도 서울대 병원에서 굳이 할 필요가 없으니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서 하라고 한다.  또, 식사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체중이 줄어야 하는데 오히려 1-2 kg 늘게 되면 복수가 커져서 그럴 수 있으니 체중을 매일 재라고 한다.    

이게 다였다.  그나마 내가 이것 저것 물어봐서 5분이나 걸렸지 비전문가 보호자를 동반했다면 3분이면 끝났을 진료였다.  이런 식의 진료이니 환자가 그렇게 많아도 고작 15분만 지연된 것이었다.  이렇게 짧은 진료시간에다가 환자와의 의사소통기술이 부족하니 많은 환자들이 병상태와 치료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았을 것 같았다. 

진료실 문을 닫고 나왔을 때 동생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어머니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어머니가 희망을 잃을까하는 것이었다. 말기암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완치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은 어머니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환자를 도울 수 있는 부분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통증 조절, 합병증에 따른 증상 완화, 심리 안정 등등.  특히, 어머니는 통증에 대해 크게 두려워 하셨고 마음도 우울해 하셨다.  

그래서, 어머니와 같은 환자를 도와줄 수 있는 완화치료와 전문심리상담사 서비스가 있는 병원들에 대한 정보를 줌으로써 계속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를 기대했었다.  이렇게 계속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은 앞으로 닥쳐올 어려움을 헤쳐 가는 데에 환자와 가족에게 모두 큰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자와의 마지막 만남일 지 모르는 데도 진료가 끝났을 때 잘 가라거나 잘 되기를 바란다는 인사도 하지 않던 의료기술자에게 이런 것을 기대하던 내가 우리나라 의료현실을 너무 몰랐던 것 같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
-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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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문전약국에서 일하다보면 병원에서 몇달에 한번 진료를 받는데 자신이 받는 약물요법에 대한 설명조차 듣지 못하고 오는 경우가 많지요. 정말 안타까운현실입니다. (2018.05.09 19:11)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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