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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혈압약 불순물 사태 뒤돌아보기

정재훈 약사

기사입력 2018-08-08 09:29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지난 7월 초 떠들썩했던 뉴스의 헤드라인을 다시 보자. 중국 원료의약품 제조사인 제지앙 화하이에서 공급한 발사르탄 혈압약 성분에 불순물이 검출되어 유럽의약품청(EMA)이 검토 중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이 성분이 함유된 혈압약을 리콜중이다. 유럽의약품청이 내놓은 보도 자료의 첫머리에 발암물질이란 말은 없다. 식약처에서 낸 보도자료 제목도 비슷하다. “식약처, 불순물 함유 우려 고혈압 치료제 잠정 판매 중지”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아야 하는 매체들의 관점에서 불순물이라는 단어는 수위가 약하다. 최대한 충격적인 표현을 헤드라인으로 끌어내는 게 좋다. 결국 불순물 혈압약이라는 말 대신 ‘발암물질’ 혈압약이 뉴스를 뒤덮었다.

사실 자체는 틀림이 없다. 제지앙화하이의 발표에 따르면 발사르탄 원료의약품 제조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란 불순물이 생성됐다. NDMA는 2A군 발암물질이 맞다. 그런데 막상 유럽 의약청에서 7월 5일 처음 내놓은 보도자료를 보면 환자들에게 “다음번에 처방약을 타러 가면 약이 다른 발사르탄 의약품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캐나다에서는 7월 10일, 미국에서는  7월 13일에 해당 불순물 함유 제품 리콜 조치를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혈압약에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다는 뉴스가 뜬 것치고는 대응이 덜 긴박해 보인다. 이유는 7월 19일 유럽의약품청에서 추가 발표한 내용에서 알 수 있다. 불순물이 발견된 항고혈압약을 복용하더라도 즉각적 위험은 없다는 것이다. 약을 복용 중이던 사람이 갑자기 약을 끊으면 겪게 될 위험이 훨씬 더 크다. 심장 발작이나 뇌졸중을 겪은 뒤에 재발 방지를 위해 약을 복용 중인 사람들이 약을 임의로 중단하는 것은 특히 위험하다. 각국 정부에서 문제의 처방약을 스스로 끊지 말고 우선 병의원이나 약국을 방문하도록 권고한 이유다.  

이번에 검출된 NDMA 자체는 생활상에서 우리가 흔히 접하는 물질이다. 수돗물 염소 소독 과정에서 생성될 수도 있고, 햄, 소시지와 같은 가공육, 염장생선이나 젓갈에도 들어있다. 맥주, 위스키처럼 몰트를 써서 만든 주류에서도 검출되고, 김치에도 들어있다. 음식 속의 알킬아민이 위산과 반응하여 NDMA를 형성하기도 한다. 고농도로 노출되면 발암 위험이 있으나 일상에서 우리가 접하게 되는 NDMA는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적은 양이다. 식품 속 NDMA의 함량이 이미 낮은 수준이지만 더욱 낮게 만들기 위한 저감화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문제가 된 혈압약 원료 속 불순물로 검출된 NDMA의 함량이 얼마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유럽 의약청(EMA)에서 조사 중이다. 대한민국 식약처도 제지앙화하이의 발사르탄에 대해 발암 가능물질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의 검출량과 인체 위해성 여부를 평가·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식약처에 불순물 분석 방법이 없다는 식의 오보가 있었지만 NDMA 성분 분석 방법에 대한 검증(validation)이 필요했을 뿐이다. 식약처는 지난 7월 18일 중앙약사심의위원회를 통해 NDMA 시험방법에 대한 검증을 완료하고 분석에 들어갔다. 그동안 해당 약을 복용한 환자들에게 어떤 영향이 있었는가에 대한 과학적 결론을 내리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까지 보도된 내용을 참고하면, 혈압약 속 NDMA의 양은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NDMA 양에 비해 매우 적은 양일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이번에 발생한 문제에 대해 직접 연구한 결과는 없지만, 발사르탄과 같은 계열의 ARB 혈압약을 복용할 경우 암 위험이 증가하는지에 대한 14만 8334명을 대상으로 한 19건의 연구를 메타 분석한 결과 암 발병률에 위약과 차이가 없었다.

뉴스의 시작으로 돌아가 보자. 유럽의약품청에서 내놓은 헤드라인은 정확했다. 각국 정부에서 문제의 원료를 쓴 혈압약 리콜에 들어간?것은 약에서 발견되지 말아야 할 '불순물이 검출'되었기 때문이다. 실제 들어있는 양이나 그로 인한 위해성의 정도에 관계없이, 들어있어서는 안될 불순물이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있었으니 리콜 조치가 필요하다. 실제 위해성을 크게 우려해서라기보다 장기적으로 불필요한 노출을 막기 위한 예방적 조치이다. 그렇다. 건강 뉴스는 헤드라인만 읽지 말고 본문을 읽어야, 기왕이면 제대로 쓴 기사를 읽어야 유익하다. 사실 모든 뉴스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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