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여섯번째 이야기_약사로 일을 시작하다 ①

기사입력 2007-12-04 17:07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 이선영 (캘리포니아주 약사)

필자인 이선영 약사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제약회사 및 의료기기 수입회사를 거쳐 일선약국에서 근무약사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이 약사는 지난 2005년 미국으로 이주, 현재 LA지역 병원 약사로 재직 중이다.

열흘 남짓 한국에 머무는 동안 토요반에 들러 그간 함께 공부했던 동료들과 가르침을 입었던 선생님들께 인사도 드리고, 또 오랜만에 카피라이터 모임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떠는 짧은 시간도 간신히 가진 후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보니 새로운 PDM이 와 있었다.

리크루터로 일하던 여자라,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3일 정도의 training을 거친 후 6개월이나 고정약사가 없이 비어 있던 문제 많은 스토어에서 floating을 시작했는데, 얼마 후 PDM이, 나보다 2주 정도 늦게 약사면허를 받은 A라는 친구를 이 스토어에 pharmacy manager로 배정하면서 나에게 staff으로 함께 일할 것을 권했다.

집에서 10마일 넘게 떨어진 곳이라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A와는 Rite Aid에서 인턴들에게 제공하는 보드시험강의에도 함께 다녀오는 등 안면이 있기도 했고, 또 영주권을 진행하려면 고정스토어를 정해야 한다는 반강제적 권유에 밀려 그냥 3년짜리 노예문서-흔히 계약서라고 부른다-에 싸인을 했다. (벗겨진 머리 때문에 40대 아저씨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20대 후반인 A는, 중동지역에서 약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와 동부지역에서 MBA를 한 학기쯤 공부하던 중 이곳에서 인턴을 시작하였고, 약사면허를 받고서 pharmacy manager로 경력을 시작한 지 8개월 만에 PDM의 자리를 이어받았는데-일종의 커넥션?-매니저로 나와 함께 일하면서는 항상 자신이 일하는 날에 더 많은 테크니션이 일하도록 스케줄을 잡아서 나를 힘들게 하더니, PDM이 된 지금도 끊임없이 뭔가 트집잡을 이유를 찾으려 애쓰는, 참 독특한 캐릭터의 소유자이다.)

약사로 일을 시작하고 겪은 첫 번째 위기는 라벨링 실수였다. 어린이용 감기약 처방을 QA하면서 겉포장 박스에다가 라벨을 붙여서 내보낸 것을 다음날 애기 엄마랑 할머니가 들고 와서 한바탕 난동을 부렸다.

박스 안의 약병에 다른 사람 라벨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확인해보니 두 달 전에 다른 환자를 위해 fill했다가 2주가 지나도 안 찾아가서 누군가가 다시 shelf에 돌려놓으면서 라벨을 제거하지 않았던 약을 내가 사용한 것이었다.

잘못된 약을 준 것도 아니고, 환자가 약을 먹은 것도 아니고, 라벨에 표기사항이 틀린 것도 아니고, 다만 다른 환자의 정보를 누설했다는 점에서 HIPAA를 위반한 정도가 되었겠으나, 처음 당하는 일이라 심장이 막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었다.

게다가 약병을 손에 꼭 쥐고서 나한테 안 뺏길려고 부들부들 떠는 걸 보니 소송이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라, 일단 매니저한테 얘기하고 온라인으로 misfill 보고서도 작성한 후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으로 약사보험에 가입했다. 만일의 경우에 큰 사고가 발생할 경우 회사에서 단체로 가입해 놓은 보험은 궁극적으로 회사를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지 약사 개인을 끝까지 책임져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 별 일은 없지만 보험은 계속 갱신하고 있다.)

8월이 되자 immunization program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신청하라는 공지가 떴다.

예전에 토요반의 홍 선생님에게서 미국약사들은 일정 교육을 받은 후 예방접종을 실시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언젠가 기회가 오면 꼭 해봐야지 했던 것이어서 공지를 보자마자 얼른 신청했다. Rite Aid에서 APhA와 연계하여 실시하는 이틀간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첫날에는 각각의 vaccine에 대한 디테일을 공부한 후 CDC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의 ‘Pink Book’ 전문도 한 권씩 받았-지만, 하나도 읽어보지는 않았-고, 둘째날에는 exposure control manual 설명과 injection 실습, 그리고 CPR 교육이 있었다. 만일의 경우 환자가 anaphylaxis 반응을 일으키게 되면 곧바로 응급처치와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CPR license가 없이는 immunizing pharmacist certificate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Exposure control manual은 심한 출혈이 있거나 누군가가 바늘에 찔리는 등의 ‘exposure’가 발생할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단계별로 적어놓은 것으로, 당연한 상식 같은 얘기들 뿐이지만 막상 실제상황이 발생하면 당황하여 아무 생각이 안 나게 되는 경우를 위한 행동 지침이라고 했다.

또 두 사람씩 짝을 지어 IM과 SC를 서로서로 놓아보는 실습도 했는데, 이틀간의 교육 중에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 해 겨울, 2005-2006 flu season이 되어 첫 환자로 점잖은 노부인을 만나게 되었다. 겨우 두어 대를, 그것도 3개월 전에 실습해본 것이 전부였지만 겉으로는 태연을 가장하고서 최초의 한 방을 찔렀는데 뜻밖에도 하나도 안 아프다며 너무 고맙다고 하는 것이었다.

첫 환자를 성공하고 나자 갑자기 자신감이 생겨 나머지 환자들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다. 2006년 여름에 certificate 갱신을 위한 교육을 하루 받았는데, A가 PDM이 되어 약국을 떠난 후 새로 온 약국 매니저는 immunization에 참여하지 않는 약사였으므로 2006-2007년 시즌에는 내가 exposure control manager로 각종 기록들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지난 시즌과는 달리 flu clinic 날짜를 특별히 정하지 않고 walk-in basis로, 마치 일반 처방전을 접수하고 조제하듯 환자를 받았다.

그런데 별도의 홍보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입소문을 타고 환자들이 꾸준히 찾아와, 거의 200명에 가까운 환자들이 flu shot을 맞았다.

함께 교육받은 다른 사람들은 인근 타 도시에 소재한 약국에서 일하는 약사들이어서 이 지역을 담당할 사람은 나밖에 없었으므로, 도시의 북쪽 외곽지역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멀리 남쪽에서부터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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