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세번째 이야기_행복했던 인턴시절 ①

기사입력 2007-10-24 11:35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 이선영 (캘리포니아주 약사)

필자인 이선영 약사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제약회사 및 의료기기 수입회사를 거쳐 일선약국에서 근무약사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이 약사는 지난 2005년 미국으로 이주, 현재 LA지역 병원 약사로 재직 중이다.

내가 배정받은 곳은 극심히 바쁘지도, 너무 한가하지도 않은 평균적인 규모의 Rite Aid로, 60대 초반의 마음씨 좋은 흑인 할아버지 약사가 졸업한 지 이삼 년 정도 된 베트남계 여자 약사와 함께 일하고 있었다.

풀타임 테크니션 두 명에 풀타임 캐쉬어가 한 명 있었는데, 이 캐쉬어 친구는 토요일이면 텍으로 일하기도 하고, 출산휴가 갔던 또 다른 텍이 돌아오고 나면 약국 바깥에서 프론트 캐쉬어로도 일해야 주당 40시간을 채울 수 있다는 그런 스케줄이었다.

텍들도 다 좋고, 특히 이 할아버지 약사가 이 지역 전체에서도 농담 잘하고 사람 좋기로 소문난 사람이어서 함께 일하는 시간이 항상 즐거웠지만, 그 여자 약사는 몇몇 지점을 전전하다 간신히 이곳에 발붙이게 된, 성깔 있기로 소문난 친구로, 남자친구와 싸우고 오는 날이면 꼭 텍들과 나에게 짜증을 부리고 조금만 실수를 해도 마구 닥달을 하는 통에 그 친구와 일하는 날이면 다들 신경이 곤두서곤 했다.

또 뉴욕에서 약대를 나오는 등 긴 미국생활을 거쳤다는데도 여전히 알아듣기 힘든 발음을 잘 유지(!)하고 있어서, 일부는 알아듣고 나머지는 대충 알아서 듣느라 고생이 막심했다 (첨엔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들 그러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 겪은 10년의 사회생활이 어디로 가지는 않았는지 대개의 경우는 그러려니 받아주며 넘어갔는데, 한번은 다른 지점의 약사와 통화를 하면서 대놓고 나를 우습게 만드는 막말을 하는 바람에 그 동안 쌓였던 것이 함께 터지면서 그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등 뒤에서는 험담을 하더라도 얼굴을 맞대고 있는 동안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이곳 사람들의 습성을 생각하면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 했지만, 아무튼 그러고 난 이후 그 친구도 조심하는 태도로 변했고, 다른 사람들은 너도 말대꾸할 줄 알았었냐고 재미있어하는 분위기여서 별 탈 없이 넘어갔다.

인턴 급여는 한국에서 약사로 받던 것과 비슷한 정도였는데, 그걸로 아파트 렌탈비와 각종 요금, 식비를 쓰고 나면 항상 빠듯해서 Checking account에 마이너스를 내지 않으려면 늘 긴장하고 살아야 했다.

한국의 마이너스 통장과 달리 이곳 은행들은 실적에 따라 설정해 놓은 마이너스 한도 내에서 은행이 대신 지불해 준 다음 매번 발생하는 거래마다 수수료를 매기기 때문에, 한번은 개인수표를 써줬던 것이 결제되면서 마이너스가 나기 시작한 것을 모르고 직불 카드로 10달러 미만의 간단한 쇼핑을 두 건 더 했다가 수수료로 60달러가 나온 적이 있었다.

거래 순서를 생각하기에 따라 두 번이 될 수도 있는 경우여서 이메일로 사정했더니 20달러를 깎아줘서 40달러로 끝나긴 했지만 정말 뼈아픈 경험이었다.
 
처음 일을 시작한 2004년 6월 당시에는 컴퓨터 시스템이 유닉스로, 한국의 인터넷 초창기 도스 시절을 연상시키는 새까만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 들곤 했는데, 어차피 처음에야 처방전 입력보다는 캐쉬어 일이나 전화 받기를 더 많이 하고 있었으므로 컴퓨터로는 검색에 필요한 간단한 명령어들이나 아는 수준이었다가, 화요일마다 LA에서 진행되는 모리스코디 강의에 가기 위해 화요일 대신 토요일 근무를 시작한 후로 내 손에 컴퓨터가 돌아오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까만 화면과도 웬만큼 친근한 사이가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텍들에게 물어볼 일은 많았다. 그런데 8월이 되자 시스템이 윈도우즈로 업그레이드 되었고, 이때부터 대세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인터넷 강국 한국에서는 넷맹 축에 속하는 나였으나, 마우스라는 걸 잡아본 적도 없고 시스템이 다운되었을 때 ctrl+alt+dlt를 눌러 재부팅하는 것조차 신기해하는 친구들을 상대로는 당연히 가르치는 입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공식적인 교육시간에 배운 것 말고도 혼자서 이것저것 클릭하다 발견한 기능들까지 더해, 이제 시스템 운용에 관한 한 전문가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전화처방 받는 업무는, 일 시작한 지 3일째와 4일째 되는 날 받은 한 건씩을 제외하면 한 달쯤 지나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약사법 상으로 인턴은, 약사가 약국 내에 있는 한 QA를 제외한 약사의 모든 업무를 다 할 수 있고, 전화처방이 전체 새 처방의 1/3 이상을 차지하므로 인턴이 전화처방을 받기 시작하면 약사는 업무량이 훨씬 줄어들게 된다. 물론 약사가 약국을 비우면 테크니션의 역할밖에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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