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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원료의약품의 보호지정 성과와 뒷이야기

'나의 공직생활 35년을 뒤돌아 보며' 이창기 전 보사부 약정국장

편집부

기사입력 2018-04-05 09:00     최종수정 2018-04-13 16:36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메벤다졸 에탐부톨의 보호대상의약품지정과 수용업체


의약품은 정부가 수입을 개방한 80년대까지 국내에서 생산되는 품목에 대하여 수입을 금지하여 보호해주고 있었다. 수입이 금지된 국산의약품은 대부분 완제의약품이었고 이 완제의약품은 제약선진국에서 개발한 원료의약품을 비싼 값으로 수입하여 국내에서 생산되고 있었으나 원료의약품은 기술과 자본이 부족하여 개발생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원료의약품의 국산화가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선결과제였다. 

내가 1974년 약무과장 자리에 있을 때 우리나라 제약산업수준은 외국에서 원료의약품을 들여다 제제화하는 과정에 불과하였다. 90%이상의 원료의약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서 조속히 원료의약품을 국산화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외화도 절감하고 제약산업을 발전시키는 길이라 생각되었다. 당시 우리나라 제약실정은 원료의약품을 개발생산하기 위한 막대한 연구개발비와 시설투자를 하기 어려운 여건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원료의약품의 국산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위험부담을 보상해주는 시책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국내에서 최초로 원료의약품을 생산공급하는 업소에 대한 보호제도를 시행하게 된 것이다. 이 보호시책은 수입을 금지하고 국내 타 업소의 제조허가를 일정기간 제한하는 것이다. 앞에서와 같이 국산의약품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는 이미 시행해오고 있었으나 국내시장에서의 경쟁으로 인한 위험부담에 대한 보호조치가 동시에 이루어저야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와 같은 시책을 수행하기 위하여 약사법 특례조항에 국내에서 최초로 제조공급되는 원료의약품에 대하여 일정기간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있었으나 이때까지 시행되지 않고 있었다.   

1983년경 을지연습기간 중에 김정례 보사부장관을 모시고 유한양행의 전시 등 비상시 응급치료제의 제조, 비축, 공급에 대한 대비상항을 참관하였다 (앞줄 왼쪽에서 3번째 김정례 장관, 앞줄 오른쪽에서 3번째 박춘거 유한양행 사장, 오른쪽에서 2번째 박영주 공장장, 왼쪽에서 2번째 필자)▲ 1983년경 을지연습기간 중에 김정례 보사부장관을 모시고 유한양행의 전시 등 비상시 응급치료제의 제조, 비축, 공급에 대한 대비상항을 참관하였다 (앞줄 왼쪽에서 3번째 김정례 장관, 앞줄 오른쪽에서 3번째 박춘거 유한양행 사장, 오른쪽에서 2번째 박영주 공장장, 왼쪽에서 2번째 필자)

나는 이 규정에 따라 국내 최초로 제조공급되는 원료의약품에 대하여 보호제도를 시행하였고, 1975년 최초로 보호대상의약품으로 동명산업의 항생제 카나마이신과 신풍제약의 구충제 메벤다졸을 보호대상 의약품으로 지정하였다. 이 메벤다졸은 신풍제약이 카이스트 이충섭 박사팀과 연구용역을 체결하여 개발하였고 오리지널 제약회사인 얀센보다 2년 뒤에 개발하여 제조방법특허를 취득하였으며 기초물질로부터 합성하여 기술, 품질, 개발성과, 파급효과 등 보호대상의약품의 지정요건을 모두 갖춘 품목이었다. 보호대상 원료의약품으로 지정받은 메벤다졸 원료의약품의 공급자인 신풍제약에 대한 얘기는 1997년 약업신문에 기고하여 이미 소개한 바 있으므로 간략하게 기술하고 공급을 받는 입장인 유한양행의 수용과정에서 보고 느낀 바가 많아서 이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자 한다. 

신풍제약은 기생충감염이 만연하여 전국민이 매년 1~2회씩 구충제를 복용하던 시기에 구충효과가 탁월한 메벤다졸을 국산화하여 저렴한 값으로 공급함으로써 기생충박멸사업에 기여하였을 뿐 아니라 원료의약품의 수입으로 인한 외화를 절감하는 한편 국내원료국산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신풍제약은 크게 신장하면서 자본과 기술을 축적하여 후일 말라리아 해열제 신약인 피라맥스의 개발에 성공하는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나는 평소 이와 같은 과정이 제약업체가 신약개발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 왔다. 

신풍제약이 메벤다졸을 국산화하기 전까지는 유한양행에서 메벤다졸의 오리지널회사인 얀센에서 원료의약품을 수입하여 버막스라는 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하고 있었다. 유한양행은 정부가 기생충박멸사업을 벌이고 있을 때 군부대와 학교 등에 집단투약할 구충제를 납품하는 등 전국민에게 투약할 의약품을 제조공급하여 구충제시장을 독점하고 있었는데 메벤다졸 원료의약품의 보호조치로 수입이 금지됨에 따라 신풍제약에서 메벤다졸 원료의약품을 공급받아 완제의약품을 제조하여 판매하게 되었다. 이 원료의약품은 보호지정하면서 품질이 우수하고 국제시세 이하의 가격으로 공급하도록 부관부 보호지정을 하여 공급업소가 이를 이행하였지만 원료의약품을 공급받는 유한양행에서는 이 보호제도에 대한 정부시책에 적극 순응하였다. 

다음으로 다른 수입금지품목의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다. 내가 약무과장에서 약품수급담당관으로 자리를 옮겨 일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한독약품이 카이스트 채영복 박사팀과 연구개발용역을 체결하여 에탐부톨의 원료의약품을 개발생산하게 되었고 이어 수입금지 요청을 함에 따라 이 품목을 금수조치하게 되었다. 마침 유한양행이 이 에탐부톨제제도 원료의약품을 외국에서 수입하여 생산공급하고 있었다. 당시 결핵환자가 많아 정부가 결핵퇴치사업을 벌이고 있을 때 유한양행은 결핵치료제 전문제조업체로 초기부터 파스칼슘을 생산공급하기 시작하여 모든 결핵약을 제조공급하고 있었고 2차 항결핵제인 에탐부톨이 개발된 이후 이 의약품을 제조공급하던 시기이었다. 

유한양행은 에탐부톨 원료의약품이 수입금지됨에 따라 한독약품이 제조공급하는 원료의약품을 공급받아 이 제품을 제조판매하게 되었는데 몇 차례 원료의약품을 공급받은 후 한독약품의 원료의약품 제조시설에 문제가 생겨 생산이 중단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때 유한양행에서 이 업무를 담당하던 연만희 차장(후일 사장, 회장, 유한재단이사장 등 역임 현 유한양행 고문)이 찾아와서 이 사실을 알리고 이 의약품의 제조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원료의약품을 수입하여달라고 요청하였다. 이 에탐부톨은 수입금지할 때 생산공급에 차질이 발생하면 수입할 수 있다는 조건을 붙였기 때문에 한독약품에 확인을 한 후 즉시 필요한 양을 수입하도록 조치하였다. 

유한양행은 앞에서 얘기한 구충제 메벤다졸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었고 항결핵제 에탐부톨시장은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었는데도 메벤다졸과 에탐부톨의 금수조치에 대하여 일체의 요구사항이 없었다. 국산품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시책에 적극 순응하고 협조한 것이다. 국제시장에서 수입되는 의약품 가격은 수입국에서 그 품목이 생산될 경우 의례히 가격을 내리게 되어있어 이에 대한 상담이 오갔을 법 한데도 공급가격에 대하여 건의한 바도 없었다. 듣던 대로 모범을 보이는 기업이었다. 애국자인 창업자 유일한 박사의 유지를 계승하여 나라를 위하고 국민보건을 위한 일이면 정부시책을 그대로 받아드리는 기업이라고 생각되었다. 

사돈이 논을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다. 보호대상원료의약품 지정을 두고 시샘하고 질투하는 회사도 있었을 텐데 회사 이익보다 국익을 위하는 유한양행과 같은 회사들이 있었기에 이 원료의약품의 보호조치도 큰 성과를 거두어 이 제도시행 이후인 70년대 후반부터 원료의약품의 국산화율이 크게 신장되었다고 판단되어 나 스스로도 나라 위해 일한 보람을 느꼈다.

리팜피신의 보호대상의약품지정과 외국경쟁사의 탄원

종근당은 국내 제약산업이 외국의 원료의약품에 의존하여 완제의약품을 제조하던 60년대에 국내최대의 원료의약품 합성공장을 설립하여 1965년에 항생제 클로람페니콜을 생산하였고 1968년에 국내 최초로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아 미국, 일본에 수출하여 한국 의약품수출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뒤이어 1974년에 국내 최대의 발효공장을 준공하고 1980년에 세계 4번째로 리팜피신을 개발하여 보사부의 품목(리팜피신캅셀 300mg) 제조허가를 받았고 리팜피신의 원료의약품과 완제의약품의 수입이 금지되었다. 그후 1982년에 리팜피신캅셀(450mg, 600mg)의 제조허가를 신청하면서 보호대상원료의약품지정신청을 하였고, 심사결과 개발성과, 기술성, 파급효과 등이 보호대상의약품지정요건에 적합하여 리팜피신 원료의약품을 보호대상의약품으로 지정하게 되었다. 

종근당은  결핵, 임질 등의 감염률이 높았던 시기에 리팜피신을 개발생산하여 저렴한 값으로 공급함으로써 결핵퇴치와 성병퇴치에도 크게 기여했다, 당시 원료의약품 수입량이 1위이었던 리팜피신 원료의약품을 국산화함으로써 외화절감에도 기여하였으며 1980년 테트라사이클린, 옥시테트라사이클린에 이어 1985년 미국 FDA 승인을 받아 미국, 동남아에 수출하기도 하였다. 종근당은 이와 같이 60년대부터 국내 수요가 가장 큰 항생제 원료의약품을 개발하여 국내 원료의약품국산화를 선도하였다. 

종근당 발효시설(종근당 자료제공). 종근당은 1974년 국내 최대의 발효공장을 준공하고 1980년에 세계4번째로 리팜피신을 개발하였다. ▲ 종근당 발효시설(종근당 자료제공). 종근당은 1974년 국내 최대의 발효공장을 준공하고 1980년에 세계4번째로 리팜피신을 개발하였다.

그런데 1982년경에 예상치 않았던 탄원서가 접수되었다. 이 사건은 당시 언론에도 보도되어 알려진 사실이므로 탄원서를 제출한 기업체 이름을 밝히고자 한다. 미국의 다우케미칼사가 제출한 탄원서의 내용은 종근당의 리팜피신 제조방법이 그 회사의 제조방법특허를 침해한 것으로 제조허가와 보호를 받을 수 없음에도 보사부장관과 약정국장이 직권을 남용하여 제조허가와 보호조치를 하였으므로 이를 취소하라는 요지이었다. 이 탄원서는 청와대에 접수된 서류로 외자도입과 관련하여 외자철수 문제까지 제기한 것이어서 청와대 경제수석으로부터 보사부장관의 의견을 타진하였다고 한다. 마침 이 무렵 정부의 수입개방방침에 따라 의약품의 수입개방 압력을 받고 있었고 경제부서에서는 시장규모가 작은 의약품 시장부터 개방하라고 주문하고 있을 때이었다. 이 탄원사항에 대하여 보사부로서는 제조허가와 보호지정에 법적하자가 없으므로 따로 조치할 일이 없었고 특허침해사항에 대하여는 보사부가 처리할 사안이 아니었다. 

이 특허침해 사안에 대하여는 다우케미칼사가 종근당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하였고 그 결과는 다우케미칼사가 패소하였다. 재판부는 다우케미칼사의 고유한 비밀기술(know-how)이 유출돼 이를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특허등록되지 않았을 경우 보호받을 수 없고 산업정보 입수행위도 부정하게 빼내지 않았다면 위법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1983년 4월 22일 중앙일보 기사, 종근당자료제공) 이 탄원에 대하여 천명기 보사부장관은 정치인 출신인데도 행정부 장관답게 이 건에 대하여 보사부가 법상 책임질 일은 없다고 잘라 말씀하였다. 참모들은 이런 장관을 모실 때 마음이 편하고 소신껏 일할 의욕이 생기는 것이다. 

1985.1.22일 KBS 9시뉴스에서 녹십자제약이 세계에서 3번째로 B형 간염예방백신을 개발 국산화하여 저렴한 값으로 공급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필자.▲ 1985.1.22일 KBS 9시뉴스에서 녹십자제약이 세계에서 3번째로 B형 간염예방백신을 개발 국산화하여 저렴한 값으로 공급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필자.
이 밖에도 B형간염예방백신원액 등을 보호대상원료의약품으로 지정하였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1997.6.9일자 약업신문에 게재하였으므로 생략하고자 한다.  정부가 80년대까지 국산품을 보호하기 위하여 외국산 의약품 등의 수입을 금지해온 것은 시장을 개방할 때까지 국산의약품의 국제경제력을 갖추게 하기 위하여 불가피한 조치이었다. 원료의약품 보호시책도 마찬가지로 시장경쟁의 원리에 반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으나 이 시기엔 원료의약품의 국산화를 촉진시켜 국산화율을 높임으로써 국산의약품의 국제경쟁력을 제고시키기 위하여 절실한 조치이었고 이 제도시행으로 파급효과가 커서 80년대 후반에는 시장점유율이 큰 품목의 원료의약품은 대부분 국산화된 것으로 평가되었다.  여기에 의약품 등의 단계적 수입개방예시제(1997년 약업신문 게재) 실시로 의약품의 수입개방을 80년대  후반까지 늦추게 하여 제약업계가 수입개방에 대처할 수 있도록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보람을 느낀다.

<필자소개>
이창기박사▲ 이창기박사
 이창기 박사는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후 원광대학교에서 약학박사학위와 미국지구환경대학원(EEU)에서 명예환경과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보건사회부 국립화학연구소 연구원으로 공직에 입문한 후 내무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화공기사, 연구관. 국립보건원 마약시험과장, 분석4과장. 보건사회부 약정국 마약과장, 약무과장, 약품수급담당관, 국립의료원 약제과장, 약정국장, 약무식품국장을 역임했다. 
 이후 국립보건원 안전성 연구부장, 국립보건안전연구원장(초대), 국립환경연구원장(현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을 거쳐 환경관리공단 이사장과 중앙약사심의위원,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상근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 박사는 서울대 연세대 충북대에서 강단에 서기도 했으며 현재는 한국환경한림원 회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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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사님, 후학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높은 뜻에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세요~~ 문동철 드림 (2018.04.06 17:13)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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