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경 교수의 '야생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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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야고(Aeginetia indica)

덕성여자대학교 약학대학 명예교수/한국사진작가협회회원 권 순 경

기사입력 2019-04-30 09:38     최종수정 2019-04-30 17:07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덕성여자대학교 약학대학 명예교수/한국사진작가협회회원 권 순 경▲ 덕성여자대학교 약학대학 명예교수/한국사진작가협회회원 권 순 경
억새밭에 자라는 한해살이식물로 야고라는 식물명을 가진 기생식물이 있다. 제주도 억새밭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식물 전공자나 식물에 각별한 관심을 두는 극히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알려져 있었다.

야고는 열당과에 속하며 크기가 10~15센티미터 정도 높이의 작은 식물로 잎도 없고 뿌리도 없으며 비늘 같은 갈색 조각 몇 개가 억새 뿌리에 부착된 극히 단순하고 원시적인 기생식물이다. 엽록소가 없어서 광합성을 할 수 없고 필요한 영양분은 전적으로 숙주식물인 억새에 의존한다.

억새가 피기 시작하는 9~10월경에 지상 위로 갈색 꽃줄기가 자라나오면서 꽃줄기 끝에 원통 모양의 연한 홍자색 꽃이 한 송이씩 피는데 꽃송이가 옆을 향하고 있어 기역 자 모양을 하고 있다. 기역 자 모양의 꽃과 꽃자루가 옛날 할아버지들이 피던 곰방대와 흡사한 면도 있어서 담배더부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꽃이 핀 상태에서도 보통 억새 숲으로 가려져 있어서 일부로 숲을 헤집고 숲속을 들여다보지 않는 한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꽃받침은 배 모양으로 한쪽이 갈라지고 꽃잎은 통 모양으로 가장자리가 5갈래로 얕게 갈라지며 다소 입술 모양을 하고 있다. 수술과 암술은 잎 속에 들어있어서 보이지 않으며 암술머리는 둥근 공 모양이고 수술은 4개이고 그중 2개는 길고 2개는 짧다(2강웅예).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 인가요’라는 노래가사에도 등장하는 ’으악새‘가 바로 억새이며 가을 단풍과 더불어 가을 풍광에서 빼놓을 수 없다. 전국의 억새가 많이 피는 곳을 찾아 억새 풍광을 구경하러 일부러 먼 곳까지 찾아가는 등산객도 적지 않다.


서울 근교에는 억새를 많이 심어 놓은 하늘공원이 있어서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어 다행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어느 날 하늘공원 억새밭에 야고가 나타나서 하늘공원은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제주도에만 있고 육지에는 없는 것으로 알려진 야고가 어떻게 하늘공원 억새밭에서 자랄 수 있게 된 것일까. 본래 하늘공원은 난지도 쓰레기더미를 흙으로 덮어서 인공적으로 조성된 공원이다.

각종 꽃과 나무를 심어 가꾸고 특히 정상에는 억새밭을 조성해 놓아서 가을이면 억새꽃이 만발하여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탈바꿈하게 되었고 매년 가을마다 억새 축제를 통해서 시민들의 사랑받는 장소로 변모했다.

하늘공원에 옮겨 심은 억새는 전국에서 수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 제주도산 억새에 야고가 같이 따라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은 야고를 구경하러 일부러 제주도까지 가지 않아도 되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늘공원의 과거는 아름답지 못하다. 공원으로 탈바꿈한 난지도는 서울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 집하장으로 파리 떼와 악취가 진동하던 버림받은 땅이었다. 일자리를 얻지 못해 생계가 어려웠던 사람들에게는 그나마 생계수단을 제공하는 축복의 장소일 수도 있었다.

폐지나 고철, 빈 병 같은 것들을 골라 재활용수집상에 팔아 생계를 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공원은 도시 중심을 관통하는 깨끗한 하천으로 변모한 청계천과 더불어 세계가 주목하는 생태계 복원의 성공적인 사례로 전 세계에서 많은 관계자가 벤치마킹하러 방문하는 곳이 되었다.

야고라는 식물명은 중국의 식물명을 따른 것인데 야고(野菰)라는 한자명의 뜻은 ‘들판에 자라는 줄풀’이라는 뜻으로 줄풀은 화본과(벼과) 식물이어서 분류학적으로 야고와는 무관하다. 줄풀의 열매는 고미(菰米)라 하며 야생 쌀(wild rice)로서 식용할 수 있다.

가을에 채취하여 건조한 것의 생약명도 야고라고 부르며 청혈, 해독, 인후통, 요로감염, 골수염 등에 처방한다. 염증이 생긴 부위에 식물을 생으로 찧어 바르기도 한다. 알려진 성분으로 히드록시베다요논배당체(hydroxy-β-ionone glucoside), 에기네토사이드(aeginetoside) 그리고 이소어쿠빈(isoaucubin)이 있으며 최근에 항암효과가 밝혀지면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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