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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 깜깜함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기사입력 2020-02-26 10:06     최종수정 2020-02-26 16:17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요즘 서울의 밤은 너무 밝다. 최근 LED등이 보급되면서 불야성(不夜城)이 될 정도로 밤이 밝아졌다. 주택가도 예외가 아니다. 한밤 중에도 별이 안 보이고 전등을 꺼도 방안이 보일 정도로 밖이 밝다. 빛이 너무 흔해졌다는 느낌이다.

가끔 손주들에게 ‘내가 어렸을 때는 별이 쏟아질 정도로 밤이 깜깜했었단다’ 라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그러나 요즘 애들은 어른들이 “나 때는 말이야” 라고 말할라치면, “Latte is a horse요?” 라고 한단다. 이 유행어는 ‘나 때’를 Latte로, ‘말’을 horse(馬)로 바꾼 말로 ‘이제 옛날 이야기 좀 그만 하세요’라는 의미로 쓰인단다. 우리 손주들은 그러지 않겠지만, 그래도 말 대신 글로 옛날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내가 살던 김포군 검단면 당하리에는 1973년에서야 전기가 들어왔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가서 첫 휴가를 나왔을 때였다. 그 때까지 우리 동네의 밤은 문자 그대로 칠흑(漆黑)같이 깜깜할 때가 많았다. 우리 집의 조명 기구는 주먹 크기만한 흰색 사기 등잔뿐이었다. 솜으로 가늘게 꼬아 만든 심지가 하나 드리워져 있는 등잔의 연료는 석유였다.

등잔 심지에 불을 붙이면 성냥 불 하나보다도 어두운 불빛이 간신히 등잔 주변을 밝혀주었다. 어떤 사람은 왜 호롱불이나 촛불을 켜지 않았느냐 묻지만 이것들은 평상 시에는 사용할 수 없는 호화 조명기구들이었다. 호롱불은 석유 소비량이 많고, 촛불은 양초가 비싸기 때문이었다.

나는 1960년 중학생 때부터 인천으로 유학을 나가 누님과 자취(自炊)를 하고 살았다. 그러나 대학생일 때까지도 시골집에 오면 언제나 조그만 앉은뱅이 밥상 머리에 등잔불을 켜 놓고 공부를 해야 했다. 때로는 등잔불에 앞 머리카락을 살짝 태워 먹기도 했다. 방이 어둡다 보니 무의식 중에 자꾸 머리를 등잔불 쪽으로 디밀다가 일어나는 사고(?)이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매일 밤 그 불빛으로 바느질을 잘만 하셨다.

인천에서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가끔은 학교가 파한 뒤 반찬 같은 것을 가지러 1시간 여 시외 버스를 타고 시골집으로 가야만 했다. 그 때는 인천에도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반찬이 자주 떨어졌었다. 고등학생일 때의 어느 날, 시골집에 가려고 막차를 타고 종점인 백석에 내려보니 어느새 밖이 칠흑같이 어두워져 있었다. 1시간 사이에 이렇게까지 깜깜해질 줄은 몰랐다. 거기에서부터 우리 시골집까지는 약 오리(五里)가 넘는 먼 거리였다. 막차에서 내린 지라 인천으로 되돌아 갈 수도 없었다. 진퇴양난(進退兩難)이었다.

부득이 나는 무서움을 참고 한발 한발 조금씩 발을 떼며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큼 가자 우리 동네로 넘어가는 고갯길 앞에 마지막으로 있는 초가집이 나타났다. 천만 다행으로 희미한 등잔불 하나가 사랑방을 밝혀주고 있었다. 여기에서 나는 중대한 결정을 해야만 했다. 칠흑을 뚫고 산길을 넘어 30분 거리의 우리 집으로 향할 것인가, 아니면 가기를 포기하고 이 집에서 ‘하룻밤 재워줍쇼’ 부탁을 할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시간에 혼자서 고개를 넘는 것은 무리였다. 우선 전혀 앞이 안 보여서 가다가 개울로 떨어져 다칠 우려가 컸다. 다음으로 그 밤길을 나 혼자 걸어가기가 너무나 무서웠다. 게다가 그 산길은 달 밝은 밤에도 혼자 넘기 무서워 일부러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넘던 길이 아니던가? 가끔 산소 사이로 뛰어다니는 여우인지 개 때문에 놀라기도 했던 길이었다.

결국 나는 초가집 사랑방 앞에 서서 이렇게 여쭈었다. “실례합니다. 새텃말에 사는 아무개의 아들인데 하룻밤 재워주시면 안될까요?” 다행이 사랑방 영감님은 흔쾌히 승낙을 해 주셨다. 그래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고향집으로 간 일이 있었다. 그 때 그 집 사랑방에 등잔불이 안 켜 있었으면 어쩔 뻔 했나,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밤이 깜깜해야 별이 보이듯이, 어둠의 무서움을 경험한 사람이 빛의 고마움을 잘 알게 마련이다. 어둠은 어둠과의 싸움이 아닌 빛의 도입으로 완벽하게 없앨 수 있다. 크리스찬들이 빛이신 예수를 따르는 이유일 것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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