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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 흔들리는 기준(基準)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기사입력 2019-11-20 09:38     최종수정 2019-11-20 17:06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군대에 가면 정렬을 시킬 때 한 사람에게 오른쪽 손을 높이 치켜들고 큰 소리로 ‘기준!’ 이라고 외치게 한다. 그러면 그 사람, 즉 기준병(基準兵)은 신속히 자리를 잡고 오른쪽 팔을 들어 기준!을 외친 후 그 자리에 말뚝처럼 서 있어야 한다. 기준병이 왔다 갔다 하면 군인들이 오(伍)와 열(列)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생동성(생물학적 동등성)시험은 복제 의약품(제네릭 의약품)의 품질을 보증하는 시험이다. 이 시험의 골자는 오리지날 약과 제네릭을 사람(피험자)에게 투여하였을 때 두 약의 혈중농도가 동등함을 입증하는 것이다.

나는 1983년 서울대 약대 조교수로 부임한 이래 일본의 ‘의약품연구’라는 잡지를 구독하며 ‘생동성시험’에 관해 공부하고 있었다.

1986년, 제약회사에 다니는 홍 아무개가 대학원 석사 과정에 들어 온 것을 계기로 생동성 시험에 소요되는 시간, 장소, 비용 등을 알아보기 위한 파이롯 연구를 시작하였다.

제네릭 시료로는 I제약의 라니티딘 정제를, 오리지날 시료로는 글락소 스미스클라인의 잔탁을 택하였다.

공부를 철저히 해 놓은 탓으로 파이롯 연구는 성공적이었다. 이 때부터 나는 우리나라에서도 생동성 시험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펴게 되었다. 나중에는 대학원생의 도움을 받아 생동성 판정 통계 프로그램인 ‘K-BE Test’를 개발하여 식약청에 제공하기도 하였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생동성 시험을 한 사람치고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은 사람을 없을 것이다. 만약 내가 이 프로그램의 사용료를 받기로 했다면 돈 좀 벌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생동성 시험을 궤도에 오르게 하기 위해 무료로 배포한 일은 지금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동성 시험에서 복제약을 시험약(test drug)이라고 부르고, 복제 대상이 되는 오리지날 약을 대조약(reference drug)이라고 부른다. 오리지날 약, 즉 대조약의 품질이 복제해야 할 ‘기준’이 되는 것이다.

피험자들에게 복제약(제네릭)과 대조약을 투여하여 두 약의 혈중 농도가 통계학적으로 같게 나오면 두 약은 ‘동등’하다는 판정을 내리게 된다.

그런데 대조약의 품질이 늘 일정하지 않고 흔들린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용출시험을 해 보니 대조약의 용출양상이 뱃치 별 또는 롯트 별로 변동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기준이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대조약을 투여하였을 때의 혈중농도가 일정해야 제네릭을 이에 맞추는 노력을 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2003년 식약청장이 된 나는 고민 끝에 일본의 관료로 평생 생동성 연구만 해 온 A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본에서도 대조약의 용출 특성이 롯트 별로 다르던가요?” 물었더니 ‘매우 그렇다’는 것이었다. 놀란 나는 “그럼 어떤 롯트를 대조약으로 삼나요?” 물었더니, ‘임의의 세 롯트를 택하여 용출시험을 해서 중간 특성을 보이는 롯트를 대조약으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그건 일종의 눈가림 밖에 안되지 않나요? 실제로는 여러 롯트에 대해 용출시험을 한 다음, 제네릭과 가장 비슷한 용출거동을 보이는 롯트가 중간에 오도록 대조약 세 롯트를 임의로 선택한 것처럼 서류를 꾸미는 술수를 막을 수 없지 않나요?” 물었더니, 사실이 그렇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와 A박사는 생동성 시험보다는 용출시험이 훨씬 더 정밀하며 실용적인 의미가 있다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용출 양상이 동등한 두 약은 반드시 혈중 농도가 동일할 것이기 때문에 오리지날과 제네릭의 용출특성이 동일함을 입증하면 두 약의 생동성은 충분히 보증된다고 믿었다.

용출 양상이 롯트별로 ‘흔들리는’ 대조약에 제네릭의 품질을 맞추라는 것은 움직이는 과녁을 맞추기 보다 더 어려운 일일뿐더러 과학적 합리성도 없는 일이다. 이때부터 오리지날 약의 용출특성의 변동을 규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포스트 모던 시대에 기존의 모든 기준들이 흔들린다. 성경의 창조질서마저 도전 받는다. 기준은 잘못 정해져도, 또 흔들려도 안 된다. 큰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모두가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기준’이 그리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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