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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 조선약학교 학생 이호벽의 삼일운동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기사입력 2019-02-27 09:38     최종수정 2019-02-27 10:09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올해는 일제하에서 3.1운동 (1919년)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18년에 설립된 조선약학교의 학생들도 3.1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자료를 보면 ‘조선독립선언서 및 청원서’와 관련하여 경성지방법원에서 신문을 받은 362명 중에 조선약학교 학생이 14명 (김유승, 김광진, 박준영, 박병원, 박흥원, 박희창, 오충달, 전동환, 김정오, 강일영, 김용희, 이인영, 정태화, 이용재 등)이나 있었다. 이들 중 김용희, 이용재, 이인영, 전동환에 대해서는 신문 카드도 남아 있다.

고종황제의 국장일(國葬日)인 1919년 3월 5일에는 조선약학교를 비롯한 각 학교가 동맹휴교에 들어 갔는데, 이날 김광진, 김유승, 오충달 등은 남대문에서 개최된 제2의 만세운동에도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었다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17).

1818년에 조선약학교에 입학한 학생은 한국인이 60명, 일본인이 30명 정도이었으나 2년 후인 1920년에 제1회로 졸업한 한국인은 이호벽 등 약 10명에 불과하였다. 3.1 운동의 여파(餘波) 때문이었다. 신문을 받은 한국인 14명 중 3명은 한해 뒤인 1921년에 제2회로 졸업하여 총 13명의 한국인이 졸업하였지만, 나머지 한국인 47명은 끝내 졸업하지 못하였다. 이 47명 중 27명에 대해서는 이름 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조선약학교 선배들의 3.1운동 참여 기록을 발굴하였을 때, 나는 선배들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그러면서 혹시 학교를 무사히 졸업한 한국인들은 3•1운동에 불참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차에 조선약학교 1회 졸업생이자 한국인 약사 면허 1호인 이호벽 선배님이 『약사공론』(1974년 5월 16일)에 쓴 ‘나와 3•1만세사건’이라는 글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전문(全文)을 소개한다.

“3•1만세사건 이야기가 났으니 그때 나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빠트려서는 안 되겠다. 스물 안팎의 그때나 칠십을 훨씬 넘은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나는 활달하다거나 용맹에 찬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담담하고 차분하게 인생을 밟아왔다고만 생각한다. 그때 나는 참으로 순진한 소년이었다. 집에서 학교, 학교에서 집으로만 향했으며, 책밖에 더 벗할 것이 없었다. 그런 나의 처지이고 보니 친구도, 말 상대도, 자연히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니 3•1만세사건이 사전에 준비되고 있는 줄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고, 고종황제 인산(因山) 때를 이용한 그 숨막히던 순간까지도 모르고 있었다. 참으로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날 나는 친구를 찾아 대한문(大漢門) 근처를 향하고 있었는데, 대한문 앞 고종황제 붕어(崩御)를 애도하던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면서 “대한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 부르는 것을 보았고, 품에 감춰두었던 태극기가 손에 손에 쥐어져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일시에 달라진 함성과 태극기의 세계를 경이롭게 듣고 보다가 나는 그 군중 속으로 나 자신도 모르게 뛰어들어갔다.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런데 조금 있자 일인 순사와 헌병들이 달려와 장도(長刀)와 단도(短刀)로 우리 군중을 치고 찌르고 더러는 끌어가는 것이 아닌가. 혼비백산한 나는 그 길로 집을 향해 줄행랑을 칠 수밖에 없었다. 눈 앞이 아득하고 간이 콩알만해졌던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너무나 부끄럽고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해방 후 3•1절 기념일 때만 되면 더욱 후회 반, 부끄럼 반을 져버릴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나는 이호벽 선배님이 매우 솔직하고 겸손한 분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3.1운동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의 복잡한 심정도 헤아리게 되었다. 과거에 친일(親日)을 한 사람이 이제 와 반일(反日)을 했노라 하면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호벽 선배님과 같은 분들의 처신과 고백은 오히려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며칠전 일제(日帝)하에서 우리 말 사전을 펴내느라 온갖 고초를 겪었던 조선어학회의 활동에 대한 영화 (말모이)를 보고 (속으로) 외쳤다.

대한독립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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