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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은사님 회고 1 - 이왕규 교수님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기사입력 2018-06-06 09:38     최종수정 2018-06-07 09:33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정성분석화학 및 실험을 담당하셨던 이왕규 교수님은 왕년의 별명이 왕수(王水)일 정도로 성격이 엄격한 분이셨단다. 그러나 교수님은 적어도 나에게는 인자하셨다. 교수님은 전교생의 이름을 다 외우고 계셨을 정도로 깐깐한 분이셨다.

4.19 혁명 때에는 학생과장이셨는데, 시위에 참가한 약대생들을 전원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게 하신 일을 자랑스러워 하셨다. 시위에 참가했다가 총에 맞아 죽은 대학생들이 많았던 때이었다.

나는 1971년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분석화학 전공 (지도교수 이왕규)에 진학하였다. 한 학기 정도 수업을 받다가 입대하여 3년간의 군대를 마치고 영진약품 연구과에 취직하면서 대학원에 복학하였다. 그 후 소위 파트로 대학원에 다니면서 석사 학위 논문을 썼는데 선생님께 한번도 지도를 받지 않고 혼자서 논문을 작성하였다. 그러니 논문 수준이 오죽했을까는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나는 1976년 종로구 연건동 소재 서울약대 2호관 강의실에서 열린 대한약학회에서 그 논문을 발표하였다. 당시에는 아직 슬라이드가 나오지 않아서 궤도를 이용해서 논문을 발표하였다. 즉 큰 모조지에 매직 펜으로 연구 내용을 쓰거나 그린 후 종이를 한장 한장 넘겨가며 발표를 하는 방식이었다.

1976~7년 경의 어느 날 이교수님은 영진약품에 다니고 있던 나에게 생약연구소 우원식 교수님 방에 조교로 가라고 추천해 주셨다. 그러나 나는 아내와 상의 끝에 그 자리를 사양하였다. 그 후 1978년에 결국 이 교수님 연구실의 조교가 되어 1979년 문부성 시험을 보아 일본 유학 길에 올랐다. 그 때 우교수님 방에 조교로 갔으면 내 인생은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교수님은 내 연구에 직접적인 지도를 해 주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교수님으로부터 인생을 길게 보는 안목을 배웠다. 내가 대학원 석사 과정에 들어 갔을 때 입학 동기생이 10명이나 되었다. 나는 이 많은 사람들이 훗날 다 어떻게 풀릴 수 있을까 걱정하였다.

그런데 교수님은 ‘그냥 꾸준히 있다 보면 다들 스스로 떨어져 나간다. 그냥 기다려라’고 말씀 하셨다. 훗날 보니 정말 다들 이런 저런 이유로 학업을 중단하여 끝까지 학계에 남은 사람은 3명 밖에 안 되었다.

내가 일본 유학 전인 대학원 학생이던 시절에 선생님 따님이 조선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후에 식사 장소에 가보니 각종 음식들이 다라이 같이 생긴 큰 그릇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요즘 말로 뷔페이지만 당시에는 바이킹 요리라고 불렀다. 그렇게 많은 음식을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1983년 3월 서울약대에 약제학 전공 조교수로 부임한 후 몇 년 안되었을 때, 아드님이 결혼하게 되었다. 이때 교수님이 나를 불러 함진 아비 역할을 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나는 명색이 조교수인 내가 어떻게 함을 지고 갈 수 있나 불만이었다. 대학 동기인 염정록 조교수 (중대 약대)에게 같이 가자고 하였으나 그는 사정이 있어 못 간다고 하였다.

할 수 없이 혼자 가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나는 신부 댁에서 보내 준 차에 타고 있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함은 이미 차에 실려 있었다. 청담동 신부 댁에 도착해 저녁 대접을 잘 받고 사례비도 두둑하게 받았다. 그 때 비로소 혼자 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교수님은 1987년 5월 조기 명예퇴직을 하셨다. 미국으로 이민간 따님이 손주를 봐 달라고 하는 데다가, 본인이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을 하는 데에 한계를 느끼셨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당시 정월이면 아내와 함께 청파동에 있는 교수님 댁에 가서 세배를 드리곤 하였는데 그 때 사모님으로부터 들은 내용이다.

이교수님은 관악캠퍼스 21동 약학관 103호 강의실에서 고별강연을 하셨다. 나는 그 강연내용을 전부 메모해서 약대 교지인 약원(藥苑, 29 호)에 실었다. 왜정 때인 경성약전 시절, 주석산 결정을 만드는 작업반에 감독으로 동원되어 나갔던 이야기, 신설 개성 약대 개교 전날 6.25 전쟁이 발발하여 가지 못한 이야기 등이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선생님이 때때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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