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보건의료계가 역사상 최대의 변화를 겪은 의약분업의 원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기존 보건의료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의약분업의 실시는 일반 국민은 물론, 해당 업종 종사자 모두에게 엄청난 고통을 요구하게 되었으며 누구보다도 약사들에게 많은 시련과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보건의료의 장래를 가늠하는 새로운 의약제도가 하루빨리 제대로 정착되려면 약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의약분업의 시작과 더불어 약국의 운영방식과 환경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병·의원에서 발행되는 처방을 수용하기 좋은 위치로 약국의 재배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의료기관과 약국 그리고 의사와 약사간의 관계가 매우 중요한 성공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그동안 단절돼 왔던 의사직능과 약사직능간의 재접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암시를 던져주고 있다.
그러면 우리 국민 모두가 많은 고통을 치루며 도입하려고 하는 의약분업의 기본정신을 살리며 성공적인 약국 또는 약사직능을 유지하려면 약사들에게 안겨진 과제들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약국은 새로운 환경에 맞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갖추어야 하며 이에 걸맞은 인력과 콘텐츠를 갖추어 의사와 환자의 틈에서 합리적인 약물치료가 완성되도록 조정자의 역할을 해 줄 준비가 필요하다. 여기에서의 하드웨어는 약국시설과 장비를, 소프트웨어는 컴퓨터프로그램와 정보통신환경을 뜻하는 데 이것은 마음만 먹으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운용할 약사의 능력과 지적자원인 콘텐츠는 하루아침에 갖추어지지는 않는 부분이다.
현재 약사의 최대 현안과제는 처방수용이라는 측면을 바라볼 때 장기적으로는 약국의 약사가 처방을 적어 보내는 의사와 얼마나 원만한 협업자관계를 유지하느냐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일상대화보다 환자의 질병치료를 위해 의사와 전문적인 대화를 원만하게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즉, 그동안 약사들이 늘 부족하다고 느껴왔던 임상약학관련 지식과 실무적용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이 갖추어질 때 환자에 대한 교육과 복약지도는 훨씬 쉬운 일이 될 것이다.
의사와의 긴밀한 신뢰관계의 구축과 환자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질병교육과 복약지도는 성공적인 약국운영의 지름길이라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면 현재 전국의 약국운영에 종사하고 있는 약사들이 과연 이러한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하루빨리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기회가 확대돼야 한다. 그리고 그 교육내용은 통일성이 있어야 하며 수준 높은 전문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약사의 재교육은 대학교육을 기반으로 구성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원격교육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약국에는 약사인력의 부족으로 약사가 시간을 투자해 강의실 교육에 참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유일한 대안교육은 바로 약사가 언제 어디서나 시공간을 초월하여 수강할 수 있는 사이버 원격교육이다. 이러한 사이버교육은 정형화된 콘텐츠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므로 교육내용의 통일성이 보장되며 수준높은 전문성을 유지할 수 있다.
21세기는 지식정보화 사회이며 정보통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간의 모든 활동이 사이버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사이버공간화 시대라 지칭되고 있다. 약국의 환경도 이러한 시대 변화에 예외일 수는 없는 것이다. 약국도 이에 걸맞게 전문화, 정보화, 세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변화를 효율적으로 이룩하기 위해서는 약사자신이 하루빨리 고속정보통신망을 갖춘 약국환경을 조성하고 컴퓨터와 친해져야 하며 그동안 부족했던 임상약학 교육을 원격으로 받으며 필요한 의약정보를 검색, 응용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또 하나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약국에 근무하는 약사가 하루빨리 단순한 일, 즉 하루종일 알약을 세며 싸주는 데 급급한 `pill counter'의 역할에서 벗어나 처방의 안전성과 복약지도에 신경을 쓸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명확한 역할과 기능을 갖는 약국기술자(pharmacy technician)제도의 도입과 이들 보조인력의 양성이다. 현재 약국에는 처방전 정보의 입력과 재고관리 등 엄청난 부가적 업무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보조인력에 대한 명확한 역할분담과 기능의 명시가 없어 처방의 안전성 검토와 적정한 복약지도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못하고 있다. 향후 이러한 환경에서는 안정적 약사인력의 유지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투약, 약화사고 등으로 많은 약국들이 의료분쟁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의약분업의 시행은 분명 우리나라 국민보건의 백년대계를 보다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한 거국적인 개혁운동으로서 약사직능에는 새로운 도전과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선진국의 사례를 비추어 볼 때 의약분업의 시행과 더불어 약사직능은 바로 서게 되며 약사의 대응능력에 따라 보건의료의 질이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약사직능의 주체는 바로 약사자신이며 무엇보다도 변화의 중심에 있는 약국이 얼마나 선진화되느냐가 우리의 최대 과제일 것이다. 보다 바람직한 약국을 가꾸기 위해 대학은 물론, 약사직능단체, 약업계 모두 약사의 재교육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